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정부가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하고 이 기간 문화 행사를 일괄적으로 취소한 것에 대해 문화예술인들은 ‘애도 강요’를 느끼고 있다고 비판한다. 애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부가 섣부르게 애도 기간을 정하고 행사를 취소하는 방식은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권위주의적 방식의 애도는 정부나 정치 관계자들이 참사를 ‘정파적 구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곧바로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취소, 공무원들의 '근조' 글씨없는 리본 패용, 휴가 금지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헬로포토.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곧바로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취소, 공무원들의 '근조' 글씨없는 리본 패용, 휴가 금지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헬로포토. 

문화연대 주최로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10·29 참사와 문화정치: 국가권력의 통치성, 애도의 방식, 예술의 자율성’ 토론회에서는 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 후 정부가 국가 애도 기간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인 이유를 놓고 토론이 펼쳐졌다.

문화연대는 토론회 기획 이유로 “각종 공연과 축제 등 문화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예술인 자율성을 침해하고 애도를 강요, 특히 한가지 방식의 애도만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문화연대의 주최로 14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10.29 참사와 문화정치: 국가권력의 통치성, 애도의 방식, 예술의 자율성’ 토론회. 사진=정민경 기자. 
▲문화연대의 주최로 14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10.29 참사와 문화정치: 국가권력의 통치성, 애도의 방식, 예술의 자율성’ 토론회. 사진=정민경 기자. 

“신속한 애도 기간 선포, 책임지는 통치성 아닌 책임 회피”

발제를 맡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정부가 내린 애도 결정은 신속했지만 애도 방식은 부적절했다”며 “행정안전부는 ‘이태원 사고 관련 지역 단위 합동분향소 설치 협조’라는 공문에서 ‘이태원 참사’라는 말 대신 ‘이태원 사고’라고 명시하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를 명시했다. 공문에서 사용한 언어들을 보면 신속한 국가 애도 기간 선포가 책임지는 통치성이라기보다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애도 기간 축제 행사 연기와 취소에 이어 공공기관 조기 게양, ‘근조’ 글씨 없는 리본 패용 지침, 공무원 휴가 사용 금지 지침도 있었다”며 “애도를 계기로 내려진 지침은 통치를 통제로 전환하는 가이드라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근거로 특정 단체명을 거론하며 ‘이번 사태를 정부 정책 비판에 활용하거나 이 일을 계기로 정부 압박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한 경찰청 정보국 문건을 들었다. 이같은 문건 역시 책임지는 정부로서의 ‘애도’가 아니라 정부 책임을 회피하고 문책을 피하려는 ‘애도’였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문화행사가 취소됐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헬로포토.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문화행사가 취소됐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헬로포토. 

‘애도 강요’가 이뤄진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김상철 시시한연구소장은 “결국 정파적 구도로만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소장은 “정부가 정한 애도의 서투름이나 설익음은 결국 정파적 이해 구조를 통해 사건·참사를 이해하려는 것의 한계를 보여줬다”며 “이런 태도가 ‘애도 기간’을 애도 기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14일 오늘 신생 매체를 통해 참사 개개인 명단이 공개됐는데, 과거 세월호 참사가 굉장히 중요했고 매개적 사건이지만 이태원 참사가 과거 참사와 동일성을 밟아가는 것이 이태원 참사를 수용하는 올바른 태도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며 “세월호 참사의 압도감 때문에 또 같은 방식으로 참사를 대응해 나가는 것이 맞는지 시험대에 오른 것 같다”고 했다.

“갑작스런 공연 취소, 강력한 조치 취했다는 명분 위한 것”

윤성진 한국축제감독회의 상임이사는 정부가 정한 ‘애도 기간’ 동안 취소된 예술 공연 등의 문제를 두고 “문체부가 취소를 강요했던 행사들은 수십 명, 수백 명이 수개월 이상 긴 시간 철저히 준비하고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심사를 받고 준비한 행사들”이라며 “그런 축제들이 행정 준비 부족으로 인한 참사 책임을 대신해 무조건 취소돼야 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잘못된 대응”이라고 말했다.

윤 이사 역시 “이런 대응은 축제나 공연을 취소해 뭔가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며 “한 축제 감독은 윤석열 정부의 국가 애도 기간에 대해 ‘애도의 계엄령’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부가 생각하는 애도 방식만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윤 이사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정부가 예술 활동과 축제, 문화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연기·축소하는 대응에 문화예술인들이 익숙해졌는데 이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생길 무렵 또 한번 이태원 참사로 문화 행사가 일방 취소되는 일들이 벌어졌다”며 “축제를 지역 정치를 위한 장치로, 자신들의 과시 도구로 이해하는 정치인들은 또 한번 축제 통제를 통해 국민들의 정서와 감성을 통제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문화행사가 취소됐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헬로포토.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문화행사가 취소됐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헬로포토. 

문화예술인들은 일방적으로 취소된 행사들에 대한 경제적 피해와 함께 ‘자기 검열’로 인한 두가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뮤지션인 이호씨는 “나를 비롯해 많은 동료 뮤지션들이 많은 시민들과 같이 정신적 내상을 입은 상황인데, 공연이나 전시가 많이 취소되면서 그 힘듦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며 “일방적으로 공연 취소를 당한 뮤지션도 있고 참사 이후 개인적 정신적 힘듦 때문에 자발적으로 공연을 취소한 분들도 있는데, 이때도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눈치를 보고 부담을 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참사 이후 공연 준비 모습이나 공연하면서 웃는 모습 등을 SNS에 올릴 때 자기검열이 심해졌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매우 힘들어졌다”며 “애도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국가가 정한 방식으로만 애도해야 한다는 발상에 반발심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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