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안내문자]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재난문자로 총칭되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휠체어이용인이 지하철을 타는 것이 시위의 방법이 될 만큼, 휠체어이용인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은 말끔히 지워졌다.

‘대중’을 위한 교통수단이지만 휠체어이용인은 ‘대중’이 아니었다. 휠체어이용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비장애인중심주의 사회에 의해 ‘재난’으로 규정되었다. 누구나 대중교통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가의 책임은 온데간데 없고,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이를 만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조차 없다. 휠체어이용인의 지하철이용을 재난으로 만드는 국가와 공공기관의 입장이 놀라울 지경이다.

정책결정권자에 의해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으로만 머물기를 요구받으며 끊임없이 주체성이 배제되었다. 그러한 현실에서 겨우 지하철을 이용하고자 했을 뿐인 휠체어이용인들은 목숨을 걸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사망과 부상사고로 이어지기가 반복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부끄럽게 여기기는 커녕, 장애인 차별이 사라지기를 요구하는 당사자 운동단체와 맞서겠다는 이 국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 1월2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월2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첫째, ‘지하철 타기’를 불법시위라고 보낸 것부터 부끄러워해야 한다. 대중교통(공공교통)이 무엇인가? 공공성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접근 가능하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의미한다.

서울교통공사의 홈페이지를 보면, 경영정보와 목표에 “누구나 안전하고 행복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울교통공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써놓았다. “누구나”에서 장애인을 당당하게 배제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는 행위가 불법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지하철을 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불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헌법에서 명시하는 국가의 역할은 “모든 국민”에게 해당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빼고”라는 것은 헌법의 가치에 어긋난다.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는 모든 영역에 장애인은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가 얼마나 제 역할을 안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장애인들은 여전히 스스로 존엄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헌법 10조 위반). 법 앞에 평등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11조 위반). 거주와 이전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도 많다(14조 위반).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직업 선택’이 아니라 직업이라는 것 자체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15조 위반). 32조에는 근로(노동)도 권리라고 명시했다. 모든 국민에게 최저임금을 시행해야 한다고도 되어있다. 이 역시 장애인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32조 위반).

병원이나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사생활, 통신, 종교, 학문, 예술, 재산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17, 18, 20, 22, 23조 위반). 선거를 하지 못하는 장애인도 있다(24조 위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도 있다(31조 위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장애인들만의 세상으로 만들고 유지하느라 장애인은 배제되고 소외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국가가 행하고 있는 불법이다.

둘째, 그래서 불법시위라는 말은 악랄한 프레이밍(Framing: 사회·사건·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잡아주는 것)이다. 작년 3월 이준석(전 국민의힘 대표)은 지하철 타기 시위를 “비문명적 시위”라고 부르며 “시민을 볼모 삼는다”고 말했다.

인류의 문명은 저항을 통해서 발전해 왔고 연대를 통해서 성숙해져 왔다. 문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발언이었다. 또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는 장애인 배제 위에 세워진 사회이기 때문에 볼모 잡힌 것은 장애인들의 삶이다. 지하철 타기 시위로 인해 시민들의 출퇴근이 볼모잡혔다는 시각은 매우 편협하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도 이와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페이스북 글로 “이 시점에서 가장 경청해야 할 목소리는 ‘아무 죄도 없는 이웃들에게 피해를 전가하지 말라’는 선량한 시민들의 목소리”라고 말하며 ‘장애인의 권리를 외면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선량한 시민의 목소리’와 대척점에 뒀다.

▲ 지난해 12월20일 오세훈 서울시장 페이스북
▲ 지난해 12월20일 오세훈 서울시장 페이스북

지하철 타기 시위는 선량하지 않다(즉, 악하다)는 프레임(Frame: 사회·사건·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예산안 처리를 촉구하는 방식이 왜 선량한 시민들의 출근길 불편을 초래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중론”이라는 단어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로 사람들에게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썼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불법적인 지하철 탑승시위를 지속한다면, 시민들의 안전과 편익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 서울시장으로서 더 이상 관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는 서울시장의 “관용”을 바라는 게 아니다. 모두가(누구나) 평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한 명의 주체로 당연하게 공동체에 포함되고 환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라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며 이를 만들어 가는 게 서울시장의 역할이다. 자신의 역할도 모르는 무지한 서울시장을 나는 더 이상 관용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불법”이라는 단어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썼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정확히 말해서, 화물연대의 파업은 불법이 아니었다. 불법이냐 합법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체제(기존의 질서)를 바꾸어 온 운동은 늘 기득권자들에 의해서 불법으로 명명되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전 세계에게 가장 긴 수준의 노동시간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왜 이런 노동조건은 합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가?

세상을 바꾸는 직접행동을 제안했던 사람 중 미국의 정치학자인 진 샤프(Gene Sharp)는 198가지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제시한다. 여기서 비폭력은 합법 영역의 행동도 있지만, 불법 영역의 행동도 포함한다. 이는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 진 샤프(Gene Sharp). 사진=위키피디아
▲ 진 샤프(Gene Sharp). 사진=위키피디아

노예제가 합법이었고 이를 정치, 경제, 종교 면에서 모두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에, 노예해방운동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오늘날, 당시 불법이었던 노예해방운동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에 여성에게 선거권을 달라는 여성 선거권 운동은 불법이었다. 중요한 것은 합법이냐 불법이냐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정해지는 사회적 기준에 질문하고 의심하며 약자의 목소리가 보다 더 반영되는 방식으로 사회를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안전 안내 문자”의 “안전”이라는 단어는 과연 누구의 안전을 말하고 있는가? 누구를 어떤 위험(재난)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인가? 전장연 활동가들은 “‘지하철행동’은 ‘세상에서 목소리가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듣지 않는 세상,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실천이자 저항입니다’. 비장애인만 타는 ‘시민권 열차’에 ‘탑승’시켜주십시오”라고 말하며 5분 이내로 안전하게 타는 선전전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이라며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활동가들은 삼각지역 역장, 서울교통공사 직원들 그리고 경찰들에게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당했다. 그들은 전동휠체어의 전원을 껐고 전동휠체어를 조작하는 컨트롤러를 파손했다. 휠체어는 구부러지고 망가졌다. 활동가들은 휠체어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서 엎드려졌고 구타를 당했다. 오세훈 시장이 말한 무관용은 폭력인가? 비장애인들만 편하고 안전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공권력까지 동원해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

▲ 1월3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서울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을 둘러싸고 있다. ⓒ 연합뉴스
▲ 1월3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서울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을 둘러싸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현재 자신이 비장애인이라 여기는 사람도 <일시적 비장애인>일 뿐이다. 젊어서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노화의 과정을 거치며 장애인이 된다. 신체든 정신이든 기능이 떨어진다. 장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편하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효율적이지 않은 사람”된다. “쓸모”나 “효율”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누가 만들까?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윤(돈)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자본주의가 만든다. 우리는 누구나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장애인과 같은 이유로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표준의 몸”을 가지지 못한 상태가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왜 준비하지 않는가?

한국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병원(시설)에서 삶을 마감한다. 왜 그래야 할까? 돌봄이 온전히 가족에게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학교를 다니든 직장에 다니든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집에 어린이나 노인, 아픈 사람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삶이 어려워진다.

▲ 1월5일 오전 서울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선전전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월5일 오전 서울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선전전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장연이 지하철 시위를 하며 요구하는 “탈시설 사회”가 가능하려면 “24시간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24시간 지원체계란, 24시간(혹은 필요한 만큼)동안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런 사회가 되면, 누구나 노화 등에 의해 장애인이 되더라도 그 제도에 의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인생 말년까지 살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지내며 살다 갈 수 있다. 지하철 타기 시위를 통해 요구하는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는 결국 모두를 위한 권리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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