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도입을 요구로 건 파업을 보도하며 ‘경제위기’와 ‘불법파업’ 주장에 더해 ‘정치파업’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공격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실제 일하는 현장을 찾고, 일상 속에서 안전운임제 필요성을 체감토록 하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언론노동자들의 자성도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6일 주최한 ‘파업 보도에 담아야 할 진실’ 긴급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장은 노동자의 파업 국면마다 되풀이된 ‘경제위기’와 ‘불법파업’ 프레임을 언급한 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는 파업을 ‘민주노총의 정치투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그 특징을 지적했다.
일례로 화물연대가 파업을 예고했던 11월21일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민노총 국가물류 인질 잡고 정치투쟁’이란 제목을 달았다. 12월2일부터는 ‘민주노총은 파업 확대하고 야당은 부추긴다’며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을 싸잡아 비판하는 보도가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탁 센터장은 언론이 파업에 앞서 ‘정부 책임’을 지적했다가 막상 노동자가 권리 투쟁에 나서자 어느 순간 관련 언급을 멈췄다고도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로 “국회가 정쟁으로 시간 낭비한 것도 안타깝다”고 비판했고, 한국일보와 서울신문도 정부와 정치권이 정쟁을 멈추고 적극 조정능력을 보이라고 했다. 그러나 파업이 시작되고서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협상을 위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보도는 사라졌다. 대신 동아일보, 매일경제, 중앙일보 등이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주문하는 등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문제적 보도는 넘쳐난다. 탁 센터장은 중앙일보가 2일 대통령실 관계자를 익명 인용해 “억대 가까운 연봉을 받으며 귀족노조로 군림해온 민주노총과 적당히 타협하는 식으로 이번 싸움을 끝낼 생각은 없다”고 보도했다며 “쟁점이 화물파업인데 (이 인사는) 억대 연봉을 받는 화물연대 조합원이 누구인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언론은 안전운임제에 효과가 없고 해외 적용 사례도 없다는 정부의 주장 또한 그대로 받아썼다. 국토부는 국회 민생경제안전특별위원회에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 견인형 사업용 화물차 사고 건수가 8% 늘었다고 보고했다. 다수 언론이 이 주장을 사설과 기사로 보도했다.

매일노동뉴스와 MBC 등 일부 언론만 견인형 화물차엔 안전운임 적용 차량 2만 7000대뿐 아니라 다른 특수차량 7000대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호주와 캐나다 일부 지역과 브라질에서 전국 규모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짚은 언론도 일부에 그쳤다. 한겨레의 경우 호주가 전국 단위로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해 주목을 받았다.
노동자가 파업 때마다 ‘경마 중계’ 보도나 노동자 공격 보도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현장 기자인 토론자들은 언론사들이 ‘새로운 사실’만을 찾으며 구조를 조명하지 않는 보도 관행과 기자의 노력 부족 등을 언급했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파업 보도할 때 (방송사가) 교통정체나 물류 피해 같은 숫자만 업데이트하는 이유는 결국 구조적 문제는 풀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야마의 반복’을 몹시 싫어하기에, 그나마 실시간으로 바뀌는 파업으로 인한 피해 현황을 보도한다. 기름 공급을 못받는 주유소 비율이 1%밖에 되지 않음에도 그 변화라도 업데이트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화물연대 노동자와 최소 하루, 길면 일주일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 좋은 현장 보도가 나올 것이다. 자주 나오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승훈 언론노조 한겨레지부장은 “한국 기자들이 갖는 계급성이 파업 보도와 관련해 수세적, 적대적 보도를 하게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중산층의 허위의식일 수도 있는데, 기자의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출입처 등에서 대접받고 다닌다. 그런 상황에 길들여지며 점점 노동자들을 시혜적으로 대상화하는 것 아닐까”라는 것.
시사인 표지기사 “화물차는 두렵다”를 통해 최근 화물운송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심층 취재한 변진경 시사인 경제팀장은 “파업과 무관하게 올초부터 준비한 기사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관성을 벗어난 보도라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만약 파업 이후 1~2주 안에 마감해야 했다면 저희도 ‘생존권 투쟁’이란 시각으로 보도하는 선에서 처리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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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팀장은 취재 경험을 공유하며 언론이 관습적으로 ‘안전운임제 도입’이라는 문구를 쓰는 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안전운임이 시행된 차량은) 6%다. 이걸 가지고 적용 뒤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안전운임은 안전한 도로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최저선”이라고 했다. 이어 “최종 목표는 화물기사들의 노동시간 감소가 돼야 한다. 적게 일해도 될 만큼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변 팀장은 기사의 질적 향상을 위해 일선 기자들이 일상에서 파업과 노동 문제를 ‘나의 문제’로 느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변 팀장은 “많은 독자가 파업을 내 문제가 아니라 노조라 불리는 동떨어진 세계의 문제라 보고, 뭔가 시끄럽고 폭력적일 것 같다고 인식한다. 더욱이 화물노동자는 업계 사람이 아니라면 일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며 “사전 지식이 없던 기자들이 사안을 소화하고 체감하고, 와닿게 쓰려면 시간이 걸린다.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기획하려는 노력이 언젠가 시의성과 만날 때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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