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보도만 됐더라도 이런 상황까지 어쩌면 안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화물연대 전방위 탄압에 나선 정부를 규탄하며 언론도 비판 대상으로 꼽았다. 현 위원장은 “언론 보도를 통계 내면 노동자들의 얘기는 3분의 1도 나오지 않는다. 정부 입장은 무슨 말을 해도 받아준다. 5분의 3~4는 정부의 왜곡된 거짓말 중심으로 보도한다”며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보수 언론이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지난 9일 파업을 종료했다. 화물연대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운임 하한을 정하는 안전운임제의 일몰제를 폐지하고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품목의 확대를 요구하며 지난달 24일부터 16일간 파업했다. 파업은 예견됐고, 명분이 명확했다. 앞서 화물노동자들은 6월 같은 요구를 걸고 파업해 국토부의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약속을 이끌어냈지만 정부와 국회가 일몰 폐지에 나서지 않은 채 연말을 맞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선 복귀 후 대화’를 고집하며 공세를 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주요 책임자들은 파업을 “핵 위협”과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 “조폭”에 비유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개입’ 공문을 통해 정부의 결사의 자유 제한이 부당하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이를 축소했다.

언론은 정부를 따라 화물연대 파업 전체를 사실과 달리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보수·경제지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보도를 ‘단독’ 문패를 달고 내보내면서 파업에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는 허위사실이 유포됐다. 무엇보다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파업에 대해 언론이 또다시 ‘양비론’ 관점으로 전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심화시켰다.

▲12월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중공동행동, 참여연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 등이 화물 노동자에 대한 안전운임제 확대를 촉구하며 시민사회종교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중공동행동, 참여연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 등이 화물 노동자에 대한 안전운임제 확대를 촉구하며 시민사회종교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터무니 없는 기사” 난무한 파업보도

보수 경제지는 파업 초반부터 사실과 다른 보도로 공세를 이어갔다. 한국경제가 대표 사례다. 수차례 ‘단독’ 보도를 냈지만 반론을 거치지 않은 왜곡보도였다. 한국경제는 파업이 시작된 24일 1면에 ‘“주유소 기름 바닥내라” 화물연대의 폭주’ 기사를 냈다. 화물연대가 조합원들에게 유조차(오일 탱크로리)를 가득 채워 ‘기름 부족 상태’를 만들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출처는 ‘화물연대 관계자’였다. 같은 날 사설 “주유소 기름 바닥내자는 화물연대… 정부, 엄정 대응할 때다”를 내 “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 의지를 밝히는 일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며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응주 화물연대 교육선전국장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파업하면서 물류 이동이 잘 안될지언정 바닥낼 수 없다. 저유소의 양이 어마무시한데 어떻게 바닥 내나”라고 했다. 그는 “회의에 이런 내용이 나온 적도 없는데, 한국경제가 밝힌 ‘관계자’가 누군지 알고 싶다”고 했다.

▲11월24일 한국경제신문 1면 머리기사
▲11월24일 한국경제신문 1면 머리기사

‘아님말고’ 파업에 힘 빼기 “안전운임 본질은 실종”

파업 힘빼기식 보도도 나왔다. 조선일보는 ‘[단독] 인권위, 공공운수노조가 낸 진정 하루만에 각하… “조사대상 아니다”’에서 인권위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기본권 침해라는 의견을 표명해달라는 공공운수노조 진정을 각하했다며 “공공운수노조가 업무개시명령을 인권위를 통해 구제받으려는 시도에는 일단 제동이 걸린 것”이라고 했다. 각하 결정은 사건을 ‘인권정책과’로 이관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였지만, 조선일보는 인권위가 진정 취지를 불인정한 것처럼 무게를 실어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단독]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 합의… 화물연대, 9일 복귀할 듯’이라는 기사를 내 민주당이 정부여당이 제안한 안전운임제 일몰 시한 3년 연장안을 수용했다고 전하면서 “화물연대는 집단운송거부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 결국 수용안은 민주당과 화물연대가 함께 ‘퇴로’를 마련하는 수순”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용 배경이 “정부의 법과 원칙이라는 명분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인데다, 집단운송거부가 장기화하면서 화물기사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하고, 이에 따른 복귀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는 민주당이 화물연대와 논의 없이 연장안을 받아들였고, 화물연대는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에 걸맞은 입장조차 유지하지 않은 것을 두고 비판 입장을 냈다.

▲지난 8일 오전 중앙일보 오보
▲지난 8일 오전 중앙일보 오보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11월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2차 교섭이 결렬되며 자리를 떠나는 구헌상 물류정책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한 취지라며 전날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해 시멘트 운수 종사자 2500여 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 연합뉴스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11월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2차 교섭이 결렬되며 자리를 떠나는 구헌상 물류정책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한 취지라며 전날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해 시멘트 운수 종사자 2500여 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 연합뉴스

기사가 현장 파업 분위기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수도권 물류 거점인 경기 의왕 컨테이너기지에서 파업 현장을 취재한 노동전문지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는 “조합원들을 취재해보니 파업 철회 투표에는 중앙일보의 합의 타결 오보, 그리고 민주당의 정부여당 합의안 수용 선언이 적잖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 이영조 사무국장도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조합원들이 매우 힘든 상황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외부에서 발생한 두 가지가 하루 아침에 파업 기류를 바꿨다. 중앙일보의 오보와 민주당의 정부여당 합의안 수용”이라며 “기자들의 질문이 대번에 바뀌었다. 우리는 지금도 투쟁 중인데 마치 파업이 끝난 것처럼 물었다. 정치권이 우리 파업을 벼랑끝으로 몰았음에도 중앙일보는 마치 우리 파업에 출발부터 부당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고 했다.

정치권의 허위주장 유포… 기계적 양비론도

정부여당이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주장을 바로잡지 않은 기사도 쏟아졌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상 노조인 화물연대는 지난해 10월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총파업을 가결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10대 일간지와 4개 경제지가 파업 전날인 11월23일부터 13일 현재까지 ‘불법파업’을 키워드로 낸 기사는 130건이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인사 누구도 화물연대 파업이 그 자체로 불법이란 근거를 제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일부 조합원의 일탈 행위를 가지고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매도한다”고 비판했다.

보수정치권의 파업 관련 허위 사실을 받아쓴 보도도 이어졌다. 김행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귀족노조’ 주장 발언이 일례다. 김행 비대위원은 지난 8일 “수입이 생계비에도 못 미친다더니 일부 화물연대 간부와 조합원은 번호판을 대여해 월 수백만 원의 부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43만 명의 화물운송종사자 중 두 대 이상의 화물차를 보유한 종사자가 7000여 명이라는 집계를, 마치 7000여 명의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이 두 대 이상의 화물차를 보유한 것처럼 주장한 것이다.

이에 민중의소리는 당일 “당초 누가 화물연대에 가입했는지 알 수 없기에 화물연대 조합원 중 두 대 이상의 화물차를 소유한 화물 기사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국토부 입장을 전했다. 화물연대는 민중의소리에 “당초 두 대 이상 화물차를 소유한 종사자는 사업주로 여겨 왔기에 조합원으로 받지도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단독’ 보도를 내고 “뒤에선 현대판 지주 행세를 하며 고소득을 올리는 조합원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국토교통부와 운송사, 복수의 조합원”을 취재한 결과라고 밝혔다.

▲11월23일 한국일보 사설
▲11월23일 한국일보 사설
▲12월6일 한국일보 사설
▲12월6일 한국일보 사설

안전운임제 필요성을 밝히는 일부 매체에선 화물연대 파업을 노동권이 아닌 ‘경제위기’ 논리로 접근하며 양비론을 펴기도 했다. 이들 매체는 정부가 화물연대와 대화에 나설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파업자제’를 요청했다. 일례로 한국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 ‘안전운임 약속해놓고 화주 눈치 보는 정부’에서 “지난 5개월간 조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정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한 국회”를 지적했다. 그러나 파업이 이어지던 지난 5일 사설에선 화물연대에 “세 과시성 총파업을 택하는 행보”라며 “선을 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번 파업 보도 흐름을 두고 정부가 노동3권을 부정하는 혐오정서를 이용했고 언론이 퍼뜨린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 대변인은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화물연대 총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하지 않은 것을 보면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 인사들의 ’불법파업‘ 발언은 법적 근거를 가지지 않은, 의도성 발언임을 알 수 있다”며 “하지만 보수 언론은 이를 받아썼고, 근거 논리가 없음에도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다 보니 화물노동자의 절박한 현실, 다시 총파업에 나선 원인에 대한 설명은 퍼지지 않았다”고 했다.

한상진 대변인은 “파업은 노동자 권리다. 단체행동은 노동자가 불편을 끼쳐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다보니 파업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잘못 아는 경우가 많고, 이 같은 노동혐오 정서가 언론인들에게도 퍼져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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