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노동자들이 지난 7일 운송을 멈췄다. 총파업 일주일째, 언론은 정부의 모순적 대응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양새다. ‘파업으로 피해가 심각하지만 참여도는 낮다’거나, ‘화물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면서도 업무개시 명령을 언급하는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들이 일례다. 반대로 현장 노동자들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파업하는지 조명한 언론보도는 찾기 어렵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2만5000여명 조합원을 비롯한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를 유지하고 적용 대상을 넓히라며 7일 0시를 기해 총파업에 들어갔다.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지 않거나 비조합원인 노동자까지 동참하고 있어 이례적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종합 고려해 적정한 운임을 결정하는 제도로, ‘화물기사의 최저임금제’라 불린다. 과로·과속·과적 운행하지 않아도 되도록 최소한의 노동여건을 보장하고 도로 안전을 지키자는 취지다. 안전운임제가 적용된 노동자들은 과로 압력이 줄고 다단계 착취 구조가 일부 개선됐다고 말한다. 현재 안전운임은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되는데, 전체 영업용 화물차 45만대 중 2.6만대 정도다. 그마저 올해 말 일몰제로 폐지를 앞두고 있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본부, 전국민중행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이 지난 8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화물안전운임제 전면확대 총파업 지지 노동·사회·종교단체 대정부 대화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과 화물연대본부, 전국민중행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이 화물연대 총파업 2일차인 지난 8일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화물안전운임제 전면확대 총파업 지지 노동·사회·종교단체 대정부 대화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화물연대는 정부가 안전운임제 효과를 평가해 국회에 보고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국회는 현재 발의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법안도 논의하지 않자 파업에 나섰다.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는 12일 ‘안전운임제’의 일몰 폐지, 전차종·전품목 확대 적용을 놓고 4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막판 결렬되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운송에 차질 빚고 있지만 파업 참여도는 낮다?


총파업 기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보도는 ‘물류 차질’과 ‘산업계 피해’다. 지난 13일 기준 9개 종합일간지와 3개 경제지, 4개 방송사 등 주요 언론에서 7일간 “화물 파업으로 인한 물류 차질”을 언급한 보도만 473건 나왔다. 화물노동자 파업이 국내 물류에 미치는 파장을 전달하는 건 당연하다. 국내 화물 수송량 가운데 도로 운송이 90%를 차지하는 만큼 실제 여파가 클 뿐 아니라, 화물노동자들이 국내 육상 화물 운송을 멈출 만큼 핵심 역할을 하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제는 다수 언론사가 화물노동자들의 파업 규모 또는 기세를 전할 땐 오히려 실제보다 축소한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나선 7일부터 하루 두 차례 파업 ‘집회 대오’를 브리핑하고 있다. 언론은 ‘집회’와 ‘파업 참여’ 인원을 혼용하면서 왜곡했다. 일례로 국토부가 지난 8일 저녁 자료를 “총 6500여명이 전국 142개소에서 분산하여 집회 중으로, 화물연대 조합원의 29%가 참여하여 전날 대비 11% 감소”했다고 밝히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경제는 “파업 참여율은 전날보다 11%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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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화물연대 파업 동향을 브리핑한 국토교통부의 보도자료. 국토부 홈페이지
▲화물연대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총파업 기자간담회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화물연대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총파업 기자간담회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재광 화물연대 교육선전실장은 “실제로는 조합원 2만5000여명 대부분이 운행을 멈췄고, 비조합원은 파업하면 집회엔 나오지 않고 있다. 국토부가 전국 50여 거점을 일일이 확인했는지도 불확실하다”며 “언론이 ‘화물연대 조합원 중에서도 30~40%만 참여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산업 피해를 강조해 노동자를 압박하면서도 파업 규모는 축소하는 양면적인 태도라는 지적이다.

노동자 아닌데 업무개시 명령은 해야한다?


정부는 총파업 이전부터 화물노동자의 파업할 권리를 부정하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도 ‘업무개시 명령’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다수 언론은 이 같은 ‘엇박자’도 검증 없이 전달했다.

국토부는 지난 3일 총파업을 가리켜 “뚜렷한 명분 없는 소모적 행동”으로 규정했다. 국토부는 “끝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차량을 이용하여 불법으로 교통방해를 하거나 운송방해를 할 경우 운전면허를 정지 또는 취소하고,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는 경우 화물운송 종사자격을 취소하는 등 강력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물 기사를 ‘화물 차주’로, 파업이 아닌 ‘집단 운송거부’라고 표현했다. 노동자임을 부정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파업 첫날 항만과 고속도로 요금소, 휴게소 등 중요 물류거점 16곳에 경찰 7000여명을 사전 배치했다.

▲지난 6일 조선일보 2면
▲지난 6일 조선일보 2면

윤애림 민주노총법률원 노동자권리연구소 연구실장은 “노동부와 국토부 등 주무부처 장관들이 언론을 상대로 화물노동자 파업에 ‘노동자도 아니고 파업도 아니다’ ‘노사관계가 아니다’라는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며 “이를 지적한 언론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국제노동기구(ILO)에 정부의 결사 자유와 단체교섭권 불인정에 개입을 요청했다. 주요 언론 중에선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이를 기사나 사설로 다뤘다.

일부 언론은 정부와 재계의 ‘업무개시명령’ 관련 입장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경총 등 재계 6단체는 12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요구했고, 정부는 지난 3일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면 화물운송 종사자격을 취소’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가 사설로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주장했다. 재계가 화물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고 개인사업자로 간주해 사용자 책임을 피해왔던 입장과 모순된 태도다.

▲지난 2019년 11월2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제대로 된 안전운임을 요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지난 2019년 11월2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제대로 된 안전운임을 요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14일 한겨레
▲14일 한겨레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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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향신문 8면

“화물차 세차비까지 내줘야 하나” 보수언론의 왜곡


보수언론은 안전운임 자체에 반대하는 화주(화물의 임자) 입장을 주로 전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9일 “트럭기사 개인사업자인데…통신·세차비까지 대줘야”란 기사에서 ‘시멘트 업체 관계자’ 말을 인용해 “화물 운송에 대한 충분한 값을 치르는데 기사들의 휴대폰 사용료, 세무사 비용, 세차비까지 내줘야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지난 9일 조선일보 8면
▲지난 9일 조선일보 8면

그러나 안전운임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김종인 한국물류산업노동연구소 소장은 오히려 화주와 운송사가 화물기사의 출퇴근 시간, 화물 싣는 조건, 화물을 보호할 방법까지 노동 전반을 통제하는 상황에 오히려 현행 제도가 열악한 처우를 보완하기 역부족이라고 반박했다. 김 소장은 “안전운임 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운송 원가에 정비비가 포함되지 않는 등 미진한 부분이 있어도 (제도를) 받아들였으나 화주들이 딴지걸기 식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통신비의 경우 화물노동자는 PRS 무전기가 없으면 배차를 받을 수 없어 화주가 제 편의를 위해 제공해왔는데, 2010년부터 스마트폰이 무전기 역할을 대체하게 됐고 사용료를 지급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화물노동자가 파업하며 감수하는 비용은


화물노동자들이 산업에 피해를 끼친다는 보도 일색이지만, 이들이 화물차를 세우며 어떤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는지를 다룬 사례는 찾기 어렵다. 화물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으로 생계비와 함께 수십~수백만 원의 고정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37년차 화물기사이자 화물연대 비조합원으로 파업에 참여한 한아무개씨는 미디어오늘에 “보험료와 지입료(화물기사가 운송회사에 내는 영업용 번호판 사용료)를 포함하면 60만원이 나간다.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동료는 매달 300~500만원 정도가 고정 비용처럼 나간다”고 설명했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윤애림 연구실장은 “정규직이 파업할 땐 노동자가 자기 임금만 포기하지만, 화물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소득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개인이 감당해야 할 경비가 어마어마하다. 아직 쟁점이 전면에 나오지 않았지만, 파업 이후엔 계약 해지를 당하는 노동자들도 나올 것”이라며 “이들이 노동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근본 이유”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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