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아동학대 가해자의 신상 보도를 금지하는 아동학대처벌법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그 여파에 관심이 모인다. 아동학대를 가한 피겨스케이팅 코치의 실명을 공개해 가해자로부터 고소 당한 JTBC 사건 재판도 조만간 선고를 앞두게 됐다.

이번 사건은 2019년 9월 JTBC 보도로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난 피겨스케이팅 코치가 JTBC를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이 코치는 자신의 실명·얼굴을 공개한 보도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35조2항 보도금지의무 위반이라 주장했지만, 경찰은 JTBC 보도의 공익 목적이 크다며 이를 각하했다. 그러나 검찰이 재수사를 지시했고, 2020년 3월 JTBC 손석희 전 사장은 벌금 300만 원, 취재기자는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손 사장의 경우 아동학대 보도와 별개 사안인 폭행 혐의 사건이 경합됐다.

이후 JTBC 기자는 법정에서 위법여부를 가리겠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보도금지의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지난해 1월 이를 받아들인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피해 아동의 2차 피해 우려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거나 아동학대 실태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까지 무조건 아동학대행위자 관련 보도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언론의 자유, 즉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인의 언론 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밝힌 바 있다.

▲2019년 JTBC '뉴스룸' 갈무리
▲2019년 JTBC '뉴스룸' 갈무리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7일 재판관 만장일치로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봤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사익은 아동학대행위자의 식별정보를 보도하는 자극적인 보도가 금지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반면 심판대상조항을 통해 보호하려는 아동의 건강한 성장이라는 공익은 매우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헌재는 △대부분 피해아동과 밀접한 아동학대 행위자 특정은 피해 아동의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정보통신 발전 수준을 감안할 때 대중에 알려질 가능성이 두려운 피해아동의 진술·신고를 포기하게 할 수 있으며 △보도 여부를 피해아동의 의사에 맡길 수 없다는 점 등을 합헌 결정의 이유로 밝혔다.

아동학대 보도가 위축될 우려를 일축한 대목도 주목할 부분이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아동학대사건에 대한 보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아동학대행위자의 식별정보에 대한 보도를 금지하고 있을 뿐”이라며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된 사건에서 재발방지를 위한 보도의 필요성이 큰 경우라도, 익명화된 형태로 사건을 보도하는 방법을 통해 언론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도 충족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 관련 단체들은 헌재 결정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선임매니저는 미디어오늘에 “아동 관련 사안에서는 아동의 권익,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한다는 게 UN아동권리협약 원칙”이라며 “가해자를 공개함으로써 이익이 있을 수 있지만 아동의 권리, 권익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면 여기에 무게를 둬야 한다. 필요한 판결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만약 피해 아동이 사망하더라도 같은 가정의 피해 아동이 있을 것이고, 교육기관이나 시설에서 (아동학대가) 일어났을 경우엔 그 기관을 이용하는 아동들도 있을 것”이라며 “(가해자) 신상공개에 있어서도 그런 부분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력범 신상공개와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동학대 사건은 피해 아동이 다시 가정으로 복귀해야 하는 ‘원가정 복귀’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고 매니저는 실제 학대 피해를 신고한 아동이 양육자의 학대 행위가 보도되면서 더 위험해질 수 있었던 사례를 전했다. 피해 아동이 “보복성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 있다면 가해자 신상공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중 비밀엄수 의무 관련 조항. 자료=보건복지부·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 중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중 비밀엄수 의무 관련 조항. 자료=보건복지부·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 중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역시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양육자, 보호자가 많다. 그들의 신상이 공개된다면 피해가족과 피해자들이 그 문제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며 의견을 같이 했다. 아울러 윤 이사는 “가해자 처벌을 하면 아동학대가 없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언론은 시스템을 잘 정비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학대 행위에 대한 보도가 너무 많다”고 했다.

다만 헌재 결정의 계기인 JTBC 보도가 처벌돼야 할지는 의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합헌 결정을 옳다고 본 윤 이사도 “(JTBC가 보도한 사건은) 가해자가 양육자가 아니고 학교 내 인권과도 연관이 돼 있어서 조금 양상이 다르기는 하다”며 “법원이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한 것을 보면 여러 고민을 한 것 같다. 긴급하게 알려야 하고, 보도의 필요성이 있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면 법조항 취지는 살리되 법원이 다르게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 JTBC 보도는 해당 조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아동학대처벌법 35조2항은 ‘아동보호사건’에 관련된 아동학대 행위자·피해아동 등 인적사항 보도를 금지한다. ‘아동보호사건’은 판사가 ‘보호처분’을 결정하는 사건 즉, 가해자의 법적 책임이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에 이르지 않은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가해 코치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2020년 10월 1심에서 징역 1년형, 2021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받았고 상고를 취하해 형이 확정됐다. 

법무부 아동인권보호 전문위원을 지낸 신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율다함)는 “아동보호사건이 아닌 아동학대 형사사건에는 이 조항이 적용되면 안 된다. 학대의 수위가 너무나 경미해 행위자를 전과자로 만들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경우를 ‘아동보호사건’으로 넘긴다. 일반적으로 가정 내 아동학대”라며 “이 경우 행위자 보도를 하면 피해아동이 특정되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이 35조2항의 취지”라고 말했다. 실제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했던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도 앞서 미디어오늘에 가해자 약 80%가 부모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신 변호사는 “형사사건은 국민의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 보도가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아동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거기까지는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언론사들이 자정해 가이드라인을 지켜주기 바란다는 취지”라며 “아동보호사건이 아니면 이 조항으로 처벌받을 것이 아니고, 혹여 아동보호사건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약식명령이 이뤄졌다면 처벌 범위를 너무 확장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JTBC를 대리하는 나승철 변호사는 “가해자를 공개해도 2차피해 우려가 없거나 추가범죄를 막기 위해 가해자를 공개하는 경우까지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한정위헌’을 할 수 있었는데도 단순합헌 판단을 한 것은 헌재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나 변호사는 “본안 사건에서 기자를 고소한 것은 피해아동이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였다. 이 조항이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헌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동학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는 모순에 대해 헌재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헌재의 합헌 결정과는 별개로 개별사건에서 정당행위로 인한 위법성조각으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다. JTBC 사건의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여부를 다투는 재판은 오는 30일로 선고기일이 잡혔다.

언론계에선 이번 헌재 결정 등의 취지를 살려 아동학대 사건 보도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반응이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들이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며 “헌재 결정이 났으니 차제에 언론계가 이 문제를 숙고해서 논의를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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