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상공개 범위가 확대된다. 국회가 지난달 초 범죄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머그샷 공개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법이 통과되면서 관련 언론 보도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피의자 신상공개가 언론계, 나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머그샷 공개법은 신상공개 대상에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내란·외환, 범죄단체조직, 폭발물, 현주건조물방화, 마약 범죄 등을 추가하고 중대범죄자 신상공개 결정 30일 이내 수사기관이 촬영한 머그샷을 공개한다는 내용이다. 수사기관이 공개한 머그샷이 언론을 통해 대중에 노출되는 만큼 법이 언론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

▲법무부 카드뉴스 갈무리.
▲법무부 카드뉴스 갈무리.

언론중재위원회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 토론회를 열고 피의자 신상공개와 언론보도를 논의했다. 현재 피의자 신상공개는 보수적으로 이뤄진다. 공개 기준 역시 상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 김광현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공식적 수사기관의 신상공개 범위가 보다 넓어짐에 따라 언론의 신상공개 대상 피의자 범위 또한 넓어지게 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피의자 신상공개 범위가 확대되는 것에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 조사관은 “오판 가능성이나 형사 피의자, 나아가 그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명확한 대통령령 마련을 통해 국민도 세부 기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또 김 조사관은 확정 판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되는 범죄자가 누군지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냐고 질문했다. 김 조사관은 “‘안다’는 것에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서 “국가가 특정인의 신상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면 추가적 피해 방지가 중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창숙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강사(언론학 박사)는 언론이 피의자 신상 정보를 공개할 경우 보도가 선정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강사는 “여론에 편승하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개인적 특성이나 상황을 부각하는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며 “언론이 반드시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 여부를 경찰 결정에 따를 필요는 없으나 당위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독’이나 수용자 확보를 위한 선공개는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JTBC는 최근 서현역 사건 피의자 최원종, 신림동 사건 피의자 최윤종 이름을 경찰보다 앞서 공개했다.

▲신림동 사건 범인 최윤종 실명을 공개한 JTBC 방송화면 갈무리.
▲신림동 사건 범인 최윤종 실명을 공개한 JTBC 방송화면 갈무리.

박경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신상공개에 따른 ‘범죄의 대물림’이 우려된다고 지적하면서 “범죄 현상에 대한 알권리는 피의자의 성명·얼굴을 공개해야만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언론이 범죄 관련 보도를 하면서 지나치게 방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익명 보도가 고착화됐다는 것. 김송옥 중앙대 법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실명 보도에 순기능이 있다면서 “언론의 범죄 보도는 공적 과업의 하나에 속하며 그에 대한 포기는 중요한 사회 현상에 침묵하는 것이다. 피의자 신원을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피의자에게 해악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해외의 경우 국가마다 신상공개 범위와 목적에 차이가 있다. 미국 언론은 피의자 신상을 ‘알 권리’로 보고 가감 없이 공개한다. 범죄 혐의로 체포된 자에 대해 합리적으로 유죄 판단을 가능케 하는 증거가 있다면 적법한 과정을 통해 얻은 피의자의 사진 및 신원을 언론 보도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 내부 지침에 따르면 검찰청, FBI, DEA(마약단속국)는 피고인 이름, 나이, 거주지, 혼인 여부 등을 공개할 수 있다.

▲지난 8월10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위협을 가했다가 경찰에 사살된 이의 이름을 공개한 CNN.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 8월10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위협을 가했다가 경찰에 사살된 이의 이름을 공개한 CNN.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다만 2016년 미국 제6연방항소법원은 머그샷 공개와 관련해 개인 사생활 이익 침해 여부가 판단돼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20년 전, 진행 중인 형사 절차에서 촬영된 머그샷의 공개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사진이 저장, 공유되는 방식에 있어 예측할 수 없던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은 더 이상 보존 기간이 없으며, 악의적 목적으로 즉각 배포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광현 조사관은 “과거와 달라진 환경에 따라 미국에서도 일정 부분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은 피의자 실명 보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피의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실명도 ‘프라이버시 보호, 발표 공익성 등 사정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개별 구체적 안건에 따라 적절한 발표 내용이 되도록’ 허용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피의자 신상공개에 관한 법률을 정하진 않았으나 언론 활동 보호보다 개인 명예를 더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블룸버그는 2016년 수사기관 기밀 문서를 입수해 미국인이 사기, 뇌물, 부패 혐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인은 블룸버그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영국 대법원은 지난해 판결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형사 피의자의 사적 정보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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