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가해자 인적 사항을 보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아동학대처벌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아동학대 가해자 신상 공개로 인한 사회적 이익이 크지 않으며,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국민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위헌 제청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5조 제2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언론 관계자는 아동학대 행위자, 피해아동, 고소·고발인, 신고인 등의 인적 사항이나 사진을 공개해선 안 된다. 이를 위반할 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 JTBC '뉴스룸'은 2019년 9월2일 "믿고 맡겼는데… 유명 피겨코치가 폭행·폭언 정황"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유명 피겨스케이팅 코치 A씨가 제자인 초등학생들을 폭행하고 수시로 욕설을 뱉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모자이크 처리=미디어오늘
▲ JTBC '뉴스룸'은 2019년 9월2일 "믿고 맡겼는데… 유명 피겨코치가 폭행·폭언 정황"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유명 피겨스케이팅 코치 A씨가 제자인 초등학생들을 폭행하고 수시로 욕설을 뱉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모자이크 처리=미디어오늘

헌법재판소는 가해자 정보가 공개되면 피해아동이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법재판소는 “아동학대 행위자(이하 가해자)의 대부분은 피해아동과 평소 밀접한 관계에 있어 행위자를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 사항 등을 보도하면 피해아동의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가해자에 대한 인적 사항 보도를 허용할 경우 피해아동들이 진술이나 신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할 우려가 있다. 일률적 보도 금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조항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가해자 식별정보에 대한 보도를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보도의 필요성이 큰 경우라도 익명화된 형태로 사건을 보도하는 방법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사익은 가해자 인적사항 등을 보도하는 자극적인 보도가 금지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심판 대상 조항으로 보호하려는 아동의 건강한 성장이라는 공익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가해자를 공개하지 않고도 충분한 정보전달이 가능하며, 이 조항으로 인해 언론이 받는 불이익은 자극적인 보도를 못 하는 것뿐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은 2019년 9월2일 JTBC 뉴스룸 ‘믿고 맡겼는데… 유명 피겨코치가 폭행·폭언 정황’보도로 인해 촉발됐다. 당시 JTBC는 피겨스케이팅 코치 A씨가 제자에게 폭행·폭언을 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A씨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다음날 A씨는 손석희 당시 JTBC 사장과 취재기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보도에서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것은 법률 위반이라는 주장이었다.

손석희 전 사장은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취재기자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경찰은 JTBC 보도에 공익의 목적이 크다고 판단해 각하 결론을 냈으나 검찰은 “위법성을 조각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으므로 혐의가 인정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재수사를 지시했다.

이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해 1월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서부지법은 “피해아동의 2차 피해 우려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거나 아동학대 실태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까지 무조건 아동학대행위자 관련 보도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언론의 자유, 즉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인의 언론 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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