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관련 소식이 연일 언론에 나오고 있다.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을 고발하는 기사도 있지만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이나 예방 캠페인, 과거 사건들의 수사나 재판상황에 대한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은 사건들이 많지만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서울 양천구에서 벌어진 ‘장하영 사건’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에서 피해자 정인이의 사진과 생존 당시 어린이집 CCTV 등을 공개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보도 이후 그알 제작진은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35조2항(비밀엄수 등의 의무)은 “신문의 편집인·발행인 또는 그 종사자, 방송사의 편집책임자, 그 기관장 또는 종사자, 그 밖의 출판물의 저작자와 발행인은 아동보호사건에 관련된 아동학대행위자, 피해아동, 고소인, 고발인 또는 신고인의 주소, 성명, 나이, 직업, 용모, 그밖에 이들을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는 인적 사항이나 사진 등을 신문 등 출판물에 싣거나 방송매체를 통하여 방송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그알 제작진을 고발했다. 피해아동의 사진 등을 공개했다는 이유였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보건복지부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만든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에 따라 피해자·가해자 신원공개 금지하는 조항을 함께 근거로 들었다.

▲ JTBC ‘뉴스룸’은 2019년 9월2일 “믿고 맡겼는데… 유명 피겨코치가 폭행·폭언 정황”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유명 피겨스케이팅 코치 A씨가 제자인 초등학생들을 폭행하고 수시로 욕설을 뱉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모자이크 처리=미디어오늘
▲ JTBC ‘뉴스룸’은 2019년 9월2일 “믿고 맡겼는데… 유명 피겨코치가 폭행·폭언 정황”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유명 피겨스케이팅 코치 A씨가 제자인 초등학생들을 폭행하고 수시로 욕설을 뱉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모자이크 처리=미디어오늘

 

아동학대처벌법 35조2항은 논란의 대상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해 1월 아동폭행 가해자의 신원을 보도해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JTBC 관련 사건을 다루던 중 ‘아동학대행위자의 인적 사항이나 사진 등을 보도하면 안 된다’는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JTBC는 2019년 9월 피겨스케이팅 코치 차아무개씨가 제자들을 폭행했다는 의혹을 보도하며 차씨 얼굴 등을 공개했다. 차씨의 고소로 손석희 JTBC 사장은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손 사장은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JTBC 기자는 벌금 100만원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서부지법이 해당 법조항에 대한 위헌여부 판단을 헌재에 신청한 것이다. 

이 사건은 수사과정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 2019년 11월15일 경찰은 보도의 공익 목적이 크다며 위법성이 조각돼 고소를 각하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이 재수사를 지시하며 “보도 내용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위법성을 조각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으므로 피의자들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기소했다. 

결국 법에 따라 아동학대 가해자 신상정보를 방송한 손석희 사장과 JTBC 기자가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을 받은 가운데 서부지법에서도 피해자나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무조건’ 금지하는 조항을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피해자의 2차피해 우려가 적거나 공익적 목적의 보도일 때도 금지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그알을 고발했다는 것은 제작진에게 사진과 영상을 제공한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SBS 그알의 정인이 신상공개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지만 공 대표의 발언은 일리 있는 주장이다.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언론중재위원회는 지난해 11월24일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개정해 아동학대처벌법 35조2항을 근거로 아동 학대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나 학대자 등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공표해선 안 된다는 기준을 만들었다. 아동 학대행위나 피해상태를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거나 자극적으로 보도해선 안 된다는 내용과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을 자세히 보도해선 안 된다는 조항도 넣었다. 

언론중재위의 아동학대 보도 관련 심의기준 개정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 아동학대 관련 보도가 늘어나는 가운데 현행 ‘시정권고 심의기준’에 아동학대 보도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언론중재위가 밝힌 개정 이유를 보면 “현행 기준의 경우 소년보호사건 또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사건의 당사자나 성폭력범죄 사건 피의자가 청소년인 경우 이들의 신원 공개에 대해서는 적용이 가능하지만 일반적 아동 학대사건 보도에 적용조항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언론중재위는 2014년 제정한 아동학대처벌법과 35조 비밀엄수의무 조항을 참고해 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 지난해 1월2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편. 모자이크 처리=미디어오늘
▲ 지난해 1월2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편. 모자이크 처리=미디어오늘

 

아동학대 관련 심의기준이 없었기에 신설하는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JTBC 사례와 SBS 그알 사례에서 보듯 언론사가 공익적 취지로 보도했다고 주장하더라도 현행법상 신상정보를 공개할 때마다 법적공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신상 공개 자체를 무조건 처벌하는 현행 법조항을 그대로 심의기준에 도입하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언론중재위 심의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아동학대 사건 보도만을 특화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기준을 신설한 것이고 실제 기준을 적용해 시정권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이를 테면 사생활 침해 조항 등 다른 기준들도 법에 있는 내용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법에선 수사가 들어오면 무조건 법조항을 적용하지만 언론중재위에선 기준이 있다고 무조건 기준을 적용해 시정권고하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언론중재위 관계자는 “시청률을 올리려고 하거나 자극적으로 방송을 내보낼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며 “인격권과 공공의 이익, 알권리를 비교형량을 해서 사안마다 다를 것”이라고 했다. 다만 기준을 더 구체적으로 설정해 논란의 범위를 좁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헌재에서 아동학대처벌법 35조2항을 어떻게 판단할지 언론중재위도 지켜보고 있다. 해당 관계자는 “신원공개를 금지하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결정 내려지면 우리도 그런 부분을 고려해 기준 개정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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