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권 초부터 표현의자유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심상치 않은 신호다. ‘언론=메신저’를 공격하는 행태도 연달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국민의힘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상범 의원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도한 기자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응분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과거 대화 내용을 당일 대화 내용처럼 왜곡했다는 주장이지만 휴대폰 대화 사진을 찍는 취재 행위에 대한 겁박에 가깝다.

국민의힘이 괜히 법적 대응 관련 법규로 정보통신망법 제49조를 들먹인 게 아니다. 해당 법규는 ‘타인의 비밀을 침해, 도용 또는 누설한 자’를 처벌한다는 조항인데 휴대폰 대화 화면을 찍어 내보내는 취재 행위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공인이 공적인 공간에서 휴대폰을 통해 나눈 대화 내용이 사적 비밀 침해라고 한다면 앞으로 이를 보도하는 행위는 불법이 된다. 사실상 언론의 취재 행위에 대한 검열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공개되자 언론탓을 하며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9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공식 발언 외의 현장음을 사용하지 말라는 대통령실 요구 사항도 사전 검열 취재 행위 제한에 해당한다. 누가 봐도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의식한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전두환 정권에서 볼만한 ‘신 영상 보도지침’이라는 한 기자의 말은 이번 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관련 뉴스 댓글로 달린 ‘윤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 지침’이라는 조롱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비록 철회되긴 했지만 대통령실이 이런 지침을 버젓이 내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불가다.

반발은 당연하다. 국민의힘이 카톡 대화 내용을 보도한 기자에 대한 고발 조치를 예고하자 국회사진기자단이 성명을 냈다. 대통령실 영상기자단 측도 현장음 제한 조치 요구에 취재 보이콧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언론유관단체들이 단체로 성명을 내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도 윤석열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얼마나 최악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가 일부러 언론을 적으로 돌려세워 정권과 언론의 대치 국면을 국정난맥상을 감추기 위한 프레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나마 소통 창구로써 후한 점수를 받았던 도어스테핑(대통령 출근길 약식문답)에 대한 언론의 평가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애초 도어스테핑은 현안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묻고 국민 여론을 전달하는 창구로써 기대가 컸지만 일방향 메시지 통보가 늘면서 그 취지가 색이 바랬다.

대통령이 간단 브리핑을 하고 질의응답하는 형식이 굳어지면서 대통령의 말이 기자의 질문시간을 줄이는 결과가 돼버렸다는 불만도 나온다.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최고권력자와 대면해 질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의미가 크다.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쓰기로만 기능한다면 차라리 도어스테핑은 없는 게 낫다.

윤 대통령 비속어를 보도했던 MBC에 대한 고발도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속어 보도 당일 취재 과정 전반을 시간대별로 제시했지만 고발이 들어간 이상 압수수색은 시간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압수수색이 들어가면 표현의자유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탄압 정부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일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은 진영싸움의 이해득실을 따진 결과일 것이다. 언론을 장기판의 졸로 보고 찍어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 8월 “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이, 국정운영이라는 것이, 언론과 함께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 말을 윤 대통령 스스로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언론을 이긴 정권은 없다’고 충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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