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제3조는 시청자의 권익보호를 별도 조항으로 정하여 “시청자가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방송의 결과가 시청자의 이익에 합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시청자위원회는 위와 같은 시청자 권익 보호를 도모하고자 방송편성 및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시청자의 견해를 공식적으로 전달하고 방송의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실 속 시청자위원회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2018년 YTN 시청자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얼마되지 않아 시청자위원회의 운영규칙을 제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시청자위원회 역할을 방송프로그램 모니터링만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에 위원회에게 추가적인 권한을 명확하게 부여하는 조항들이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청자운영규칙을 개정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만연히 시청자위원회에게 관련 운영규칙의 제·개정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 ⓒ미디어오늘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 ⓒ미디어오늘

즉, 사측이 원하지 않는다면 시청자위원회는 쉽게 자율적인 권한 근거조차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제안했던 시청자위원회 권한 신설과 관련해 임직원 출석 요구권, 자료제출권, 현장방문권, 이사회보고요구권 등 상당부분 사측과의 의견조율이 쉽지 않아 “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세칙제정권”만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으로 운영규칙 개정작업은 일단락되어야만 했다.

방송사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상 시청자 권익 보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근본적으로 월 1회 방송프로그램 모니터링이 주가 되어 이루어지는 시청자위원회 회의 운영형태는, 법적으로 정한 최소한의 의무만을 지키는 방법으로 운영되기 쉽다. 이런 방식으로는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시청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또한, 시청자위원회 구성도 방송사가, 자율적인 권한을 정할 규정 제·개정도 방송사가 정할 수 있고, 시청자위원회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사무국(소위 “시청자센터”) 역시 방송사의 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방송사가 성실하게 시청자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를 강제할 방법 역시 마땅하지 않다. 최근 YTN 시청자위원회가 “시청자위원회의 대표자가 방통위에 직접 출석해 진술하겠다”고 의결하였음에도, 시청자위원회의 사무국인 시청자센터에서 방통위로의 공문발송조차 거부하여 시청자위원회에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방통위에 출석해 진술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해야만 할 정도였다.

시청자위원회는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국내의 독특한 제도이다. 방송사의 독립과 자유의 측면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시청자의 권익 보호 역시 중요한 가치임에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시청자는 쉽게 외면되기 쉽다. 현실의 시청자위원회 운영과 현실은 방송사 의도와 의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생적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홍경수(2018) 교수가 “방송학자와 방송종사자들 사이의 무관심 혹은 상호방임에 따라 방송에서 소외된 것은 결국 시민”이라는 지적은 참으로 뼈아프다. 지금이라도 시청자위원회가 실질화되어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역할을 실질화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김보라미 변호사.
▲김보라미 변호사.

이를 위해 시청자위원회 운영 및 관련 업무수행과 관련 방송사들의 책임과 책무수행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한 제도는 시청자위원회들의 연합 또는 조직을 통해 자율규제를 현실화하는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들의 권한, 역할, 의무에 대한 토론과 교육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관”이 하는 것은 방송에 대한 독립성 침해 우려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방송사 간 또는 시청자위원회들 간의 자율규제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좋은 사례들이 공유되고 시청자위원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어 전반적인 시청자위원회 운영시스템이 좋은 방향으로 표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시청자위원회 위원의 구성이 다양화되고 다변화되어야 하고, 시청자위원회 위원들 스스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청자위원회 사무국인 시청자센터는 방송사 운영진으로부터 상당한 독립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셋째, 방송국과 시청자위원회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방송법상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규정을 명백히 하면서도, 동시에 자율규제기구내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절차 역시 구체화해야 한다.

방송현실이 급변하고 있지만 “시청자 권익보호”는 방송정책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목적 중 하나이다. 현존하는 월 1회 방식의 소극적인 시청자위원회 모델로 방송법이 예상하는 시청자 권익 보호는 가능하지 않다. 이제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시청자위원회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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