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토호유착 의혹’에 이낙연 대선캠프에 참여해 논란이 된 서창훈 전북일보 대표이사 회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언론 자율규제기구의 공적 역할이 강화돼야 하는 상황에서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서창훈 전북일보 회장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히자 ‘부적절 인사’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서창훈 회장은 시민단체 대상 과잉 법적대응 논란, 과거 횡령 등 범죄 이력, 현직 언론인으로서 이낙연 대선캠프 참여, 토호 유착 의혹 등 잇달아 논란이 된 인사이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서창훈 이사장 임명에 비판 입장을 발표했다. 전국 민주언론시민연합도 논평을 준비하고 있다.

▲ 서창훈 전북일보 대표이사 회장. ⓒ연합뉴스
▲ 서창훈 전북일보 대표이사 회장. ⓒ연합뉴스

2005년 서창훈 회장(당시 사장)은 전북일보사 별관 매각 대금을 임의로 사용하고,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우석대의 등록금을 계열사로 빼돌린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월 전북일보와 전북일보 최대주주인 자광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글을 쓴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되자 취하한 일도 있다.

‘토호유착 의혹’도 있다. 부동산 개발회사인 자광은 2018년 3월 45억 원을 투자해 전북지역 유력일간지 전북일보의 주식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이를 전후해 전북일보는 자광의 대한방직 부지 재개발을 옹호하는 다수의 사설·칼럼을 지면에 게재했다. 2018년 5월 사설에선 “자광의 계획대로 개발이 이뤄질 경우 연간 6만 명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의 연관 산업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자광을 대변하는 입장을 전했다. 

언론노조는 8일 논평을 내고 “그의 말 많은 이력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서 회장의 신문사 지분까지 매입한 건설업체 자광과의 유착 관계”라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역시 9일 논평을 통해 “언론계에서 대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건설자본의 유입이다. 그로 인한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장으로서 이 같은 문제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지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매일신문이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인상을 전두환 정권 계엄군의 시민 폭행에 비유하며 5·18민주화운동 사진을 차용한 만평 논란 당시 이상택 매일신문 사장이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어 사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신문윤리위원회와 함께 대표적인 언론 자율규제기구인 인터넷신문위원회의 수장 역시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5월 인터넷신문위원장에 선임된 민병호 데일리안 대표는 데일리안 대표를 지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실 뉴미디어정책비서관으로 직행해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제기된 인사다. 이후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자율규제기구의 수장이 된 것이다. 

민병호 위원장이 경영을 맡은 데일리안의 기사가 자율규제 방침과 거리가 먼 상황이기도 하다. 2021년 상반기 인터넷신문위원회의 제재 내역을 보면 데일리안은 38건의 제재를 받았는데, 전체 언론 가운데 8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홍보 이미지 갈무리
▲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홍보 이미지 갈무리

지난해 10월 기준 데일리안의 ㄱ기자가 쓴 기사 내역을 보면 10월9일~28일까지 20일간 작성한 기사 100건 가운데 직접 취재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SNS를 인용한 기사만 80건에 달했다. 이 기자는 이재용 부회장 딸이 브이로그에 입고 나온 옷 가격’ ‘‘친정 간 사이에 남편이 여직원들과 홈파티를 했습니다’’ ‘‘서초에서 잠실로... 업무시간에 화장실 쓰러 집 가는 직원’’ 등 기사를 썼다. 지난 6월17일 데일리안 사내 메신저에는 ‘내일부터 주말 당직자 개인별 기사수 20개 이상’이라는 편집국장의 공지가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언론 윤리와는 거리가 먼 대목이다.

신문윤리위원회와 인터넷신문위원회는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고 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두 기구는 각각 7억5000만 원의 언론진흥기금을 ‘보조금’ 명목으로 받았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신문사들이 주축이 된 기구이기에 신문사 발행인들이 이사장을 번갈아 맡는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이와 관련 손주화 전북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신문윤리위 제재가 정부광고 책정 기준인 ‘사회적 책임 지표’로 지정돼 기구의 위상이 달라졌고, 언론계 스스로 신뢰를 높이겠다고 강조해온 시점”이라며 “그럼에도 관행적으로 이사장을 뽑아 크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신문윤리위원회 제재는 올해부터 정부광고 책정에 활용되는 ‘사회적 책임’ 지표로 활용된다.

인터넷신문위원회는 이사 가운데 총회 의결로 이사장을 선출한다. 인터넷신문위는 한국광고주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인터넷신문협회장은 데일리안 출신 이의춘 미디어펜 대표가 맡고 있다. 이의춘 대표는 박근혜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민병호 인터넷신문위원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테크니컬한 부분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 (청와대) 일을 잠시 한 것으로, 정치를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이후에도 정치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데일리안 기사와 관련 민병호 위원장은 편집국장이 전담한다고 전제한 뒤 “트래픽에 욕심이 나다보니 일부 그랬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서창훈 이사장과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 이사장 선임에 따른 우려에 대해 전화통화 시도와 문자메시지 질의를 했으나 9일 오후 6시까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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