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위원회(이하 인신위) 위원장 선임과 정관 개정 문제를 두고 회원사인 광고주협회와 인터넷신문협회(이하 인신협)가 갈등을 빚고 있다. 광고주협회는 위원장 중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는 점을 문제로 꼽으면서 위원장을 회원사가 돌아가며 추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인신협은 광고주 단체에서 언론자율기구 수장을 맡는 건 적절하지 않으며, 위원장을 순번제로 추천하는 것 역시 전례가 없다고 반박한다. 지난 7일 총회에서 광고주협회가 제안한 정관 개정안이 통과된 후 인신협에선 인신위 탈퇴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인신위는 2012년 만들어진 인터넷신문 자율규제기구다. 인터넷신문은 매년 20만 원을 내고 인신위 서약사로 가입해 자율규제를 받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매년 인신위에 7억여 원을 지원한다. 인신위 창간 당시 인신협, 인터넷기업협회, 광고주협회 등이 분담금을 내고 주요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인터넷신문위원회 CI.
▲인터넷신문위원회 CI.

그런데 최근 인신위원장 선임 문제를 두고 광고주협회와 인신협이 갈등을 빚었다. 쟁점은 △인신협의 위원장 추천 사전협의 여부 △광고주협회의 정관 개정 타당성 등이다. 지난 7일 열렸던 총회에서 정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광고주협회가 주도권을 쥔 상황이다.

① 10년 넘게 언론계가 인신위원장 맡아 와

역대 인신위 위원장은 모두 언론계 인사였다. 1대 위원장(2012~2014년)은 민병호 데일리안 대표이사다. 그는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뉴미디어비서관으로 임명됐고, 같은 달 인신위는 방재홍 독서뉴스·이뉴스투데이 대표이사를 2대 위원장(2014~2021년)으로 선임했다. 이후 민병호 대표이사가 3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인신위 정관을 보면 위원장은 이사 중 총회 의결로 선출하며, 임기는 2년이다. 다만 중임에 대한 제한이 없어 방 전 위원장이 장기간 직을 맡을 수 있었다. 민 위원장과 방 전 위원장은 인신협에서 회장과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당초 광고주협회는 언론계 인사가 위원장을 맡는 것에 대해 문제 지적을 하지 않았다.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우리나 인터넷기업협회나 언론계 인사가 위원장을 맡는 것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② 민병호 이사장 사퇴 선언과 김기정 이사 위원장 추천

갈등이 시작된 것은 민병호 이사장이 지난 5월 세 단체에 새 위원장 선임과 거버넌스 도출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광고주협회는 이 과정에서 인신위와 인신협의 갈등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양측 간) 갈등이 반복됐다. 갈등이 누적된 측면이 있었고, 우리가 중재에 나섰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관을 개정해 문제점을 개선해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인신협 관계자는 “갈등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며 민 위원장 사퇴와 자신들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미디어오늘은 민 위원장 입장을 묻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인신협은 인신위 이사였던 김기정 그린포스트코리아 대표를 위원장으로 선임하기 위한 임시총회 소집을 요청했다. 지난달 10일 있었던 일이다. 김 대표는 2010년 쿠키미디어 대표로 있으면서 온라인신문협회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인신협 관계자는 “민 위원장이 후임을 선출해달라고 하니 추천을 한 것이다. 이는 정상적 프로세스”라면서 “(광고주협회 등에) 김기정 이사를 위원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피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김기정 이사 위원장 추천에 대한 이야기를 사전에 들은 적 없다면서 “광고주협회에서 위원장을 맡으라고 제안한 적은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단순히 제안이라고 생각했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계속되면서 우리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고 했다.

▲광고주협회와 인터넷신문협회 CI.
▲광고주협회와 인터넷신문협회 CI.

③ 광고주협회의 정관 개정 제안, 갈등 본격화

7월25일 광고주협회는 정관 일부 개정 건을 요청했다. 정관 개정 후 신임 위원장 선임안건을 처리하자는 것.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7월10일 갑자기 김기정 이사의 이사장 선임안건이 발의됐다. 고민을 하다가 정관 개정안을 정식으로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정관은 인신위 명칭을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로 변경하고, 이사 추천 권한을 명확히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핵심은 임원 선출에 관한 내용이다. 기존 정관은 ‘위원장은 이사 가운데 총회의 의결로 선출한다’고 규정됐다.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이 조항을 “위원장은 회원단체명 가나다순에 따라 해당 회원단체가 해당 단체 소속의 위원회 현직 이사 또는 단체의 내·외부 인사를 지명해 총회에 보고를 거쳐 선출한다”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경우 광고주협회가 가장 먼저 위원장을 임명하게 된다. 또 광고주협회는 위원장 임기를 ‘3년 단임’으로 제안했으며, 위원장 유고시 위원장이 지명하는 이사가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이후 인신협이 정관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됐다. 인신협 관계자는 “가나다순으로 위원장을 돌아가면서 하자는 건 처음 들어봤다”며 “TF나 공청회 등을 통해 합리적 안을 만들어야 하니 우선 위원장을 뽑자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또 광고 관련 단체가 자율규제 단체장을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인신협 관계자는 “자율심의기구에 언론관계자가 아닌 광고주협회가 위원장을 맡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대부분 인터넷신문이 자율규제에 참여하고 있는데, 광고주와 불편한 매체를 정밀하게 들여볼 우려도 있다”고 했다.

반면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우리가 무조건 위원장을 맡겠다는 뜻은 아니었다”며 “인신위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인신위가 독립적인 기관으로 책임감을 갖고,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만약 이견이 있다면 총회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논의를 통해 결정하면 되는 사안이었다”고 했다.

④ 인신위 총회에서 ‘광고주협회 판정승’

이달 7일 열린 인신위 총회에선 광고주협회가 판정승을 거뒀다. 총회 결과 김기정 이사의 위원장 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광고주협회와 인터넷기업협회 등이 이 안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신협은 항의의 뜻으로 총회에서 퇴장했다. 이후 광고주협회가 제안한 정관 개정안이 통과됐다. 정관개정에 대한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면 광고주협회가 추천하는 인사가 신임 위원장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이날 광고주협회는 모두발언에서 “인신위의 발전을 위한 세 단체의 진정성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지금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위원장 선임을 기존의 이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명망 있는 인사 및 전문가 그룹으로 대상의 폭을 넓힘으로써 인신위가 공정하고 독립적인 기관으로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아직 장담할 순 없지만, 인신위의 공적 기능을 고려해 교수나 법조계 등 역량 있는 분을 모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인신협은 임시이사회를 열고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다. 인신위 탈퇴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신위 대신 신문윤리위원회에 가입하거나, 별도 자율심의를 진행하겠다는 것. 인신협은 회원사에 공유한 안내문에서 “(인신협) 회장이 퇴장한 상태에서 정관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개정안대로라면 인신위 위원장은 광고주협회와 인터넷기업협회가 먼저 3년씩 맡게 되며, 광고주들과 포털기업이 추천하는 인사가 인터넷 신문의 취재보도를 규제하는 꼴이 된다”고 했다. 인신협 관계자는 “광고주와 포털이 자율심의기구 장을 맡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현재 상황이 심각하게 우려되고, 해외 토픽감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번 갈등은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위원 추천과도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신위는 제휴평가위원 추천 권한을 가진 단체다. 현재 제휴평가위는 운영을 중단한 상황. 제휴평가위 운영이 재개된다면 광고주협회가 인사 추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그간 인신위의 제휴평가위원 추천을 두고 내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인신위와 인신협 사이에) 제평위원과 관련된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반면 인신협 관계자는 “그동안 광고주협회는 제휴평가위에 참여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을 했고, 위원 추천은 통상 위원장 몫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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