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논의가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언론계의 반발에는 정당성이 있지만 그간 스스로 문제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언론 스스로를 규제하는 자율규제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문, 인터넷신문 등 자율심의 가동

한국 언론은 이미 자율규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자율규제 기구는 공통의 규약을 제정하고, 언론 스스로 참여 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대표적인 언론 자율규제 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한국신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공동 설립한 기구다.

▲ 사진=Gettyimage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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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윤리위는 주요 신문과 계열사, 주요 뉴스통신사 등 100여곳이 서약을 맺고 있고 이들 언론의 보도와 광고 전반을 심의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국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에서 위원을 추천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신문들이 늘어나면서 2012년 인터넷신문사들을 주축으로 인터넷신문위원회가 출범하고 2013년 자율규약을 마련했다. 현재 800여곳의 인터넷 신문사들이 서약사로 참여해 인터넷신문위의 심의를 받고 있다. 심의는 언론 보도 및 광고 전반으로 신문윤리위와 유사하다. 언론, 광고, 법률, 소비자 등 분야의 학회 및 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위원을 구성한다.

▲ 한국 언론 자율규제 및 공적 규제 현황. 디자인=안혜나 기자
▲ 한국 언론 자율규제 및 공적 규제 현황. 디자인=안혜나 기자

2015년 출범한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언론사의 포털 제휴를 심사하는 독립기구로 자율규제 모델은 아니다. 뉴스제휴평가위는 어뷰징, 기사형 광고 등 부정행위에 대해 노출중단, 퇴출 등 제재를 하면서 사실상 심의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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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은 방송사별 자체 심의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와 별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한 공적 규제를 받고 있다.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의 경우 심의 결과가 재허가·재승인 조건에 반영되는 강력한 규제 모델이다. 표면적으로는 민간 자율기구지만 실제로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를 점하는 등 행정기구 성격이 강해 자율규제 전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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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규제 위원들 “심의하면서도 회의감 들어”

자율규제 기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당장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문윤리위는 최근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 관련 고인의 친구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듯한 보도에 심의했다. 심의 결과 11개 언론에 낮은 단계의 제재인 ‘주의’ 조치를 했다. 인터넷신문위는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일방의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해 논란이 된 언론에 대해 역시 ‘주의’ 조치를 하는 데 그쳤다. 

신문윤리위의 2013~2016년 일간신문 및 통신사 심의 내역을 종합하면 3400건에 대한 심의가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고강도 조치에 속하는 ‘관련자 경고’는 1건에 그쳤고, ‘공개 경고’와 ‘사과’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인터넷신문위의 경우 ‘경고’가 가장 높은 제재인데, 2021년 3249건을 심의한 결과 경고는 단 9건에 그쳤다. 

▲ 신문윤리위 일간신문 및 통신 심의 현황
▲ 신문윤리위 일간신문 및 통신 심의 현황

인터넷신문위원는 지속적으로 제재가 반복되는 등 서약 위반이 이어지면 서약사에서 퇴출할 수 있지만 심의 누적으로 퇴출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친 기사형 광고로 최근 포털에서 퇴출되고, 편파 기사로 선거 심의 제재를 받은 F언론사도 서약사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인터넷신문위 관계자는 “제재를 통해 퇴출시키는 게 아니라 계도에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율규제기구 전‧현직 심의위원들은 계도 목적조차 달성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전직 위원인 A교수는 “심의하면서도 ‘효과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심의에 따른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심의는 심의대로 부족하고 언론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언론 자율규제기구에서 활동 중인 언론인 출신 B씨 역시 “이 매체가 또 (안건으로) 올라오네? 이런 말을 늘 한다. 심의를 하면서 회의를 느낀다. 자극적 기사 문제, 기사 표절 문제, 기사형 광고 문제 등이 심각하지만 바뀌지 않는다”며 “개선이 없으면 기구 차원에서 강하게 조치해야 하는데 (서약사로부터) 회비를 걷고 있으니 제대로 조치를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인센티브’ 확보, 이용자 참여 모델 등 정비 필요

이런 가운데 자율규제가 언론보도에 따른 피해구제 강화를 위한 ‘대안’으로 조명받고 있다. 단, 대대적인 개편이 전제 조건이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실질적으로 자율규제기구가 소속 언론사를 규제하고 개선할 수 있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갖춰지는 등 전반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심의기구 통합’을 통한 자율규제 강화를 제안했다. 심석태 교수는 “심의가 실효성과 일관성을 가지려면 신문윤리위, 인터넷신문위에 방송사 등이 추가로 참여하는 통합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방송 분야는 ‘공적 규제’가 강한데, 자율규제가 정착되면 과잉 심의, 정치 심의 논란이 반복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완화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언론의 적극 참여를 위한 ‘인센티브’와 실효성 있는 조치가 중요하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인터넷신문위의 의뢰로 작성한 ‘인터넷신문 기사 광고의 자율규제에 관한 법제분석’ 보고서는 “자율규제 활동에 동참하는 인터넷신문사에 대해 정부광고를 배정하는 것에 대한 가산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실질적인 참여 독려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제언했다.

▲ 사진=gettyimage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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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태 교수는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도입되면 자율규제 기구에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며 “서약사에 인증 배지를 부여하는 등 제도를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규약을 위반하면 인증을 철회하는 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러면 독자 입장에서도 인증 배지 보유 여부를 언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기능을 통합 자율규제기구로 옮기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자율규제 기구의 자체 모니터를 통한 내용 심의 뿐 아니라 피해구제 및 분쟁조정 제도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며 “현재도 이용자의 신고를 통해 심의하고 있지만 큰 비중이 아니다. 다양한 창구를 열어놓고 이용자 참여형 자율규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언론사 스스로의 자율규제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 황용석 교수는 “기본적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절차를 거치기 전에 뉴욕타임스처럼 정정란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언론의 본래적 기능”이라며 “법이 고충처리인 제도를 강제하고 있는데 사문화된 조항이 됐다. 작동하지 않는 고충처리인 제도를 정상화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심재웅 교수는 “언론, 인터넷사업자 등 규제를 하려 하면 자율규제를 해야 한다는 반박이 많은데, 정작 규제 아젠다가 형성될 시점에는 자율규제를 강조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원 위치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언론 자유’ 요구가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책임’을 보여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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