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과반을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TBS에 대한 지원 근거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여권이 교통방송으로서의 역할 한계와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압박하는 가운데, 이강택 TBS 대표가 물러나라는 요구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TBS 지원 폐지를 위한 국민의힘 움직임은 이달부터 본격화했다.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당선인들이 총회에서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폐지 조례안’을 내기로 했고, 이달 4일 해당 조례안이 발의됐다. 조례안은 TBS를 서울시 출자·출연 기관에서 제외하고, TBS 소속 직원이 희망하는 경우 신설될 기관에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전에도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당선 이래 시의회의 TBS 예산 축소 의결, 오 시장의 ‘TBS 교육방송 전환’ 발언,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감사 등 TBS를 둘러싼 움직임을 보여왔다.

폐지 조례안은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교통안내 수요에 대한 급격한 변화는 물론, 방송분야에 대한 서울시민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했다. 언론계는 이 같은 주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나 교통방송 기능 불필요 등의 주장은 출연기관 폐지 사유가 될 수 없고, 이미 미디어재단으로 전환한 TBS는 교통방송보다 넓은 범위의 역할이 조례로 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민의 다양한 요구’라는 것 또한 자의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 TBS 사옥
▲서울 마포구 TBS 사옥

언론 관계 단체들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지역공영방송 TBS의 역할을 제대로 토론하고 정립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제안한 대로 서울시의회에 ‘공영방송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동수 추천의 자문단 구성 등이 가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강택 TBS 대표도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의회 내 공영방송 특별위원회 설치에 대한 공감대를 밝힌 바 있다.

조례안 폐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TBS 내부에선 이강택 대표 사퇴 요구가 나왔다. 지난 21일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 등 양대 노조는 언론·노동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어 ‘TBS 폐지조례안 철회 및 이강택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이들은 이달 초 각각 진행한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과반이 이 대표 사퇴 요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두 노조는 “이강택 대표는 정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여 이 위기를 만들었음에도 본인의 정치적 신념에 빠져 TBS를 위태롭게 한다”면서 “(이 대표는) 일련의 언론 인터뷰에서 구성원의 의지와 반하는 내용의 개인 의견을 연달아 피력함으로써 여론을 왜곡시키고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최근 왕성한 언론 인터뷰로 서울시의회 비판에 나선 건 사실이다. 이 대표는 3일 한겨레를 통해 “(조례안은) 현대판 분서갱유”라 칭했다. 4일 MBC라디오(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타깃으로 보인다면서 “시보완박”(시사보도 완전 박탈)이라는 표현을 썼다. 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선 여권이 “토끼몰이”를 한다고 규정했다. 25일에도 KBS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첫 째는 황당하다. 두 번째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화가 난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 대표의 주장이 국민의힘을 자극한다고 우려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퇴진 요구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공영방송이 정치권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독립성 논의가 한창인 지금 사실상 외부 압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대표 퇴진을 ‘협상 카드’로 쓰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이 대표는 2019년 TBS가 미디어재단으로 전환한 이래, 처음으로 시민참여단 평가(40% 반영)를 받아 선출됐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공영방송 대표에 대한 퇴진 요구가 의아한 지점은 많다.

이를 모르지 않을 구성원들이 왜 사퇴를 꺼내들었을까. TBS 내부에선 ‘뉴스공장’ 편향성·공정성 논란에 대한 대응과 TBS 역할 논의에 대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간 구체적 사유에 말을 아꼈던 조정훈 언론노조 TBS지부장은 26일 “지난 선거 전부터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는데 (사측이) 무시하는 식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 TBS노동조합 등이 21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폐지조례안 철회 및 이강택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 TBS노동조합 등이 21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폐지조례안 철회 및 이강택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조 지부장은 “이 대표가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하는 것이 틀린 내용은 아니고 저희도 주장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7월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많았던 시의회에서 공정성 시비 문제에 적극 나서지 못 했다 보니 외부 공격 빌미가 되어버린 상황”이라며 “경영자로서 예산을 어떻게 방어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논리로 공정성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라 평가했다.

이 대표도 한편으로는 사퇴 여지를 남기고 있다. 지난 8일 TBS사보 인터뷰에서 “거취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21일 한겨레 인터뷰에선 “(조례안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제대로 된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다면, 그날 즉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26일 “이강택 대표는 언론노조와 TBS지부가 시의회에 제안한 ‘공영방송 특위’를 사퇴의 선결 과제로 내놓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국민의힘과 오세훈 시장의 언행을 볼 때, 특위 구성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역 공영방송’의 대표라면 이 문제를 ‘지역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해 풀어야 한다. 모두가 어렵다고 한 재단 설립도 추진한 분이니, 지금의 문제도 TBS 구성원과 시민사회와 함께 풀 방안을 찾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간 미흡했던 TBS 내부 성찰의 문제를 대표 사퇴 형식으로 풀어가는 것에 대한 한계도 제기된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20일 “TBS구성원들은 좀 더 성찰하는 자세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 해법은 다른 데 있지 않다”며 “이제라도 TBS에게 등 돌린 시민들을 마주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울 시민 공동체의 지지를 받는 지속가능한 방송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TBS든 김어준 방송이든 열성적으로 지지한 분도 있지만 상당수 시민이 불만을 제기해온 것도 사실인데 그 불만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어떻게 불만을 수용하고 처리하고 문제를 개선할 건지에 대해서 충분히 노력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이제는 서울 지역의 공동체 소통에 기여하는 지역공영방송 목표를 사회적 논의로 정립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런 논의가 우선돼야 하는 만큼 국민의힘식 밀어붙이기 조례안이 부적절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김동찬 위원장은 “서울도 지역성이 구현되지 않는 미디어적으로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이고 그런 역할에 300억 이란 예산이 그렇게 낭비였고 불필요한 것이었다고 얘기할 수 없다”며 “TBS가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를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표성과 객관성 같은 것들을 담보할 수 있도록 공론을 모아 개혁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지부장은 “이전에도 (TBS에) ‘보도’라는 게 있긴 했지만 ‘시정 홍보’를 위한 성격이 강했다”며 “저희에게는 갑자기 ‘저널리즘’이란 게 훅 들어오게 됐다. 노력한다고는 했지만 시민들을 만족시키지는 못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TBS니까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킬러 콘텐츠’로서 시청률이나 청취를 담보로 잡아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이런 균형감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솔직히 부족했다”는 자성도 함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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