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동안 일한 아나운서들을 출산 이후 복직시켜주지 않아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에 진정이 제기된 연합뉴스TV가 조사 막바지에 한 명과 이례적인 재계약을 진행해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개국 이래 연합뉴스TV는 출산 후 퇴사한 아나운서뿐 아니라 다른 아나운서들과도 재계약한 전례가 거의 없다. 사측은 ‘필요에 의한 재계약’이라며 국가인권위 조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조치라는 입장이다.

2009년부터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에서 10년 넘게 일한 A씨는 2020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연합뉴스TV가 출산 이후 아나운서들을 복직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진정을 넣었다. 조사는 현재까지 진행 중인데, 조사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인권위원들의 심의 후 조만간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연합뉴스TV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TV 아나운서는 현재 총 24명인데, 이 중 1명만 정규직이다. 사진=연합뉴스TV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TV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TV 아나운서는 현재 총 24명인데, 이 중 1명만 정규직이다. 사진=연합뉴스TV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A씨는 2018년 5월 출산을 위해 일을 중단했다. A씨에 따르면 A씨는 회사 임원으로부터 ‘아이 잘 낳고 돌아오라’는 말을 들으며 출산을 준비했다.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A씨는 자신이 쓰던 짐을 사물함에 그대로 두고 나왔고, 출산 이후 수차례 복직 의사를 밝혔다. 평일이 안 되면 주말 뉴스라도 투입시켜달라고 했지만, 회사는 끝내 거부했다. 2년 넘게 기다리다 지친 A씨는 국가인권위의 판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A씨보다 두 달 앞서 출산 이슈로 그만둔 아나운서인 B씨를 포함해 같은 이유로 뉴스 진행을 중단한 아나운서는 총 5명이다. C, D, E씨는 A씨 퇴사 후 그만뒀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뉴스를 진행하다 출산을 계기로 그만두게 된 C씨도 자신의 SNS에 “하루아침에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프리랜서 신분이기에 최후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출산이 눈앞으로 다가왔고 저는 비록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후배들이 출산 후에도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는 분위기랑 방송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 조사가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E씨가 약 2주 전 연합뉴스TV 뉴스 진행자로 복직했다. 연합뉴스TV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프로그램 진행에 E씨가 필요했던 것 같다. 프리랜서들은 복직 개념이 아니다. 계약을 다시 하느냐의 문제다. 회사가 필요하면 계약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TV 로고
▲ 연합뉴스TV 로고

국가인권위 조사 막바지에 이뤄진 E씨의 복직은 정말 필요에 의한 재계약일뿐일까. 그동안 대부분의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채용해온 연합뉴스TV는 ‘재계약’한 전례를 찾기 힘들다. E씨의 ‘재계약’이 이례적이다.

연합뉴스TV 보도국 관계자는 “복직이 아니라 계약을 다시한 것“이라고 선을 그은 뒤 ”저희가 E씨에게 뉴스 진행을 할 수 있냐고 먼저 물어봤다. 본인이 괜찮다고 했고 내부에서 의견을 모아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복직 의사를 밝힌 A씨와 다른 아나운서들에게는 복직 의사를 왜 묻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연합뉴스TV 보도국 관계자는 “저희가 방송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하고 계약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가 곧 나올 것 같으니 급하게 내린 결정이 아니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E씨는 내부에서 평판이 좋았다. 뉴스 진행이 안정감 있었다. 두 달 전부터 물었고, 본인도 좋다고 했다.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져 복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국가인권위 조사 중 저와 친했던 E아나운서에게 회사가 갑자기 복직을 요청한 것은 같은 처지에 놓인 앵커들을 갈라놓으려는 악의적인 꼼수다. 인권위 조사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논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합뉴스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합뉴스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TV는 지난 18일부터 프리랜서 아나운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채용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TV는 지난 18일부터 프리랜서 아나운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채용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TV는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지속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연합뉴스TV 프리랜서 아나운서 모집.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모집합니다’. 지난 18일부터 연합뉴스TV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지원자들의 접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TV는 연합뉴스의 자회사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로부터 연간 약 300억 원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5월 기준 24명의 아나운서 중 남성 아나운서 1명만 정규직인 상황. 기상·뉴스캐스터 7명도 모두 ‘프리랜서’ 계약이다. 지난해 3월 기준 연합뉴스TV는 27명의 아나운서 중 남성 아나운서 2명만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회사는 다른 아나운서 25명에 대해서는 ‘프리랜서’로 계약을 진행했다. 기상·뉴스캐스터 10명도 모두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언론계의 대표적인 유리천장이다. 고위 간부나 임원급 중 살아남은 통계를 보면 출산 등 여성에게 불리한 유리천장 구조가 존재한다. 그게 결국에 저널리즘 품질을 저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연합뉴스는 공적 언론사다. 그러나 TV를 수익 추구의 수단으로만 보는 것 같다. 당장 눈앞에서 공격받으면 문제될 만한 것들을 해결해나가는 식으로 운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연합뉴스 새 사장에 내정된 당시 성기홍 연합뉴스TV 보도국장은 미디어오늘에 “연합뉴스TV 사장으로 정식 취임하게 되면 프리랜서 아나운서 채용 사안까지 포함해 연합뉴스TV의 전체적인 인력 관리에 대해 보고 받고 검토해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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