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직군 관련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 2명은 지난 6월18일 회사를 상대로 고용 형태 등 성차별 문제 이유를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김도희 TJB 아나운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프리랜서로 채용됐지만, 회사에 종속된 노동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MBC는 2016~2017년 당시 계약직으로 아나운서를 채용해 사측과 노동자가 소송 중이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김도희 전 TJB 아나운서가 지난해 10월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제공=국회방송 갈무리
▲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김도희 전 TJB 아나운서가 지난해 10월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제공=국회방송 갈무리

‘잡음’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고용 형태’다. KBS·MBC·SBS 등 소수의 지상파 정도만 정규직으로 아나운서를 채용한다. 이마저도 서울 지상파에 국한한 이야기다. 지역 지상파는 주로 80~90% 넘게 프리랜서와 계약직 등 형태로 채용한다. 케이블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등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규직 아닌 형태로 채용해 놓고 회사는 아나운서들을 ‘종속’시키려 한다. MBN은 현재 아나운서 전원을 프리랜서 형태로 채용하고 있다. MBN은 종편 개국 전 보도전문채널 매일경제TV 시절부터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채용해왔다. 전·현직 MBN 아나운서들은 “프리랜서는 상근직이 아니다. 심지어 계약직도 아닌데 윗선에선 방송 끝나고 바로 퇴근하는 걸 싫어한다. 신문 읽기 등을 하며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이라는 듯 이야기한다”고 토로했다.

▲ 왼쪽부터 연합뉴스TV와 MBN 프리랜서 아나운서 채용공고. 사진=채용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왼쪽부터 연합뉴스TV와 MBN 프리랜서 아나운서 채용공고. 사진=채용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프리랜서란 일정한 집단이나 회사에 전속되지 않은 자유계약에 의해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시간이 돈이다. 아나운서팀 사정에 밝은 MBN 관계자 A씨는 “프리랜서면 다른 행사나 개인 일정을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회사가 싫어한다. 특히 다른 방송사에 나가는 건 거의 못 하는 것 같더라. 정말 해야겠다 싶으면 부회장한테까지 보고하고 하는 거로 알고 있다”며 “하다못해 계약직으로도 채용 안 하면서 제약만 많다”고 지적했다.

지역 케이블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B씨는 “제가 담당한 방송프로그램 녹화시간이 아닌데도 회사로 나오게 해 잡일을 시켰다. 어느 날은 한 국회의원 후보자 인터뷰를 녹화촬영 하는데 인터뷰이를 위해 프롬프터 넘기는 역할을 하라고 했다. ‘작가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넘겨줬다”고 토로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도 회당 출연료를 받는 프리랜서지만, 회사 행사 진행을 무보수로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지난 4일 세종시 고용노동부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길바닥 저널리스트
▲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지난 4일 세종시 고용노동부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길바닥 저널리스트

프리랜서 채용은 MBN과 대전MBC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도 남성 아나운서 2명을 제외한 모든 아나운서를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한다. 지상파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 C씨는 “특히 보도전문채널은 뉴스 프로그램이 전부다. 아나운서가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한 방송사인데 정규직이 고작 2명이라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연합뉴스TV 아나운서는 총 30여 명이다. 전·현직 연합뉴스TV 아나운서들은 같은 보도전문채널인 YTN도 프리랜서로 고용하지만, 연합뉴스TV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평가했다. YTN 아나운서 총 22명 중 12명이 정규직, 10명이 프리랜서다. 현직 연합뉴스TV 아나운서 D씨는 “YTN 같은 경우엔 보던 얼굴들이 계속 나온다. 그래도 거기는 한번 쓰면 기회를 좀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국은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쉽게 고용하고 자른다. 전직 연합뉴스TV 아나운서 E씨는 “개편 시즌이나 신입 프리랜서 앵커를 채용하는 시즌이 오면 다들 마음을 졸인다. 혹시나 내가 나갈 차례가 되지 않을까. 항상 그런 불안감에 살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전화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받은 전직 연합뉴스TV 아나운서 F씨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가 갑자기 행정팀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 개편안에 이름이 없다고 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담당자가 ‘무슨 말인지 아시죠?’라고 했고, 계약은 해지됐다”고 말했다.

▲ 이각경(왼쪽) KBS 아나운서와 엄경철  KBS 아나운서의 나이 차이는 18살이다. 사진=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이각경(왼쪽) KBS 아나운서와 엄경철 KBS 아나운서의 나이 차이는 18살이다. 사진=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남자는 늙어도 중후한 맛이 있는데 여자는 늘 예뻐야 한다. 늙으면 안 된다는 관점을 누가 갖고 있냐면 시청자 몇 명이 갖고 있고, 방송국은 이를 무시할 수 없다.”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 2명은 지난 3월15일 사석에서 남성 간부 2명과 대화를 나눴는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젊은 여성 아나운서를 원하는 건 시청자일까, 경영진일까? 33년, 22년, 18년. 각각 JTBC와 MBN, KBS 남녀 앵커의 나이 차이다. 남자 앵커 나이가 월등히 많다. 물론 남녀 앵커 나이 차이가 나면 나쁜 거고 안 나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앵커 구성이 여성은 젊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는 걸 방증한다.

지역 KBS 소속 남성 아나운서 E씨는 “남자는 상대적으로 혜택이 있는 것 같다. 3년 새 여성 아나운서는 6~7번 바뀌었다. 반면 남성은 정규직 전환이 되기도 하고, 오래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지난달 3일 보도한 기사를 보면 16개 MBC 지역계열사에 근무하는 여성 아나운서 40명(8월 기준) 가운데 정규직은 11명(27.5%)뿐이지만, 남성 아나운서는 36명 가운데 31명(86.1%)이 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상파 소속 남성 아나운서 F씨는 “나이 들면 한국어연구실이나 심의실로 보낸다. 라디오 뉴스 정도만 진행할 수 있게 한다”고 지적했다.

▲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서울여성노동자회
▲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서울여성노동자회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이유를 묻자 방송사는 즉답을 피했다. 아나운서팀을 담당하고 있는 MBN 편성국장은 “오래전부터 이렇게 채용해왔다.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연합뉴스TV 관계자는 “지상파, 보도전문채널, 종편, 케이블 모두 비용 문제가 있을 것이다.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MBC 관계자는 “프리랜서로 뽑겠다고 해도 수백명이 지원한다. 하고 싶은 사람은 넘쳐난다”고 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고용 위치가 불안해 연대할 수 없는 점을 지적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노동조합 같은 협의체를 만들어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의견을 규합할 수도 없다. 설령 노조 같은 게 있다고 해도 문제 제기하는 노동자를 지지해주기 어렵다. 한번 투사 이미지로 낙인찍히면 다른 곳에 취업하기 어려워진다”며 “인권위나 노동청 같은 정부 기관은 개인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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