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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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MBC가 최근 자사가 채용했던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을 전원 계약 해지했다. UBC울산방송은 앞서 노동자성이 확인된 아나운서를 복직시켰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계약서 없이 단시간 근로를 시키면서 불복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MBC는 6년 간 일해왔던 아나운서 일감을 대폭 줄여 근로자 지위 확인 진정이 제기됐다.

방송계 대표 ‘무늬만 프리랜서’로 수차례 확인됐던 아나운서 직군이 전국 방송사에서 오히려 ‘해고’ 또는 불이익 바람을 맞고 있다. 2년 새 법원과 노동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각급에서 지상파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례를 내놨지만, 노동부가 적극 조치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방송사들이 아나운서들을 상대로 편법적인 ‘고사 혹은 자르기’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2년 넘게 일하다 한 마디에 잘린 목포MBC 아나운서들


목포MBC는 지난달 말 자사가 고용했던 프리랜서 아나운서 3명을 상대로 모두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 목포MBC는 2월 말 이들 아나운서에게 “프리랜서 제도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며 구두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통보는 지난 2월 중순 KBS강릉·춘천에서 일했던 아나운서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한 첫 고등법원 선고가 나온 직후에 이뤄졌다.

사실상 ‘해고 통보’였다. 이들은 2020년 안팎으로 서류와 카메라 테스트, 실무 면접 등을 거쳐 채용됐고, 3명 중 2명이 2년 넘게 목포MBC에서 일했다. 회사의 요구로 직속 부서장과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서에는 계약 기간마저 명시되지 않았다. 이 탓에 회사가 2월 말에 해지 통보를 한 뒤로, 이들은 문화예술인고용보험이 끝나는 4월 말일에 맞춰 계약 해지됐다.

회사는 이들이 입사할 당시 채용 공고에 없던 ‘개인사업자 등록’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목포MBC 측은 ‘너와 2년 넘게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등록해야 한다’고 이유를 대면서, 거부하면 입사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기간제 계약을 맺게 되면 정규직 전환해야 할 의무가 생기니 프리랜서 계약을 맺으라’는 요구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결국 이들 아나운서는 제 손으로 개인사업자 등록하고 2년 넘게 일하다, 회사의 한 마디로 잘렸다.

목포MBC는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일했다”는 입장이다. 목포MBC 제작국장은 통화에서 “(노동)법률에 맞게끔 했다”며 “기존 아나운서 업무뿐 아니라 뉴미디어 병행할 사람이 필요해 프리랜서 제도를 운영하지 않겠다고 사전에 (계약해지) 고지했다”며 “강릉KBS (노동자성 인정) 판결이 해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UBC 복직 소식 이면 “불복소송, 계약서 없어…말려죽이기”


UBC울산방송의 이미연 아나운서(가명)는 노동위원회에서 두 차례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인정 판정을 받은 직후 복직한 사례로 지역사회와 언론에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복직한 뒤로 현재까지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한 채 단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급여는 절반 넘게 줄었다. 회사는 그에게 ‘갑질 계약서’를 내미는 한편 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이미연씨(31·가명)가 UBC 아침 뉴스인 모닝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UBC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이미연씨(31·가명)가 UBC 아침 뉴스인 모닝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UBC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UBC는 지난해 11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패한 직후 이씨에게 복직을 명령했다. 하지만 UBC가 ‘이씨 맞춤 계약’이라고 내민 계약서엔 “사업주는 근로자가 사원으로서의 적격성이 부족하다고 인정될 때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적혔다.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인해 사업주에게 손해를 준 경우에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었다. UBC는 이같은 계약서를 수차례 제시했는데,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한 계약도 있었다.

이씨는 계약서 서명을 거부했다. 이씨 사건을 대리한 노무법인 시선 김승현 노무사는 “이 아나운서는 노동위로부터 UBC에서 6년 넘게 일한 노동자로 인정 받았기에 회사의 기간제 계약은 무효다. 그런데 회사는 1년짜리 계약서를 들고 왔고, 조건부 계약해지도 그 자체로 무효”라며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한 상황을 되돌리고 명확한 계약서를 쓰라는 것이 판정 취지인데, 회사는 아나운서가 알아서 포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같이 대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UBC울산방송이 이씨에게 작성을 요구한 근로계약서.  “사업주는 근로자가 사원으로서의 적격성이 부족하다고 인정될 때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인해 사업주에게 손해를 준 경우에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등 노동법 위반으로 보이는 조항이 발견된다.
▲UBC울산방송이 이씨에게 작성을 요구한 근로계약서. “사업주는 근로자가 사원으로서의 적격성이 부족하다고 인정될 때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인해 사업주에게 손해를 준 경우에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등 노동법 위반으로 보이는 조항이 발견된다.

이씨는 이를 회사의 ‘말려죽이기 작전’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그에게 하루 4~5시간만 일하도록 했고, 급여도 절반인 100만원 대로 줄였다. 이씨가 노동자 차별이라며 임금 책정 기준을 묻자 담당 상무는 “이씨가 가진 능력이나 우리가 이씨에게 가진 기대치를 봤을 때 최저시급 미만만 안 주면 된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이씨는 “회사의 압박과 차별은 제가 먼저 나가 떨어지게끔 하려는 괴롭힘이자 전략 같기도 하다. 노동자로 인정 받고도 진퇴양난”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이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도 추가로 제기한 상황이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UBC가 이씨와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아 노동자성 인정 판정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현재까지 116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UBC 경영관리팀장은 통화에서 이씨에게 제시한 계약서를 두고 “문제 된 조항은 일반적인 사항이며 차별을 위한 항목이 아니다”라며 “계약기간은 1년마다 갱신이 되기 때문에 무방하다. 이씨의 요구로 계약기간을 없앴다”고 했다. 이씨 노동자성을 인정하는지 묻자 “답변을 유보하겠다”고 했다.

광주MBC “계약해지로 급여 3분의 1 토막”

광주MBC도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다수 프로그램 계약을 해지하면서 ‘고사시키기’ 의혹을 사고 있다. 김동우 아나운서(가명)는 앞서 광주MBC와 전속 계약을 맺고 고정급을 받으며 일하다가, 2017년부터 회사 요구로 프로그램별로 계약을 맺었다. 김 아나운서는 “주로 메인진행을 포함해 6개 프로그램을 맡다가 코너 등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세가지만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급여는 3분의1 토막이 나 현재 100만원대 초반(수령 기준)으로 줄어들었다.

김씨 사건을 대리하는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는 “방송사의 다수 아나운서들이 정규직 아나운서와 다르지 않게 일하면서도 프로그램 별 도급계약을 맺는다”며 “그러다 보니 방송사들이 아나운서와 주된 계약을 해지하고 1~2개만 남겨놓는다면 노동자로서는 부당해고 구제신청마저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1일 오전 광주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동우 광주MBC 아나운서(가명)가 노동청 감독관의 진정 취하 종용 발언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지난달 21일 오전 광주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동우 광주MBC 아나운서(가명)가 노동청 감독관의 진정 취하 종용 발언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하 노무사는 “김 아나운서는 ‘가짜 프리랜서3.3’ 계약이 방송업계의 노동자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 사례”라고 했다. 김 아나운서는 광주고용노동청에 근로자 지위 확인 및 연차휴가수당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광주MBC 콘텐츠본부장은 “김 아나운서가 맡았던 프로그램은 콘텐츠본부와 보도본부로 나뉘어있다”며 “(콘텐츠본부 프로그램의 경우)의도적으로 김 아나운서를 그렇게(해지) 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경됨에 따라 적절한 업무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광주MBC 사측은 김씨의 노동자성을 두고 “노동청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개선 의지 없이 모면만 하는 방송사…노동부 방조도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은 “방송사들은 ‘무늬만 프리랜서’의 고용구조를 바꿀 의지가 없는 것이 근본 문제”라며 “자사 입장에서 ‘유연화’된, 불안한 고용 구조를 고수하면서 방송작가 근로감독 결과에서 보듯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모면하려는 조치만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어 “방송사는 한편 ‘고용노동부도 자신을 건들지 못한다’는 인식에 취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고용구조 근본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 일시적인 모면 조치만 계속되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용우 부위원장은 “노동부는 방송사를 근로감독할 때마다 보도자료에 ‘개선을 지도하고 예방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습관처럼 발표하지만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아왔다”며 “방송계 프리랜서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추세를 보면, 지금이라도 전체 방송사를 상대로 사전 예방 조치와 사후 엄중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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