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 이의 제기할 수 있는 기간 15일, 이후 1심 행정소송 기간을 고려하면 1년 이상, 2~3심까지 진행을 한다면 3~5년이 걸릴 수 있음을 알려드렸다.” e스포츠인 ‘리그오브레전드(LoL·롤)’ 프로게임단 감독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오자, 사측인 e스포츠기업 DRX가 언론에 밝힌 입장문 일부다.

DRX 감독 A씨를 대리한 이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14일 이를 두고 “언론이 아니라 선수 코치, 스태프를 향해 ‘너의 2~3년 생활에 목숨 줄을 쥐고 있다’는 협박을 보낸 것”이라며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거듭 이긴 감독을 향해 사측이 공개적으로 이런 주장을 밝히는 현실은 프로게임을 포함한 스포츠계의 노동문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프로스포츠와 미디어산업 등 ‘위장 프리랜서’ 관행이 만연한 업계에 노동자성 인정 판정이 이어지지만 사측은 사용자 책임을 피하려 ‘버티기’ 전략에 나서고 있다. 이에 당사자들과 권리찾기유니온은 이날 서울 용산역 ITX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약의 형식에 무관하게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전향적인 판정에 대기업의 대응 행태는 갈수록 후안무치”라며 “법률 대응뿐 아니라 사측을 압박하는 사회적 연대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근로자성 프리랜서 위장 고용실태를 고발하는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와 프로스포츠 및 E스포츠 감독·코치들과 대리인이 14일 ‘노동자성 회복하는 스포츠산업 가짜3.3 당사자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근로자성 프리랜서 위장 고용실태를 고발하는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와 프로스포츠 및 E스포츠 감독·코치들과 대리인이 14일 ‘노동자성 회복하는 스포츠산업 가짜3.3 당사자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e스포츠인 ‘리그오브레전드(LoL·롤)’ 프로게임단 감독 A씨의 부당해고 사건을 대리한 이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가 14일 ‘노동자성 회복하는 스포츠산업 가짜3.3 당사자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스포츠인 ‘리그오브레전드(LoL·롤)’ 프로게임단 감독 A씨의 부당해고 사건을 대리한 이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가 14일 ‘노동자성 회복하는 스포츠산업 가짜3.3 당사자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근 스포츠와 문화계에선 ‘위장 프리랜서’ 당사자의 법적 문제 제기와 이를 인정한 전향적 판정이 잇따랐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노위는 DRX측 ‘롤’ 프로게임단 감독으로 일한 A씨의 노동자성과 DRX 측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고용노동부 부산북부지청과 중부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은 각각 부산아이파크FC와 수원FC 프로축구단 유소년 감독·코치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퇴직금 미지급 시정명령을 내렸다. 

감독·코치들의 ‘프리랜서 형식’ 계약서를 살핀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는 “대등한 관계로 권리를 요구하지 말고 월급만 따박따박 가져가라거나, 도급과 근로계약과의 본질적 차이를 없애는 조항을 적어 놓아 이들이 노동자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하 노무사는 “1년 단위 계약 탓에 노동자들은 연말마다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불리한 노동조건의 계약을 제시받아도 거절하거나 이적하지 못했다”고 했다.

▲14일 ‘노동자성 회복하는 스포츠산업 가짜3.3 당사자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프로스포츠 및 E스포츠 감독·코치들과 대리인들이 피켓을 들고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14일 ‘노동자성 회복하는 스포츠산업 가짜3.3 당사자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프로스포츠 및 E스포츠 감독·코치들과 대리인들이 피켓을 들고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지노위 DRX 감독 부당해고 사건에 근로자위원으로 참석한 이오표 성북구노동권익센터장은 “사람들은 스포츠선수들을 ‘100억 연봉’ 키워드로 기억하지만 2군 선수들은 예나 지금이나 연봉 2700만원에 자기가 각종 비용을 대면서 최저임금을 받고 활동한다. 다만 잘 되면 100억을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졌을 뿐 노동자와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성 인정 판정을 받아 든 구단주와 e스포츠기업들은 이에 정면 불복하거나 시간 끌기에 나섰다. HDC스포츠는 부산아이파크FC 감독·코치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노동부 지시에 불응하고 있다. DRX도 감독·코치들에게 장기 법적공방을 예고했다.

‘위장 프리랜서’ 관행은 대기업이 사용자이며 사적 네트워크로 입직이 이뤄지는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정진우 권리찾기 유니온 사무총장은 “대표적으로 스포츠산업과 방송산업에선 대기업 또는 대규모 회사가 사업을 운영하고, 인맥과 학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폐쇄적인 취업시장을 가졌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사측은 이런 점을 이용해 노동자에게 압도적인 위력을 가지고 프리랜서 계약을 강요한다. 분쟁이 생기고 노동자성이 인정된 뒤에도 사측이 순순히 관행을 바꾸지 않는다”며 “5년까지 걸리는 장기 고비용 소송에 생계를 걸 노동자들은 거의 없을 거라는 계산”이라고 비판했다.

방송산업에선 방송작가와 스태프 당사자 등이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노동자성 인정 판단이 거듭되면서 노동부가 근로감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이 노동자성 인정 판정에 불복해 시정지시를 단순 불이행하거나 행정소송으로 직행하고, 정규직 노동자와 처우를 차별한 직군을 따로 신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권리찾기유니온은 프로스포츠계 프리랜서 위장 고용을 드러낼 근로감독 청원과 근로자 지위확인 공동진정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단체는 프로스포츠 기업 112곳과 대한체육회 등록단체 69곳 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하고, 청원 취지에 동의하는 종사자와 전문가, 팬클럽, 선수 가족 등 각계 대표자와 시민 1000명을 모아 온라인과 오프라인 직접행동에도 나설 것이라고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노동은 어디에나 있지만 스포츠 대기업들은 ‘산업 특성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노동을 가리고 있다. 이제는 노동부가 달라져야 한다. 계약형태가 아니라 실질을 따져야 한다. 기자회견은 그 시작”이라며 “노동청과 노동위원회에 판정이 종사하는 수많은 ‘가짜 3.3’(위장 프리랜서)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전남드래곤즈 중노위 판정도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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