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이 부당해고 피해자인 광주MBC 아나운서에게 진정 취하를 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노동행정기관이 피해당사자를 대놓고 우롱한다”며 노동행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근로감독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KBC광주방송을 방치하는 노동부에 대한 규탄도 이어졌다. 

권리찾기유니온은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 광주청년유니온 등 15개 단체와 함께 21일 오전 광주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고용노동청은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고, 피해당사자에게 진정 취하를 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김동우 광주MBC 아나운서(가명)는 직접 당사자 발언에 나섰다. 김 아나운서는 2016년 공식 채용절차를 거쳤지만 프리랜서 계약을 요구 받았고, 6년간 일하다 1월 프로그램 폐지·개편으로 하차를 통보받았다며 지난해 12월 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근로자지위확인 진정을 제출했다.

▲ 21일 기자회견에서 김동우 광주MBC 아나운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 21일 기자회견에서 김동우 광주MBC 아나운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김 아나운서는 지난 1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진정인 2차 출석조사에서 근로감독관이 10여 차례 무리하게 진정 취하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감독관은 “의견서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법리적으로 확률이 낮은 상황이다”, “진정으로는 해결이 잘 안될 것이다. 좋은 변호사 알고 있는데 소개해주겠다”며 민사 소송을 재차 권했다고 김 아나운서는 증언했다. 

이어 감독관은 “광주MBC 사장들은 저명인사다. 김00, 송00, 이00, 형사처벌이 진행된다면 이 세 사람을 피의자 조사로 소환해야 하는데 일이 커진다. 제일 곤란할 때가 형사입건된 피의자가 사회 저명인사일 때다”라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광주MBC 정도면 지역사회의 압력이 어마무시하게 들어온다”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김 아나운서는 “말문이 막혔다. 근로감독관이라면 근로자를 프리랜서로 위장해 연차수당을 미지급한 피의자를 지도개선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피의자에게 혐의가 있다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해달라. 이후 검찰과 법원에서 판단받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유경 노무사(MBC·KBS 방송작가 법률구제 대리인)는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주장하는 다수의 방송 비정규직들에 대하여 ‘법원의 판결이나 노동위 판정 등 판단의 근거로 삼을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성 인정을 회피했다”며 “이제 다수의 인정 사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역내 압력이 적지 않다’, ‘민사소송으로 가는 게 더 깔끔하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핑계들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찾기를 대놓고 가로막는 행태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 21일 김유경 노무사(MBC·KBS 방송작가 법률구제 대리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 21일 김유경 노무사(MBC·KBS 방송작가 법률구제 대리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이런 가운데 노동부는 지난해 12월30~31일 KBC과 KNN부산경남방송에 이른바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해온 일부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하고 이들과 근로계약할 것을 시정명령했지만, 단 한명의 직접고용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지난해 7월부터 KBC 내 ‘프리랜서’ 직군 50명에 대해 근로감독한 결과 4명(8%)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했다. 방송작가 2명과 업무보조원(AD 업무 포함) 2명이다. 이들은 KBC에서 3~15년 일해, 모두 기간제 아닌 고용이 보장되는 근로계약 대상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내린 지 4달여 지난 현재 KBC와 KNN이 근로감독 결과에 따라 직접고용한 인원은 1명도 없다. KBC는 노동자성이 확인된 4명 가운데 1명(방송작가)과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업무보조원 1명은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해 업무위탁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2명(방송작가 및 업무보조원)은 퇴사했다. 이들 방송사는 이 같은 방침을 담은 이행 결과를 노동부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가 KNN와 KBC 근로감독 과정에서 노동자성 판단에 소극적인 잣대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역방송사들의 경우 소품 제작, 잡무 지시 등 방송사의 지시와 감독 관행이 더욱 뿌리 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동자성 인정 비율은 지상파 3사의 경우보다 낮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4월 CJB청주방송 근로감독 결과에선 프리랜서 57%(21명 중 12명)에 대해 노동자성이 확인됐다. 지난해 말 지상파 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에선 42%였다. KNN와 KBC의 경우 8~14%에 그쳤다.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시정명령에도 꿈쩍하지 않은 방송국의 이러한 안하무인의 태도는 피진정인의 지위를 고려하며 외압과 지역사회 눈치나 보는 노동청과 근로감독관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하은성 노무사(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는 “사업주들이 함부로 노동자성을 빼앗을 수 있는 사회적 배경에는 불량한 노동행정이 있다”며 “광주고용노동청은 이와 같은 시정결과보고서를 제출한 회사들에 대하여 시정명령 불이행으로 간주하고, 다시 시정지시를 요구한 뒤 미이행 한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입건하는 등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근로감독 결과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을 위해 광주MBC, KBC 등 근로감독 또는 노동자성 진정이 제기된 사업장에 대하여 실태조사를 추진한 뒤 근로감독 재실시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21일 광주고용노동청 긴급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 21일 광주고용노동청 긴급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하은성 노무사, 홍관희 민주노총법률원 광주사무소 노무사 등 3인은 황종철 광주고용노동청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서는 행정조치 실행 촉구서를 전달해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당사자의 취약한 지위를 악용하여 취하를 종용하는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수칙을 보완할 것, 근로감독결과 등에 따른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사업장에 대해서 강력한 행정조치를 실행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하은성 노무사에 따르면, 황종철 청장은 “담당 근로감독관이 (김동우 아나운서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맞지만, 본인은 전체적인 맥락상 취하를 종용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며 “다른 대안도 있다고 말한 것 같은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 있으니 잘못한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조치를 주었다”고 밝혔다. 

이어 “(KBC) 방송사 특성도 있기 때문에 타 근로감독과 비교하여 노동자성 인정비율이 낮다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근로자로 인정된 사람들에 대한 KBC의 대응이 시행명령을 이행한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판단하지 않았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제대로 이행했는지는 당연하게 확인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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