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 언론인의 전쟁 국가 취재를 허가제로 한다는 것. 언론이 해당 국가가 아니라 자국 외교부에 ‘제가 그곳을 취재해도 될까요?’라고 일단 물어봐야 한다는 것. 그건 검열이다.”(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

외교부가 한국 언론인의 국제 분쟁지역 취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가하는 현행 제도가 국제 보도의 질을 낮출 뿐 아니라 언론 검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언론계와 학계에서 나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보도’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보도’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보도’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발제에 나선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독립PD협회 위원장)는 분쟁지역을 취재하다 정부가 여행금지제도를 도입하면서 겪은 일을 설명했다. 김 PD는 “2006년 한국인이 탄 배가 나포됐던 소말리아에 갔다. 외교부는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가, 공무원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취재진이 들어가게 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렇게 소말리아가 첫 여행금지국가가 됐다”며 “한국의 국제분쟁뉴스는 2007년 이후 대부분 외신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여권법으로 여행 금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여권법 17조는 외교부 장관이 분쟁 중인 국가나 지역에 여권 사용과 방문, 체류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다. 취재 보도 등 사유가 있을 땐 외교부 장관이 판단해 예외적으로 허가하도록 하고 있다. 김 PD 따르면 외교부가 6개월에 한 번 여행금지를 해제 또는 지정하는 위원회를 여는데, 2007년 여행금지국가를 첫 지정한 뒤 15년 간 해제한 사례는 없다.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독립PD협회 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독립PD협회 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 PD는 “2007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2011년 내전이 난 예멘, 이후 시리아와 리비아까지 각국을 취재하다 외교부가 여행금지국가로 묶으면 쫓겨나곤 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여행금지국가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국민이 위험할 수 있다’는 포괄적인 이유로 직업 행위를 못하게 하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실은 국가권력이 공무원 보신주의와 자기 편의를 위해 개인과 언론의 자유를 좌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PD는 “분쟁지역에 취재를 신청하면 외교부 측 공무원은 ‘왜 PD님이 굳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CNN이나 BBC가 있고, 그들이 훨씬 뛰어나다’라고 말한다”며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100명의 언론인이 분쟁지역에 있으면 100명의 시각이 다 다를 뿐 아니라, 분쟁 지역에 가면 어느 매체가 오더라도 ‘맨 땅에 헤딩’이고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외교부가 취재를 허가제로 운영하며 검열을 행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외교부는 분쟁지역 취재를 신청한 언론인에게 취재 내용과 일정, 경로를 표기해 제출하도록 한다. 김 PD는 이에 “언론인끼리도 뭘 취재할지는 기밀”이라며 “그런데 외교부가 데스크가 된다. ‘이 아이템은 해도 된다, 안 된다’를 얘기한다. 그래서 반발하면 ‘장관 님이 안 된다고 한다’고 답한다”고 했다. 그는 “코미디가 따로 없다. 외교부가 이것은 검열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취재진에 숙박 예약 내역과 경호업체와 계약했다는 계약서도 제출하도록 한다. 김 PD는 “경호업체 비용은 하루에 1만2000달러에 달한다. 가난한 독립PD 등 취재진에게는 허용을 안 해줄뿐더러 KBS 기자라도 어렵다”며 “경호업체 이름과 금액까지 다 쓰게 하는데, 전쟁 취재에서 경호원 신분은 절대 노출하면 안 되는 사항”이라고 했다.

지난달 외교부 허가로 우크라이나에 입국해 이틀 간 체르니우치 지역을 취재했던 유원중 KBS 유럽지국장 겸 파리특파원도 외교부의 취재 금지가 전쟁보도 질을 저하시킨다고 우려했다.

유원중 특파원은 “우크라이나 현장을 취재하면서 한국 정부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전쟁 보도를 사실상 취재보도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규제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경험했다”며 “한국언론이 특히 전쟁 보도에서 취약한 이유는 경험 부족 때문이며, 경험 부족은 정부가 취재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원중 특파원은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현재 러시아와 중국 측, 그리고 미국과 EU 등 서방 사이 패권전의 양상을 띠면서 서방 언론은 중립성을 잃고 있다”며 “그런데 한국에선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받아쓰기 보도를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서방의 제재에 참여한 국가로 전쟁이 장기화되면 보복 조치를 당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는데 (현장 취재가 불가해) 국민이 판단할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하재식 미국 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도 “미국 등 서방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이번 전쟁을 통해 적잖은 한계와 문제점도 노출했다”며 “서방 언론은 이번 전쟁을 ‘러시아의 침공’과 ‘우크라이나의 저항’, ‘정당한 이유 없는 침략’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했다. 하 교수는 “BBC에서 일했고 현재 런던대에서 연구하는 자혜라 하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했을 때 침략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과거 모습에 의문을 제기 했다”며 “국제보도에서 서구 언론에 기대는 한국언론이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는지 성찰해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원중 특파원은 “2009년 프랑스의 경우 방송기자가 아프간 현장에서 납치되며 1년 넘게 국민적 논란과 관심사가 됐지만, 언론에 대한 정부의 직접 규제가 생기지 않았다”며 “한국기자협회 등 한국의 언론 관련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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