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KBC광주방송과 KNN부산경남방송을 근로감독한 결과 방송작가·AD 등 일부 ‘프리랜서 비정규직’ 12명을 직접고용하도록 시정명령했다. 그러나 두 방송사는 노동자성이 인정된 인원을 사실상 모두 프리랜서로 유지한다는 내용의 이행 결과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고 이재학 PD가 일했던 CJB청주방송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무늬만 프리랜서’ 근로감독이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정작 방송사들이 직접고용 지시도 편법으로 피해가며 근로감독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부산 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해 12월30~31일 KBC와 KNN에 이른바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해온 일부 방송작가, AD, 스크립터 등의 노동자성을 확인하고 이들과 근로계약할 것을 시정명령했다. 노동부는 지난해 7월부터 KBC 내 ‘프리랜서’ 직군 50명에 대해 근로감독한 결과 4명(8%)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했다. 방송작가 2명과 업무보조원(AD 업무 포함) 2명이다. 이들은 KBC에서 3~15년 일해, 모두 기간제 아닌 고용이 보장되는 근로계약 대상이다.

▲KBC광주방송과 KNN부산경남방송 로고
▲KBC광주방송과 KNN부산경남방송 로고

KNN의 경우 프리랜서 직군 58명 가운데 제작팀 방송작가 6명과 보도팀 스크립터 2명 등 8명(13.8%)이 노동자성을 인정 받았다. 이들도 KNN에서 2년 넘는 3~16년 근무해 정년이 보장되는 근로계약 대상이다. KNN 내 프리랜서 직군은 아나운서와 캐스터, 리포터, 방송작가, 스크립터, DJ, VJ, 패널 등이다. 노동부는 근로감독 결과. 방송작가 총 23명 가운데서도 26%에 대해서만 노동자성을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내린 지 3달여 지난 현재 KBC와 KNN이 근로감독 결과에 따라 직접고용한 인원은 1명도 없다. 이들 방송사는 노동자성이 확인된 이들 전원과 프리랜서 또는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이 같은 방침을 담은 이행 결과를 노동부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KBC는 노동자성이 확인된 4명 가운데 1명(방송작가)과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업무보조원 1명은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해 업무위탁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2명은 퇴사했다. KNN은 노동자로 인정된 방송작가와 스크립터 8명 중 퇴사자(작가)를 제외한 7명 전원과 프리랜서 계약했다. 다만 KNN은 방송작가 원고료를 12% 인상하는 한편 매년 계약을 갱신(계약 유지)하는 조건을 유지하기로 했다.

▲방송국 주조정실 자료사진
▲방송국 주조정실 자료사진

방송사들이 노동자성이 확인된 업무에 프리랜서 ‘고용’을 유지하면서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을 유지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노동부는 ‘방송사와 당사자 합의’라는 입장이지만, 최근 방송작가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도 사실상 ‘프리랜서’를 택하도록 강요받아왔다는 것이다. KBS의 경우 노동자성이 확인된 방송작가 70명 중 2년 넘게 일한 9명만 무기계약(고용보장 되는 근로계약) 직접고용하면서 직무도 행정직으로 돌려 논란이 일었다.

부산노동청 관계자는 “KNN이 노동자성 인정 대상 전원이 ‘프리랜서로 남기를 희망한다’는 당사자 확인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이에 염정열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사측이 노동자성을 인정 받은 방송작가의 직무와 역량을 인정하지 않고 저임금과 다른 업무를 적은 계약을 제시하며 직고용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일은 TBS 직접고용 때부터 반복됐다. 이번 두 지역민방의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가 KNN와 KBC 근로감독 과정에서 노동자성 판단에 소극적인 잣대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방송사들의 경우 소품 제작, 잡무 지시 등 방송사의 지시와 감독 관행이 더욱 뿌리 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동자성 인정 비율은 지상파 3사의 경우보다 낮은 점에 비춰서다. 앞서 지난해 4월 CJB청주방송 근로감독 결과 프리랜서 57%(21명 중 12명)에 대해 노동자성이 확인됐다. 지난해 말 지상파 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에선 42%였다. KNN와 KBC의 경우 8~14%에 그쳤다.

▲사진=방송작가유니온
▲사진=방송작가유니온

노동부는 KBC 방송작가 12명 가운데 ‘홈쇼핑 잡무’ 여부를 기준 삼아 2명만을 노동자로 인정했다. 방송제작과 관련된 작가의 업무엔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광주노동청 관계자는 “두 작가가 맡은 라이브커버스(홈쇼핑) 관련 업무는 지시관계가 상당했지만, 나머지 10명 방송작가의 업무는 자율적이고 재량권 있는 업무가 대부분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노동부가 방송사들의 시정지시 이행 여부를 보다 엄격하게 감독해 추가 지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노동청 관계자는 KNN이 방송작가들과 맺은 ‘계약 갱신’ 조건이 지켜지는지 감독할 의향을 묻자 “보수에 관해서 노동부는 관여할 수 없고, 2~3년 뒤 문제가 제기되면 감독에 나설 수 있지만 당분간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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