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3사가 노동자성이 확인된 방송작가 총 152명 가운데 단 18명에 대해서만 고용 보장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20명은 프리랜서로 방송작가 업무를 계속하기로 했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3사 내 방송작가 상당수가 ‘무늬만 프리랜서’임을 인정한 근로감독 결과를 내놓으며 전향적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방송사들이 시정조치에서 ‘방송작가는 노동자’임을 부정하는 결과를 내놨다는 지적이다. 노동부는 시정지시 취지를 거스른 이행 결과에도 후속 조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부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비례)에 제출한 ‘방송3사 방송작가 직접고용 시정지시 결과’에 따르면 지상파3사는 노동부가 앞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한 152명의 작가 가운데 3사 도합 18명에 대해 무기계약직 직접고용 계약을 체결했다. 49명에 대해서는 최대 2년 기간제 계약을 맺었다. 28명은 프리랜서 신분을 유지하기로 했다. 나머지 57명은 퇴사했다.

▲지상파3사.
▲지상파3사.

KBS는 노동자성이 인정된 70명의 방송작가 가운데 9명(12.8%)만 무기계약 직접고용했다. KBS는 이들 직무를 행정직으로 옮겼다. 계약직 전환 방송작가는 26명(27.1%)이다. KBS는 ‘방송지원직’을 따로 신설해 이들에 새 취업규칙을 적용했다. 14명(20%)은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남기로 했다. 21명(30%)은 회사를 떠났다.

‘프리랜서 형태로 방송작가 업무를 지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 노동부 시정지시 취지이지만, 현재 프리랜서로 남은 작가들은 근로감독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방송제작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관계자는 “(노동자성 우려를 없애기 위해) 출퇴근 감독을 하지 않고 있고, 업무 내용도 계약서에 따라서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MBC의 경우 노동자성이 인정된 33명 가운데 3명(9%)과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기간제 고용은 9명(27%)이다. MBC도 방송작가들을 기자와 PD가 속한 일반직에 배치하지 않고, ‘방송지원직’이라는 직군을 신설해 여기에 배속시켰다. 이에 따라 방송작가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등 처우에도 차이를 적용받게 된다. MBC 무기계약 전환자의 경우 보도국 소속 방송작가 업무를 계속하기로 했다. 13명(39%)은 MBC를 떠났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8명은 사내벤처 팀에서 일하기로 했다.

반면 MBC는 ‘뉴스외전’ 작가 2명 등 일부 작가들에 대해서는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받은 뒤에도 이들과 프리랜서 계약 종료를 강행했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MBC는 시정지시 이행 결과에서 이들 작가를 ‘퇴사자’로 처리했다. MBC는 시정지시 전부터 계약종료를 통보했으며 현재 이들의 후임자가 정규직 기자들이니 시정지시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SBS는 49명의 방송작가가 노동자성이 인정됐지만, 고용 보장 계약을 맺은 방송작가는 6명(12.2%)이다. 모두 보도국 소속 방송작가 업무를 하기로 했다. 14명(28.5%)에 대해선 2년 미만 기간제로 고용했다. SBS는 이들을 ‘별정직’으로 고용했다. 6명은 프리랜서로 남기로 했다. 시사교양의 막내작가들은 모두 기간제 계약을 맺었고, 서브작가는 모두 프리랜서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프리랜서 작가들은 근로감독 당시와 다름없이 사측 지시와 감독에 따라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BS는 방송작가들과 새로 계약하는 과정에서 직접고용 시 급여로 기존 급여보다 10% 적은 금액(세전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겸직 금지 의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방송제작 사이클에서 특정 일에만 밤샘작업이 몰려 유동적인 출퇴근을 필요로 하는 기존 서브작가 업무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염정열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이를 “작가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도 ‘울며 겨자먹기’로 프리랜서를 택하도록 하는 배경”으로 꼽았다.

▲사진=방송작가유니온
▲사진=방송작가유니온

한편 노동부가 방송3사에 추가 시정지시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지나친 소극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정지시 대상도 최소한도로 잡아 각사에 안내한 데다, 사실상 시정지시를 거스른 처사에도 손놓고 있다. 노동부가 제출한 이행결과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성이 확인된 152명 가운데 20여명의 작가에 대해서는 시정지시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근로감독 결과 발표 이전에 퇴사했다는 이유다. 시정지시 이후 퇴사한 34명에 대해서도 퇴사의 자발성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MBC는 시정지시 당시 현직으로 일한 ‘뉴스외전’ 방송작가에 대해 추후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프리랜서 계약종료를 강행했다. 노동부는 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 관계자는 (뉴스외전 작가의 경우) “시정지시 취지는 ‘그 사람은 이미 근로자이니 근로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라’는 것인데, 근로자와의 계약도 만료되면 해지할 수 있지 않나”라며 문제 삼지 않겠다는 취지로 밝혔다. 그러면서 “시정지시는 다 했다”며 “당사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 절차를 통해 계약종료 정당성 여부를 다퉈야 한다”고 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은 “노동부가 지상파 3사에 처음으로 근로감독을 진행했다.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선례를 찾기 어려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했지만 방송사들은 후속 조치 과정에서 사실상 방송작가 직군의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시정지시 취지를 회피하는 방식을 고집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용우 부위원장은 “결과적으로 작가의 ‘무늬만 프리랜서’ 상태는 반복될 텐데, 노동부의 무대응은 이를 두손 놓고 보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3사와 노동부가 근로감독과 시정지시의 본령에 부합하도록 작가 직군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방식의 고용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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