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가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정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취재작가 선발은 메인작가 권한’이라며 방송사의 사용자성을 부정한 초심을 취소한 데 이어 시사교양 서브작가가 노동자라는 첫 판정도 내놨다. 방송작가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인정 판정이 거듭되는 상황에 개별적 법률 다툼에서 나아가 정책당국이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직접 제기되기도 했다.

중노위는 지난 20일 TBS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부당해고 재심 사건에서 시사교양 서브작가 A씨의 부당해고를 인정한 초심을 유지한다고 판정했다. A씨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TBS의 계약해지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TBS 사옥. ⓒTBS
▲TBS 사옥. ⓒTBS

A씨는 지난 2020년 10월부터 TBS의 생방송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 서브작가로 일하다 2021년 11월10일자로 ‘해고’됐다. TBS는 A씨와 3차례 집필계약을 맺고 일하다, 시청률 하락으로 인한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구두로 해고 통보했다. A씨는 이것이 부당해고라며 구제신청했고, 서울지노위는 “A작가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TBS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TBS는 불복했으나 중노위가 이를 기각했다.

“메인작가 책임” YTN·TBS 주장 기각


지난 3일엔 YTN 취재작가 B씨가 중노위에서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인정 판정을 받아냈다. 중노위가 서울지노위 판정을 뒤집고 B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B씨는 지난해 4월부터 YTN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큐S프라임’ 취재작가로 일하다 만료일까지 다섯 달 남기고 중도에 계약이 일방 해지됐다. 서울지노위는 ‘B씨는 메인작가가 선발한 프리랜서’라는 사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중노위가 이를 뒤집었다.

▲YTN 사옥
▲YTN 사옥

TBS와 YTN은 각 사건에서 ‘메인작가가 이들 작가에게 업무지시와 채용 권한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방송작가를 ‘무늬만 프리랜서’로 쓰는 방송사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중노위 심판위원회는 이번 판정에서 이를 반박했다. 일례로 중노위 공익위원은 TBS 작가 B씨의 부당해고 사건을 다루며 TBS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메인 작가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니고 메인 작가도 채용된 사람인데 무슨 근거로 메인 작가가 채용을 할 권한이 있다고 하느냐”고 했다. 나아가 “메인, 서브, 막내 작가든 (TBS와 맺은) 집필 계약서상 ‘업무 내용’은 같다”고 지적했다.

YTN 작가 사건에서도 사측은 ‘PD가 직접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지 않았고 메인작가가 자신의 필요로 선발해 도급계약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B씨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측은 “메인작가 필요에 의해 사적으로 고용한 취재작가에 돈을 대신 지급할 방송사가 어디 있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중노위도 YTN이 B씨의 계약당사자이자 급여 지급 주체였다는 이 반박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해고 말았어야 할 방송사, 비정상적 시도 계속”


TBS 방송작가 부당해고 재심에서는 “언제까지 방송작가들이 개별적인 법률 대응을 해야 하느냐”는 심판위원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A씨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유경 노무사(돌꽃 노동법률사무소)에 따르면 주심 공익위원은 이 자리에서 “방송작가 사건이 요즘 많은데 사건마다 오가는 내용과 사용자 대응이 ‘데자뷰’ 같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개별 법률대응으로 갈지 답답한데, 노동부가 근로감독한 이후 별도 조치를 한 게 있느냐”고 물었다. 김유경 노무사는 “없다”고 답했다. 주심 공익위원은 이에 ‘정책당국에서 뭔가 해야 할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KBS전주방송총국 앞에서 A작가 복직을 촉구하면서 진행된 촛불집회. 사진=방송작가유니온
▲지난해 12월 KBS전주방송총국 앞에서 A작가 복직을 촉구하면서 진행된 촛불집회. 사진=방송작가유니온

앞서 노동부는 KBS·MBC·SBS를 특별근로감독한 결과 방송작가 152명이 프리랜서 아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단을 내놨다. 그러나 시정지시 결과 방송사들이 방송작가로 고용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은 경우는 3명에 그쳤다. 방송사들이 방송작가들의 직무를 옮기거나 기간제 계약을 맺으면서다. 일부 작가들엔 직접고용 명령을 받고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추가 지시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 노무사는 통화에서 “(거듭되는 방송작가 부당해고 판정은) 사실 방송사들이 애초에 해고를 저질러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이 거듭 확인된 뒤에도 방송사들은 방송작가 직무를 정규직으로 마련하지 않고 방어에 혈안이 되면서 비정상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방송사들은 지금부터라도 정규직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비정규직에 근로계약을 맺고 업무를 지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책당국인 노동부가 역사적인 근로감독 결과를 내놓고서 더 엄중하고 철저하게 후속 조치를 했다면 현실은 달랐을 것”이라며 “앞으로 노동부가 관련한 근로감독을 실시한다면 이행 점검까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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