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가 ‘무늬만 프리랜서’에게 겸직을 허용하고 취업규칙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을 두고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내심의 의사에서 비롯된 조치’라고 지적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례가 나왔다. 방송사가 방송제작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쓰는 악습을 유지하면서 법적 다툼에 대비해 노동자성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 데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다.

중노위는 지난 7월20일 TBS 시사대담 프로그램 방송작가 A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인정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중노위는 “A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TBS가 A씨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해고의 서면통지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해고는 부당하다”고 했다.

작가 A씨는 2020년 10월부터 TBS와 총 세 차례 집필계약서를 갱신하며 일하다 개편을 이유로 2021년 11월10일자로 해고 통보 받았다. TBS 측은 A 작가에게 그가 속한 ‘월수팀’이 ‘화목팀’보다 경력이 짧았다고 해고 사유를 설명했다. A씨는 올 초 이 사건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신청했다. 중노위는 지난 6월 초심에 이어 A씨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TBS에 원직복직에 갈음한 금전 보상을 하도록 명령했다.

▲TBS 사옥. ⓒTBS
▲TBS 사옥. ⓒTBS

판정서를 보면 중노위는 “이 사건 사용자(TBS)는 이 사건 회사의 방송작가(A씨)가 타 방송사에 겸직할 수 있고 TBS에 대한 전속성이 부인되고, 방송작가 업무가 제3자로 대체 가능하고, A씨가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으며 작업 도구로 A씨의 개인 노트북을 사용하는 이유를 들어 A씨가 사업장 또는 사업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사측 주장을 나열했다.

중노위는 이어 사측의 주장을 가리켜 “이들은 TBS가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항들로서 TBS가 이 사건 근로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심의 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와 같은 사정들은 A씨와 TBS 간 근로관계의 실질을 평가함에 있어 부차적 요소로 작용할 뿐 핵심 징표로 삼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중노위는 A씨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는 주요 이유로 TBS의 업무 내용을 정하거나 결정권을 관철할 수 없었으며,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개입을 받으며 업무를 구속받았다고 했다.

A씨가 △생방송 시사프로그램 특성상 방송작가 재량으로 업무 내용을 정하거나 TBS 측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던 점 △주된 업무인 대본을 쓰면서 담당 PD의 지휘·감독을 실질적으로 받은 점 △근무시간과 장소가 계약에 명시돼 있지 않지만 방송작가는 오전 11시 아이템 회의에 참석했고 늦으면 미리 지각 사실을 알려야 했던 점 등을 들었다.

TBS는 심판회의에서 담당 PD의 지시를 두고 ‘도급관계에서 흔히 있는 건의나 검수 행위’라고 주장했는데, 중노위는 이에 “담당 PD의 개입과 관여 및 그 정도는 도급 내지 위임관계에서 결과물에 대한 사전 요구와 사후 평가, 건의 수준을 넘어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개입”이라며 “A씨의 업무를 곧바로 구속한다”고 반박했다. 담당 PD는 A씨 대본에 △‘Q6번은 중요하니 ‘삭제가능’을 지워주세요’ △‘Q11, 11-1 빼주세요’ △‘Q2번 그냥 친박인사 빼구요’ 등 구체적인 지시를 해왔다는 것이다.

중노위에서 A씨를 대리한 김기홍 노무사(돌꽃 노동법률사무소)는 “중노위는 초심에 이어 TBS가 A작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 감독을 했다고 봤을 뿐 아니라, 사측이 추가로 내놓은 주장도 부가적 요소에 그친다고 못 박았다”며 “사측이 복무규정과 취업규칙을 적용하거나 근로시간을 정하지 않고, A씨가 하루 정도 자신의 업무를 지인에게 대타로 맡겼던 점 등에 대해서 핵심이 아닌 부가요소임을 재차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우 민주사회을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대법원은 노동자성 판단기준으로 10여가지 징표를 나열한 바 있다. 또 사회보장 제도상 지위나 기본급 설정 여부 등 부차적 요소를 가지고 쉽게 노동자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며 “중노위는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 판례를 따르는 데에서 나아가, 사측의 노동자성 배제 의도가 엿보이는 측면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TBS 관계자는 “사건 판정서를 지난달 25일 송달받아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TBS는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불복 소송 제기하지 않으면 판정은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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