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주MBC 프리랜서 부당해고 철회 합의 후에도 프로그램 개편 과정에서의 고용유지가 불투명한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부당해고 피해자가 직접 발언에 나섰다. 

방송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 특별진정을 접수한 김동우 광주MBC 아나운서(가명)는 23일 광주MBC ‘일하는사람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 주최 기자회견에서 "광주MBC는 ‘프리랜서’라고 규정하며 한 사람의 노동을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아나운서는 2016년 공식 채용절차를 거쳤지만 프리랜서 계약을 요구 받았고, 6년간 일하다 1월 프로그램 폐지·개편으로 하차를 통보받았다며 지난해 12월 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근로자지위확인 진정을 제출했다.

김 아나운서는 “지난해 12월 대표단 면담 이후 내게 대체업무로 제공된 것은 월 4회 보수 20만원짜리 내레이션 하나 뿐이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출연횟수가 급감해 월 총보수 150만원 정도를 받고 일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생긴건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국 내 신분이 프리랜서, 아니 ‘가짜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 23일 광주MBC 앞 '방송노동자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실태조사·법률구제 돌입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 23일 광주MBC 앞 '방송노동자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실태조사·법률구제 돌입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한편, 지난해 12월 광주MBC 라디오 ‘황동현의 시선집중’ 작가 2명과 리포터 2명 등 4명의 프리랜서 제작진은 프로그램 폐지로 일자리를 잃었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는 대응모임을 결성해 연대활동을 펼쳤고,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사측과의 면담을 통해 당사자와 합의된 고용보장 약속을 확인하면서 광주MBC 프리랜서 해고사태는 일단락됐다. 

당사자들의 고용은 유지되었지만, 오히려 임금은 줄어들었고, 이후 프로그램 개편과정에서 또 다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질적으로는 근로조건이 퇴보하고 고용불안과 같은 문제들은 개선되지 않은 퇴보된 합의였다는 것이다. 입법추진단은 이날 이후 광주MBC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리고 지적했다. 

전주KBS 부당해고 피해 당사자인 A작가도 발언에 나섰다. A작가는 지난해 7월31일 부당해고를 당했고, 12월 9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KBS가 재심신청을 했고 아직도 서면 공방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A작가는 ”KBS는 공사라는 이유를 많이 드는 것 같다. 물건 하나를 가져오고 버릴 때도 시리얼넘버 같은 것을 체크한다. 하지만 사람인 나는 그냥 말 한마디에 버려졌다“며 ” “나를 해고한 당사자들은 KBS 본사 뒤에 숨어 수신료의 가치를 이런 식으로 실현하고 있다. 나에게 이제 국민의 방송, 수신료의 가치 그런 것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광주MBC 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사에 전하는 말이다. 연대의 끈을 놓치말아달라”고 요청했다. 

▲ 23일 광주MBC 앞 '방송노동자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실태조사·법률구제 돌입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 23일 광주MBC 앞 '방송노동자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실태조사·법률구제 돌입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사무국장도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해고가 관행으로 자리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개편 시즌이 되면 편성권이라는 이름 아래,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것은 방송국 내의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당연한 말들은 ‘감히 편성권에 도전하는가?’라는 한마디에 입 밖으로도 꺼내기조차 어려운 분위기다”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숨죽여 짐을 쌀 수밖에 없는 것이 2022년 방송국 노동현장의 실태라는 것이다. 

김 사무장에 따르면, 여전히 광주MBC뿐만 아니라, 여타 방송국들에서 프리랜서 편법 고용과 쉬운 해고는 진행 중이다. 광주MBC의 경우 전체 직원 120명 가운데 절반 가량인 60여 명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방송작가, 리포터, 아나운서, 앵커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대부분 정기적인 업무와 지속적인 수정, 컨펌 요구와 같은 업무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데도 개편 시즌만 되면 이들은 직원이 아니다.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사람, 이것이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김 사무장의 말이다.

프리랜서는 노동법상 근로자 지위가 없다. 그러나 최근의 판례들은 다르다. 2021년 KBS, MBC, SBS 방송 3사의 사 시사·교양 및 보도 분야에서 일하는 방송작가들을 대상으로 근로 감독을 진행한 결과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됐다. 2021년 3월 중앙노동위원회는 프리랜서 방송작가 두 명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고(故) 이재학 피디를 비롯한 청주방송 12명의 프리랜서들도 법적 근로자로 인정됐다. 사용자 편의에 따른 비정규직 고용 관행이 유지될 수 없다는 시대적 흐름이 확인된 한 해였다.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지난해 말 부당해고가 철회됐지만, 스태프 임금은 더욱 낮아지고 업무도 기존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등 사실상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광주MBC 내 다른 프로그램 상황도 좋지 않아, 작가들은 늘 프로그램 개편, 폐지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스태프 개개인이 거대 방송 권력과 따로따로 다투는 것 말고 근본적인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며 “스태프 개개인이 자신이 노동자임을 증명하는 부당함에서 벗어나서 일하는 누구나 근로자임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추진단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하은성 노무사는 앞으로의 실태조사 계획을 밝혔다. 근로계약서 작성 실태, 실제로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실태 등 구체적인 조사를 하고, 특히 방송산업의 경우, 다양한 방송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할 예정이다. 실태 조사를 시작으로 법률구제까지 이어나갈 예정이다. 

하 노무사는 “개개인이 법률구제하는 것을 개인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직종별 특별대책을 수립하겠다며 “방송노동자를 대상으로 법률 구제 활동 전개하고 노동자임을 인정받도록 하겠다. 우리가 나아가는 이유는 너무 당연하다. 일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고, 스태프든 지상파든 관계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입법추진단은 끝으로 MBC, KBS 등의 방송사 로고가 붙어져있는 공 앞에 서서 “방송을 누가 만듭니까?”라고 질문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방송노동자들은 로고 위에 ‘기자, 카메라 조명, 카메라 편성, 아나운서, 리포터, 수어, 기술감독, 방송송출, 뉴미디어콘텐츠 관리, 상담 안내, 성우, 스크립터’ 등 방송노동자들의 직종을 표현하는 이름들을 공에 붙이는 상징행동을 하며 “방송은 노동자가 만든다”고 외쳤다. 

▲ 23일 광주MBC 앞 '방송노동자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실태조사·법률구제 돌입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 23일 광주MBC 앞 '방송노동자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실태조사·법률구제 돌입 기자회견' 현장. 사진=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입법추진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광주NGO센터 회의실에서 ‘방송노동자 권리찾기를 위한 지역사회 간담회’를 이어갔다. 이날 ‘방송노동자 특별계획’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는 3월3일 서울 전태일 다리 앞 ‘가짜 3,3노동자의 날 제1회 기념식’에서 공식적인 실행 계획 발표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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