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MBC가 10년 넘게 자사 콘텐츠제작국 편성제작팀에 속해 붙박이로 일해온 ‘프리랜서 PD’에 계약종료를 통보했다. 정직원처럼 일해온 PD에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재계약을 거부해, ‘무늬만 프리랜서’에 대한 부당해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남 PD(가명·37세)는 지난 2월 10년 넘게 일한 회사에서 잘렸다. 그는 2011년 26세에 춘천MBC에 조연출로 입사해 2014년부터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신나군’과 ‘맛깔세상’(조연출 포함), ‘나이야가라’ 등 예능·교양 프로를 제작했다. 외부 방송상도, 회사 문책도 편성제작팀원으로 함께 받았다. 그러다 지난 1월 회사로부터 카카오톡으로 계약연장 불가 통지서를 건네받았다. 그는 “책임자 누구로부터도 이유 한 번 듣지 못했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김 PD는 지난 8년 간 촬영 날을 빼고 매일같이 춘천MBC 2층 편성제작팀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는 “지역방송사 제작 환경은 열악했다. 서울MBC라면 10명 스태프가 참여해야 할 일을 3명이 붙어서 했다”며 “회사 시키면 가리지 않고 했다”고 했다. 현재 퇴직한 한 국장은 그를 “편집실 귀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책도, 수상도 ‘춘천MBC 구성원’으로 받고 인턴 교육까지


그의 일은 정규직 PD와 다르다고 보기 어려웠다. 시니어 예능 ‘나이야가라’는 주말 아침 방송했다. 월~화요일이면 메인PD, 작가들과 사무실에서 마라톤 회의를 해 아이템과 섭외 대상을 정했다. 촬영 날엔 현장에서 메인PD를 도와 현장을 통제하고 일부 연출도 했다. 이후 방영분을 광고와 편성 시간에 걸맞도록 다듬는 ‘완제’ 작업을 했다. 방영 전날엔 새벽 0~2시까지 남아 음악 파일을 입혔다. 최종본을 검수하는 ‘시사’도 김 PD가 했다. 책임이 큰 최종 절차라, 본래 정규직 PD가 맡는 일이다. 회사는 그에게 ‘춘천MBC 프로듀서’라 적힌 명함을 줬다.

▲춘천MBC는 김현남 PD에게 춘천MBC 프로듀서라고 적힌 명함을 쓰게 했다. 김현남(가명) PD는 2011년부터 춘천MBC에서 일해왔다.
▲춘천MBC는 김현남 PD에게 춘천MBC 프로듀서라고 적힌 명함을 쓰게 했다. 김현남(가명) PD는 2011년부터 춘천MBC에서 일해왔다.
▲김현남 PD가 일한 강원 춘천 삼천동 춘천MBC 사옥 2층 편성제작팀 편집실 책상.
▲김현남 PD가 일한 강원 춘천 삼천동 춘천MBC 사옥 2층 편성제작팀 편집실 책상.

김 PD는 춘천MBC 콘텐츠제작국 PD 가운데 팀장 다음으로 연차가 높았다. 춘천MBC는 8년 간 계약서를 쓰지 않다 2년 전부터 1년 도급계약서를 썼다. 하지만 업무량이 많아도, 추가 업무가 생겨도, 계약에 없는 업무를 맡아도 급여는 일정했다. 조연출 당시 월 120만원, 10년차인 최근까진 170~180만원. 춘천MBC의 같은 연차 정직원 급여는 월 450~500만원 선이다.

춘천MBC는 김 PD에게 사내 연출·조연출, 대학생 인턴 교육도 맡겼다. 국장이나 팀장이 “네가 쟤 좀 봐 줘” 하면 그만이었다. 김 PD는 “제가 일상적으로 편집실에 있고 춘천MBC에 오래 있었으니 일하는 방식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레이어를 쌓을 때 어떤 단축키를 눌러야 빠른지, 어떻게 영상을 깔끔하게 빼내는지, 자막은 최소 몇 초 뽑는 게 관행인지 등을 가르쳤다. (춘천MBC) 선배들에게 배운 걸 아래에 똑같이 했을 뿐”이라고 했다.

김 PD는 춘천MBC 구성원으로 프로그램 상도 받았다. ‘나이야가라’ 팀이 2019년 9월 한국방송 지역오락 부문 대상을 받았을 때다. 다음 해에도 한국PD연합회 ‘이달의 PD’ 상을 두 차례 받았다. 트로피엔 김 PD 이름이 편성제작팀원으로 함께 적혔다.

▲춘천MBC 나이야가라 프로그램 크레딧에 올라온 김현남 PD 이름.
▲춘천MBC 나이야가라 프로그램 크레딧에 올라온 김현남 PD 이름.
▲김현남 PD가 일한 춘천MBC 프로그램 ‘나이야가라’이 받은 한국방송대상과 두 차례 이달의 PD상 트로피. 김 PD의 이름이 적혀있다.
▲김현남 PD가 일한 춘천MBC 프로그램 ‘나이야가라’이 받은 한국방송대상과 두 차례 이달의 PD상 트로피. 김 PD의 이름이 적혀있다.

김 PD는 춘천MBC 측 실무자로 방송심의 당국을 찾은 적도 있다고 했다. 2020년 10월 ‘나이야가라’의 한 회차에서 방송심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을 때다. 김 PD가 편집하지 않았지만 완제를 한 회차였다. 그는 메인PD 지시로 함께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찾아 대기실을 지켰고, 방통심의위는 지역방송사의 열악한 환경을 우려하면서 행정지도를 줬다. 춘천MBC는 김 PD에게 경위서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나이야가라’ 재방송 분이 오디오 후반작업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송출됐을 때였다. 

“이재학 PD 죽음에 터놓고 추모하지 못하는 억울함 느껴”


그는 2년 전 고 이재학 PD가 부당해고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뒤 사내에 그를 경계하는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상급자들은 “네가 몇 년 됐지?”라고 처음 물어왔다. 김씨에 따르면 한 상급자는 PC 모니터로 이재학 PD 관련 기사 스크롤을 내리다 ‘이거 완전 김현남이네’라며 턱짓을 했다. 국장의 지시로 매일 오전 8시께 출근해오던 그에게 ‘김 PD는 프리랜서니 유동적으로 하라’고도 했다.

김씨는 “그래도 할 일과 사람들, 장비가 모두 방송국에 있으니 계속 오전에 사무실에 갔다”며 “동종업계 고인을 터놓고 추모하지 못하는 억울함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가 2차, 3차의 예상하지 못한 피해이자 (비정규직 PD 환경 전반에) 어떤 시발점이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돌이켰다.

▲김현남 PD의 춘천MBC 사원증
▲김현남 PD의 춘천MBC 사원증

그러던 그는 지난 1월 돌연 카카오톡으로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김아무개 콘텐츠제작국장은 ‘계약서 9조에 따라 계약을 종료한다’는 내용의 파일을 카카오톡으로 전달했다. 무엇 때문인지 설명하진 않았다. 그렇게 그는 한 달 뒤 회사를 나왔고, 지난 1일 강원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김 PD 측은 춘천MBC 측이 지난해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 그가 프리랜서 AD를 변호한 ‘괘씸죄’로 그를 해고했다고 보고 있다. 김씨는 “춘천MBC가 지난해 공채를 블라인드로 했는데, 당시 콘텐츠제작국장이 PD에 지원한 AD에게 전화해 그의 답변을 발설하며 평하는 것을 들었다. 이후 오히려 AD가 채용비리에 공모했다는 소문이 돌아 이를 노동조합에 알렸다”고 했다. 사측은 지난해 1월 인사위를 열고 해당 국장에게 근신 처분을 결정했고, 그 직후 김씨는 잘렸다. 춘천MBC은 김 PD 빈 자리에 6개월 파견 비정규직 직원을 채용했다.

김 PD는 미디어오늘에 “잘리고 나서야 지난 10년간 삶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프리랜서’라는 첫 단추가 잘못됐고,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은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라며 “같은 문제로 고통 받는 다른 이들이 용기를 내길 바란다. 하루빨리 나를 응원하는 춘천MBC 구성원들 옆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춘천MBC 경영국장은 김 PD 노동자성과 재계약 거부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씨는 PD가 아닌 프리랜서 AD였다”며 “회사 명예를 훼손할 경우 일방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1항과 계약 해지 열흘 전에 상대방에 통보해야 한다는 4항에 근거해 계약을 통보했다. 방송사고가 대단히 큰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올초 채용비리 의혹 건이 마무리된 직후 콘텐츠제작국장이 ‘계약을 끊을 일 없다’고 말해줬고 정규직 PD는 방송사고 관련 근신 처분에 그친 점을 생각하면 회사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김 PD 주장이다. 춘천MBC 경영국장은 “방송사고 관련 실무자는 정직 등 더 무거운 책임을 진다”고 주장한 뒤 “지노위에서 사건이 진행 중이라 구체적 질문에 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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