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이 연출한 단편영화 ‘일하는 여자들’은 17년차 방송작가 이미지(현 언론노조 비정규직 특임부위원장)와 2년차 방송작가 박지혜를 비춘다. 방송작가이자 한 가정을 돌보는 ‘엄마 역할’을 동시에 맡은 이미지와 막내작가 박지혜가 ‘노동자로서 방송작가’를 알리려 분투하는 장면과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2016년 방송작가유니온이 조사한 방송작가 직군 여성 비율은 94.6%다.

김한별 전 지부장은 최근 방송작가유니온 집행부 임기를 마쳤다. 그는 방송작가로 일할 때부터 “방송작가라는 직군 그 자체가 성차별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방송작가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 힘 있는 노동조합이 진짜 필요하구나”라고 느껴왔다고 했다. 그가 방송작가유니온 출범 준비부터 함께 한 뒤 부지부장과 지부장을 연이어 맡은 이유다.

방송작가유니온은 2017년 출범한 이래 숨가쁘게 ‘무늬만 프리랜서’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왔다. 그 결과 방송계 대표 비정규직 직군인 방송작가 당사자들의 고발과 노동자성 인정 판정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방송작가유니온 청원으로 이뤄진 근로감독 결과 지상파 3사 방송작가 조사 대상 중 42%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결과를 내놨다. 이 싸움을 바탕으로 지난 5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수여하는 ‘올해의 한국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김한별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한별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그러나 방송사들은 방송작가 직군을 끝까지 ‘프리랜서’로 두겠다는 방침이다. 현직 방송작가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를 두려워하는 현실도 여전하다. 김 전 지부장이 임기를 마친 지난 2일 서울 상암동 카페에서 그의 방송작가유니온 활동에 대해 물었다. 그는 ‘추적60분’ 에서 ‘특수고용’에 대해 취재하다 노동자로서 방송작가의 현실을 봤다고 했다. 방송작가 노동자의 싸움에서 언론노조와 산하 조직의 역할도 지적했다. 앞으로의 과제로 방송사와의 직접교섭과 지역작가들의 처우 개선을 꼽았다. 아래는 일문일답.

- 방송작가로 일하던 때가 궁금하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 독립영화를 하고 싶어 연출부 일을 했다. 대학교 휴학한 뒤 영상 관련 일을 알아보다, 다큐멘터리 막내작가를 모집한단 소식을 들었다. 월 120만원을 준댔는데, 영화 현장에서 일하면서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임금이다(웃음). 그렇게 시작해 KBSN에 송출할 다큐를 만드는 외주제작사와 SBS 보도국에서 일했다. 정식 방송작가로는 KBS ‘추적60분’에서 일했고, MBC ‘생방송 오늘아침’에서 서브작가로 입봉했다. 이후 외주제작사에서 정규직 작가로 3년 정도 있었다. 퇴사한 뒤 실업급여를 3개월 받는 경험이 너무나 ‘리프레시’되는 경험이었다. 이후 2019년 JTBC ‘아침&’에 들어가서 2년 간 일했다.”

추적60분 ‘특고’ 다루며 ‘방송작가는 노동자’ 느꼈다


‘내가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라고 자각한 계기가 있었나.

“부당함은 항상 느꼈다. 그런데 ‘노조를 들고 뭔가 좀 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적60분’에 있을 때다. 수은에 중독된 노동자들이 특수고용이란 이유로 산업재해 처리를 못 받은 사건을 다뤘다. ‘특고’가 뭔지, 노동자 고용구조는 어떤 게 있는지 자료조사를 하는데 나를 대입하게 되더라. ‘나는 이 구조에서 어디 들어가지? KBS에 있으니 공기업의 공공 비정규직인가? 프리랜서인가? 그럼 이렇게 출퇴근하는 게 맞나? 처음 여러 질문을 했다.

동료 작가들과 ‘야, 이건 뭔가 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얘길 나눠도, 동료들은 결국 ‘어쩌겠나, 버텨야 메이저가 된다’는 얘길 했다. 그러다 프로그램이 쇄신을 한다고 1~2달 쉬었다. 취재작가들에겐 ‘막내작가니 임금 챙겨주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메인작가에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메인 작가는 그 기간 동안 갑자기 생활을 꾸릴 임금이 사라지고, 실직을 하게 된 거다. 메인 선배 한 분이 그 얘길 들은 회의 자리에서 울었다. 그걸 보면서 ‘버틴 결과가 저런 처우라면, 나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조를 알아보게 됐다. 그 때가 2015년이다.”

이후 방송작가들이 모여 ‘막내작가 구하기 프로젝트’에 나섰지만 무산됐다. 이후 언론노조의 ‘미로 찾기(비정규직 미디어 노동권리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2년 간 노동조합 출범을 준비해 방송작가유니온이 2017년 말 출범했다.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4기 지부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이미지 언론노조 비정규직 특임부위원장이자 초대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오른쪽).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4기 지부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이미지 언론노조 비정규직 특임부위원장이자 초대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오른쪽).

대화 시도했더니 해고로 돌아와, 싸우지 않으면 노조 왜 있겠나


- 어렵게 결성한 노동조합인데 이후는 어땠나. 노동조합으로 겪었던 변화는.

“근본적인 부침은 거의 항상 있었다. 고민과 토론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해마다 ‘건설적 해체’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 한다’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일을 벌이려면 한도 끝도 없이 벌일 수 있다. 방송작가의 사정을 알리고 방송사를 압박하기 위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다. 그런데 지금의 조건에서 ‘이걸 해야 방송사가 노사 테이블에 앉는다’는 뚜렷한 하나의 답은 없지 않나.

작가로 일하면서도 생각했지만, 노동조합이 출범하고도 ‘싸우는 노조’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방송사와 ‘나이스’한 대화를 많이 시도했다. 2019년 MBC 뉴스외전에서 작가를 해고했을 땐 49일을 피케팅하며 싸웠다. 그러나 당시엔 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성을 다투기보다 MBC와 대화를 했다. 대화한 결과 MBC 입장은 “복직시킬게, 단 프리랜서로”였다.

노력해 얻었지만, 밀어붙인 화력에 비해 아쉬운 결과다. 현장에 돌아간 작가는 다른 프로그램에 가 다시 똑같이 해고됐다. 이후 뉴스투데이 해고 건에서 ‘법정투쟁하자’는 공감대가 생겼다. 대화로만 나이스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노동조합이 왜 필요하겠나. 지부장 임기를 맡으면서도 ‘내가 만일 해고 당하면 노조가 이렇게 싸우겠구나’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을 많이 고민했다.”

- 방송작가 당사자가 공개적으로 노조 활동에 나서기 어려운 처지인데, 노조 활동에 어려움이나 고민은.

“방송작가들은 프리랜서 신분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혀 이유 없이 해고를 당할 수가 있다. 이를 우려하는 작가들에겐 ‘회사 눈밖에 나 좋을 게 없다’는 인식이 있다. 노조 가입하는 것으로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작가들은 자기 옆의 동료가 경쟁자이기도 하다. 동료가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네 잘못’이라고 마음먹기도 쉽다. 노동조합으로서 이를 극복하려면 사실상 방송작가 전체가 한꺼번에 나서 요구할 여건이 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런 고민을 김주환 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김 위원장님은 “대리기사들도 똑같다. 쟤가 콜 받으면 내가 못 받는 거고, 사실 다 그렇다”고 하시더라. 그 얘길 들으니 ‘프리랜서 신분’이란 점만이 진짜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얼마 전에 들었다.”

▲김한별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한별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언론노조 산별로 모인 이유 뭔지 짚게 한 순간 많았다


- 언론노조 산하에 비정규직이 가입했거나 구성한 노동조합은 방송작가유니온과 대구MBC다온분회, 방송차량지부 정도로 드물다. 방송작가 등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들의 사용자 격인 정규직PD 등이 언론노조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언론노조 산하 조직으로 활동하며 겪은 일이나 언론노조에 바라는 점은.

“언론노조 KBS본부는 비정규직인 방송차량지부와 함께 KBS 상대로 교섭을 한다. 방송작가유니온도 지난해 언론노조를 통해 이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 의사가 각 본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언론노조는 민주노총의 여러 가맹조직 가운데 ‘외딴 섬’ 같기도 하다. 방송작가유니온 외에 언론노조 안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은 있는 것 같다.

언론노조의 역할은 ‘산별노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본다.  방송노동 현장에서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하는 일에 (언론노조 산하 조직들이) 연대하는 것이 맞지만,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방송작가들의 실질 사용자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언론노조 안에 (조합원으로) 있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건 사실 언론노조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방송사들이 장기적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언론노조의 과제다.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이란 그릇에 담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언론노조가 비정규직 공제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에 맞게 방송 비정규직 조직화도 발빠르게 준비해야 한다.”

- 방송사들의 태도는 어떤가. 과거와는 어떻게 달라졌나.

“과거에 비해선 많이 달라졌다. KBS에 2019년에 교섭을 요청했는데, 그 때엔 한 마디로 ‘생 깠다’(웃음). 그 해 국정감사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왜 교섭에 나오지 않느냐’고 질의해 KBS가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지만, 또 다시 ‘생 깠다’. 그래서 지난해 다시 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했는데, 교섭이 아닌 협의체를 하게 됐다. (KBS는 현재 방송작가지부와 임금과 노동자성 인정 관련 주제를 제외하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에 대해 협의체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KBS의 경우 확실히 ‘방송작가를 프리랜서로 남겨두겠다’는 방침이다. 방송작가들의 근로 실질은 바꾸지 않고, 노동자성 인정받은 작가들을 행정직원으로 만든 행동은 근로감독 시행 취지에 완전히 판할 뿐 아니라 방송 제작현장을 더욱 어지럽힌 일이다. 그 결과 ‘고용을 보장받는 방송작가’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MBC의 경우 일부 무기계약직 작가가 생긴 것으로 알지만, MBC 뉴스외전처럼 이미 노동자성을 인정 받은 작가들도 해고했다. SBS는 이 같은 내용을 물을 소통창구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어느 방송사도 이번 방송작가 근로감독 관련해 보도하지 않았다. 방송사는 (그렇다면) 공정언론, 언론개혁 이런 이야길 하거나 노동 문제 관련 보도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나. 자신이 노동 착취의 주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나. 이 부분은 방송작가들의 사용자인 일부 언론노조 지·본부, 조합원들에게도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다. 우리가 한 산별로 모인 이유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지난해 4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의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지난해 4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의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시정지시 취지 반한 방송사…노동부, 시행착오 없애야

- 지상파 방송작가 일부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한 노동부 근로감독의 한계는. 결과 발표 뒤 기자회견에서 ‘42%란 인정 비율도 보수적으로 잡혔다’고 지적했다.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을 따지는 근로감독 자체가 CJB청주방송 특별근로감독 이후 처음으로 안다. 방송작가들의 노동 양태가 일반 노동자들과 다른 점이 분명 존재하는데, 방송제작 현장에 이해가 부족한 근로감독관들이 이런 특수성에 비춰 판단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방송작가의 노동 문제는 기존에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일이고, 노동청이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했다.

그러나 KBS가 근로감독 시행 취지를 정면으로 반하는 이행 결과를 내놨는데도 노동청은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넘어갔다. 노동자성 인정 받은 이후 해고된 MBC 뉴스외전 작가 부당해고 건도 노동청 차원에서 시정조치할 수 있었지만 손 놓고 있다. 3사 이후 광주방송, 부산방송에서 프리랜서 대상 근로감독이 이뤄졌는데 이번 같은 시행착오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 지난해 6월 지부장 임기 중 JTBC를 상대로 직접 노동청에 퇴직금을 진정해, 청구했던 금액을 받아내기도 했다.

“JTBC에서 일하면서도 ‘노조에서 일하면서 퇴직금 진짜 꼭 한번 넣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방송이라 새벽 3시부터 아침 11시까지, 길어지면 낮 1시까지 일을 했다. 퇴직금, 연차수당, 주휴수당을 합해 1600만원 청구했다. JTBC가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합의서를 썼다. 동료작가도 노동청에서 퇴직금을 인정 받았는데, JTBC가 불복해 검찰에 넘겨졌다. 그런데 검찰이 불기소 처리했다.”

- 방송작가유니온이 3.8 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수상자 선정) 전화를 받고 많이 울었다. 그런 (여성노동자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활동을 해왔기에 영광이고, 싸워야 하는 일이 있다는 점 자체가 마음이 아프고 복잡하다. 방송작가들의 노동조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년 전 전국여성노동조합 방송국지부가 처음 방송작가 교섭을 위한 싸움을 했고, 이후 방송작가유니온이 출범해 이어갔다는 연장선에서 주는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싸움을 하도록 용기 낸 조합원들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앞으로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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