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판정’ 문제지만 ‘사이다 분노’로 가득한 올림픽 중계는 적절한가”

경향신문의 9일자 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지난 7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 등에서 편파 판정이 속출하자 중국에 대한 한탄과 함께 ‘사이다’ 발언을 쏟아낸 방송사 중계를 비판했다. SBS가 ‘이것이 반칙이다! 쇼트트랙 반칙 워스트10’을 중계한 것도 비판했는데, ‘워스트10’은 모두 중국 선수들의 반칙이었다. 

쇼트트랙 편파 판정 직후 편성된 SBS ‘반칙 워스트10’이 큰 호응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향신문의 해당 기사 포털 댓글은 부정적 반응이 대다수였다. 편파 판정에 분노하는 것을 반중 정서라고만 보는 것은 부적절하고, 해설자나 방송사 모두 분노할 만한 편파 판정이었다는 반박이다. 

경향신문은 “기본적으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개최국에 기울어진 판정이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나 방송이 조회수 등을 노리고 시청자의 분노만을 키우는 영상을 편성하는 것도 문제”라며 “해설진의 ‘사이다 분노’는 판정 시비를 해결한다기보다는, 방송 시청률과 조회수 상승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언론인 라운지에서도 작은 논쟁이 일었다. 경향신문 기사를 놓고 “지금 뭇매 맞고 있는 경향신문 기사”라는 제목으로 “꼭 이런 기사를 지금 내야 했을까?”라는 글이 게시됐다. 블라인드의 언론인 라운지는 다양한 언론사 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신이 소속된 회사 이름을 공개하거나 비공개할 수 있다.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경향신문 기사에 대한 비판글과 격려 댓글들.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경향신문 기사에 대한 비판글과 격려 댓글들. 

‘사이다 중계’ 지적에 댓글 뭇매… “필요한 보도” 격려도

언론인 커뮤니티에선 포털 댓글창과는 달리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고 지금 상황이니까 더 필요한 기사”라는 격려가 대다수였다. “건전한 사회라면 저런 목소리를 내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 “한 쪽으로만 경도된 사회로 휩쓸려가지 말자는 차원 같다. 물론 편파 판정은 잘못됐지만, 그와 별개로 무분별한 분노와 혐오를 쏟아내는 경우도 많다”, “중계 잘했다고 할 사람들이 99%인데 한두 명 정도는 이런 말을 해도 되지 않을까” 같은 반응이 나왔다. 소속 언론사를 공개하고 기사가 필요했다고 댓글을 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에 유리한 편파 판정을, 전 세계가 관람하는 올림픽에서 시청하고 분노하지 않기란 물론 어렵다. 그러나 반중 정서를 마치 철없는 태도로 간주하고 비판하는 일도 공감을 사기 쉽지 않다. 반중 정서를 우려했던 언론도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반중 정서를 그저 우려하는 사설을 쓰기보다 ‘왜 반중 정서가 이렇게 커졌을까’ 들어보고 분석하는 보도가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한겨레 10일 기사 “MZ세대, ‘선 넘는 중국’에 부정적 인식 쌓여…‘혐오는 경계’”다. 2030세대 반중 정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이 인터뷰는 청년 10명에게 반중 정서 이유를 물었다. 반중 정서에는 중국의 역사와 사회적 모습이 영향을 끼쳤지만 2030세대 개인의 경험도 반중 정서를 형성한 이유였다. 

▲10일 한겨레 5면.
▲10일 한겨레 5면.

반중 정서 왜 커졌을까 짚어야 한다는 지적들

통상 “공정에 민감한 청년세대가 불공정한 중국에 화났다”는 식의 해석이 대부분인데 반해 한겨레 인터뷰는 공정 이슈 외에도 “시진핑 체제 중국에서 강해진 중화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신장 위구르 홍콩에서 벌어지는 반인권 행태, 대만을 향한 무력시위 등 ‘반중과 혐중’의 모양새가 갖춰줬다”고 분석했다. 

다만 인터뷰 기사 말미에서 청년들은 “정치권 등이 중국 혐오를 부추기고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경계했다”며 “중국 정부와 실제로 마주치는 중국인을 구분할 줄 아는 지성을 지닌 청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새로 시작한 ‘나는 고발한다’ 연재 시리즈에 반중 정서를 ’혐오‘로 여기는 것을 반대한다는 기고를 실었다. 약사 출신 박한슬 작가의 “’반중‘불편한 고매하신 분들에게…이건 중국 혐오가 아닙니다”(9일)라는 글은 청년들의 반중 정서는 이유 있는 것이라며 이를 ’혐오‘로 여기지 말라고 주장한다. 

박 작가 글에 따르면, 지난해 설 무렵 배틀 그라운드 개발사가 개최한 한중전에서 국내 대표 게이머들이 중국 참가자의 불법 프로그램 이용에 당했는데, 개발사는 중국 선수들에게 경고도 하지 못했다. 박 작가는 홍콩 민주화 시위 때 있었던 폭압 등을 설명하며 “중국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반칙에 대한 비판”이라 주장했다. 이어 “모두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룰 하나만큼은 지키려는 감각. 그 영역 하나에서만이라도 공정하길 바라는 감각. (...)이것은 절대로 혐오가 아니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중앙일보 9일 지면에는 같은 주제로 ‘K를 생각한다’ 저자 임명묵 작가 글이 실렸다. 그는 K팝 팬덤 사이에서 반복됐던 한국 아이돌을 향한 중국 네티즌의 공격이나 중국 활동을 위해 그룹을 탈퇴한 아이돌의 사례 등을 꼽았다. 반중 정서를 무시하는 것보다 왜 이런 정서들이 쌓여왔는지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은 반중 정서를 혐오라고 덮어두고 깎아내리지 않아야 한다는 비판은 인정했지만, 폭넓은 경제협력의 필요성도 짚어봐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9일 중앙일보 26면. 
▲9일 중앙일보 26면. 

반중 여론 이용해 클릭수 높이려다 오보낸 사례도 

‘왜 반중 정서가 깊어졌을까’를 고민하는 보도들에 모두가 동의하진 않아도, 이 이슈는 충분히 논쟁할 수 있는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 반중 정서를 이용해 클릭 수를 높이려는 보도도 여전하다. 조회수가 잘 나오는 키워드인 BTS와 반중 여론을 함께 건드리는 기사도 다수다. 국민일보 기사 “RM 엄지 척에 ‘BTS 증오해’ 中 악플, 아미들 반격”(8일)과 같은 보도가 대표적이다. 

반중 여론을 의식해 기사를 쓰다가 오보를 낸 경우도 있다. 중국의 쇼트트랙 선수 런쯔웨이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한국팀이 넘어진 것”을 평생 기억할 순간으로 꼽았던 일화를 마치 올해 한 발언처럼 보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관련 기사들은 2018년 발언이라고 수정된 상태다. 국민일보의 “金 강탈 런쯔웨이, 평창 때 ‘한국 넘어진 것 가장 기억’ 조롱”(9일) 같은 기사들도 2018년 발언이라고 명시하긴 했지만, 4년 전 중국선수 발언을 ‘금메달 강탈’이라는 표현과 함께 제목에 달며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 2020년 2월 23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자유대한호국단 주최 '입국금지 조치 중국 전역 확대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2020년 2월 23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자유대한호국단 주최 '입국금지 조치 중국 전역 확대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반중 여론을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쏟아지면서 조회수와 화제성을 노린 보도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1일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코로나19를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다. 코로나19 초창기 이후로는 대체로 쓰이지 않는 단어인데, 반중 정서에 편승해 다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작년 1월26일 그때는 우한폐렴이라고 했다. 우한폐렴은 메르스보다 심각하다고 하자 1월31일 문재인 대통령은 가짜뉴스 퍼뜨리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때부터 비극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건강보험 재정에 피해를 주는 사례로 중국인을 꼽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언론은 반중 정서와 혐오를 구분하고, 정치권이 혐오를 부추기지 않도록 보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남은 올림픽과 대선 기간, 반중 정서를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집단이 더 늘 수 있다. 언론 스스로 그런 집단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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