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과 한겨레가 편집국 디지털 전환 추진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편집국에서 신문제작 부문을 떼어내고 온라인 콘텐츠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뼈대를 이루는 가운데 전환의 근본 방향 설정을 두고 각 조직의 고민이 깊다. 경향신문은 현장 기자 우려에 속보대응 이슈팀 신설을 재고하는 등, 저널리즘과 동떨어진 ‘조회수 일변도’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늘리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시행착오를 피할지도 관건이다.

경향신문은 올 초 사내 미래전략위원회가 ‘디지털 전환 보고서’를 발표한 뒤 ‘편집국 디지털 전환 TF’를 출범해 가동 중이다. 김정근 디지털뉴스편집장이 실무를 주도하고 부장급과 차장급, 평기자가 두 명씩 직급별 대표 격으로 참여해 매주 회의를 열고 있다. 계획안 골자는 편집국 업무를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하는 한편, 종이신문 제작을 분리해 해당 조직을 편집국장, 오피니언을 총괄할 논설위원실장과 나란히 위치시키는 것이다. 디지털편집부와 기획탐사부서, 데이터저널리즘부서 등도 신설한다. 때맞춰 도입할 새 CMS 개발 TF도 가동 중이다.

김석종 경향신문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래전략위원회의 조사 결과 편집국 구성원 3분의 2가 디지털과 신문제작의 분리라는 혁신적 변화를 원하고 있다”며 “먼저 시작한 경쟁사들의 오류를 파악해 경향의 현실에 맞게 업무 제작시스템을 구축하겠다.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소통 과정을 거쳐 TF의 결과물이 나오는 대로 상반기 중에 디지털 전환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디지털 전환 TF는 지면을 벗어난 ‘저널리즘’과 ‘수익성’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 경향신문이 추진하려다 현장 기자들의 반대 의사를 확인한 뒤 원점에서 논의 중인 속보 대응팀 신설이 한 예다. 경향신문은 당초 ‘전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SNS를 비롯한 온라인 이슈와 속보에 대응하는 ‘이슈팀’ 신설 계획을 밝혔다. 현 ‘모바일팀’의 기능을 옮긴 격으로, 담당 출입처가 애매하거나 취재 부서에서 손이 모자라 쓰지 못하는 아이템을 ‘사실 확인’을 전제로 소화한다는 목적이다.

경향, 온라인 ‘이슈팀’ 신설 계획 반발에 원점 논의


그러나 정작 모바일팀에서 저널리즘의 질을 떨어뜨리고 디지털 전환 취지를 해친다는 의견을 내놨다. 현재 모바일 팀은 경향신문 내 청와대 국민청원, SNS 글을 비롯한 온라인 실시간 이슈나 단순 보도자료 기사, 속보를 맡는다. 각 팀원이 자정 이후와 이른 새벽 시간대 조회수 방어 차원에서 일주일에 1~2번 자정 너머 야근 또는 새벽 조기 출근해 출고를 맡고 있다.

모바일 팀원들은 사측에 이슈팀의 정체성은 출입처가 모호한 기사가 아니라 실시간 조회수를 위한 기사 담당이 될 것이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국이 무게추를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면 오히려 별도 부서에 속보 대응을 전담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고 한다. 소속 기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자괴감을 겪는다는 언급도 나왔다. 지난달엔 기자들이 독립언론실천위원회를 통해 이 같은 의견을 포함한 현장 의견을 취합해 사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TF를 주도하는 김정근 디지털뉴스편집장은 “모바일팀 내부 의견이 제시된 뒤 타당하다고 여겨 이슈팀을 만들지를 두고 다시 논의 중이다. 기본적으로 이슈팀의 업무는 통신사나 온라인 커뮤니티, 타사 기사를 취재 없이 베끼는 수준이 되기 십상이다. 경영과 수익 측면에선 필요하다는 게 현실이지만,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도록 하는 게 옳은지 고민이 많다. 현실과 이상 사이 괴리”라고 했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먼저 디지털 전환을 택한 신문사들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겪고 있다. 중앙일보의 경우 아이(eye)팀이 속보와 속칭 ‘우라까이’(단순 인용) 기사를 맡고 있다. 중앙일보 노조는 최근 노보를 통해 기자들이 디지털 전환 뒤 면피성 기사 처리에 몰두하는 일상을 다뤘다. 기자들은 ‘지면 관성’ 탓에 면피성 업무를 하느라 차별화된 콘텐츠는 손 놓고 업무 강도가 심해진다고 했다. 타사 보도를 모니터링해 모든 기사를 처리하거나 아이팀이 쓴 기사를 지면용으로 다시 쓰는 업무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국일보의 경우 이슈365팀이 SNS 등 실시간 이슈를 소화하고 있다. 나머지 출입처별 취재 부서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발 빠른 스트레이트 기사가 필수가 됐다. 이외 어젠다기획부나 탐사보도팀에서 긴 호흡의 심층 취재와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한 기자는 현 디지털 전환의 상이 속보대응 체제로 무게가 실리는 데에 우려를 표했다. 이 기자는 “‘연합뉴스’ 스타일로 속도전을 하는 게 우리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방향인지 모르겠다”며 “같은 주제라도 다른 각도와 우리만의 공력을 들인 보도가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논의 중인 변화 방향은 이를 보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김 팀장은 “갈수록 지면의 영향력이 줄고 열독률도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온라인 전환이 맞다는 합의가 있다. 그러나 70년 지면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지면 중심 DNA’를 바꾸기를 요하는 일”이라며 “회사가 일방으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일이라 기자들의 공감과 이해, 설득이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회사 방침에 대해 직급별 설명회를 마친 상태로, 부서별 성명회를 하면서 요구사항을 듣고 있다.

한겨레, 부서 ‘시뮬레이션’ 확대 적용키로


한겨레도 자체 TF가 꾸린 디지털 개편안을 구체화하고 일부 시동을 걸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편집국에서 종이신문 제작을 분리해 각각 디지털 담당 콘텐츠 1국과 지면 담당 콘텐츠 2국으로 나눠 ‘통합뉴스룸’을 만드는 장기계획을 세웠다. 이후 디지털 수요가 컸던 정치부의 업무 공정을 100% 디지털로 전환하는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내달부터 사회부와 경제부에도 넓혀 적용할 예정이다. 한겨레는 지난 11일 편집국원 상대로 줌 설명회를 열어 추진 현황과 결정 사항을 공유했다. 큰 틀에선 후원제 모델로 가기 위한 ‘후원미디어전략’ 관련 TF도 가동 중이다.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한겨레 측은 내부에서도 여러 견해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TF를 총괄하는 백기철 편집인은 “토론회와 부서별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신문을 버려선 안 된다’, 즉 신문의 질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전환하면 안 된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또 일선 기자들은 디지털 전환하면 일선 기자들의 노동강도가 세질 것에 대한 보완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노동시간이나 인력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한겨레는 ‘조회 수 방어’ 전담 부서를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백 편집인은 “단순 클릭 수와 노출 중심이 아니라 어떤 의제에 집중해 질 좋은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지를 고민하고 있다. 젠더와 기후위기, 불평등, 소수자 등 필요한 의제에 집중해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전환 추진”이라고 했다.

한겨레의 데스크급 기자는 디지털 조회수 지향으로 흐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두고 “일단은 이번 개편이 속보 대응 위주로 흐르지 않도록 방향을 설정하고 있지만,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중대한 차별점을 찾지 않으면 속보성 추구로 빠지기 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