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원전 방사능 누출을 연속 보도한 포항MBC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 결과를 전한 기사다. 1년 째 재판이 진행 중인데, 원전 문제를 지속 보도해온 지역방송사에 대한 보복성 소송이라는 지역사회와 학계, 언론계 비판이 나온다.

한수원은 지난해 4월 포항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포항MBC가 그해 1월19일 보도한 ‘“삼중수소 무해?” 과학적 근거 없다’란 제목의 기사다. 포항MBC는 지난해 1월7일부터 월성원전 부지 내 10여곳의 지하수 검사 결과 모든 곳에서 많게는 71만3000베크렐, 관리기준의 18배에 이르는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한수원 내부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주요 설비인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수조의 지하수에선 관리 기준을 13배 초과한 양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포항MBC 보도 갈무리
▲포항MBC 보도 갈무리
▲포항MBC 보도 갈무리
▲포항MBC 보도 갈무리

원전 구조상 방사능이 누출되지 않도록 계획된 곳에서 다량 발견된 데다 누출 원인도 찾지 못한 상태라 더 광범위하게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포함MBC는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의 몸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했다. 당시 한수원은 입장을 내 원전 건물 내 특정 지점에서 검출된 농도를 두고 최종 배출 관리기준의 18배로 표현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 한편 일정수준은 법적으로 허용돼, 일부 검출돼도 문제 없다고 밝혔다.

이에 포항MBC는 1월19일 보도에서 ‘적은 양의 삼중수소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일부 친원전 전문가는 SNS를 통해 유출된 삼중수소의 인체영향이 바나나 6개, 멸치 1g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보수언론 중심으로 ‘멸치·바나나’를 키워드로 한 보도들이 쏟아지던 상황이었다.

‘삼중수소 무해’ 친원전 주장 반박한 기사에 소송


포항MBC는 해당 기사에서 ‘삼중수소가 몸 밖으로 100% 배출되지 않고 일부가 세포와 결합해 체내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문가 견해를 전달했다. UN과학위원회와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 등을 인용해 삼중수소 피폭이 암을 유발하고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며, 선량이 낮더라도 지속적으로 피폭되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미국 환경청도 ‘과학적으로 안전한 방사선량’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방사선량은 적을수록 좋다는 내용을 밝혔다.

포항MBC는 실제 국내 원자력위원회의 2015년 역학조사 결과 여성의 방사선 관련 암 발생률이 원거리 대조군에 비해 2.5배 높았다고 보도하며 “인근 주민들이 평생 삼중수소에 노출돼 살아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적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라도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요약했다.

▲포항MBC 1월19일 보도 갈무리
▲포항MBC 1월19일 보도 갈무리
▲포항MBC 보도 갈무리
▲포항MBC 보도 갈무리

보도 곡해한 뒤 ‘허위’라 주장하는 대목도


한수원은 해당 기사에 소송을 걸고 보도 내용 대다수가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포항MBC 보도가 ‘적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라도 위해하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것이 허위라는 것이다. 한수원은 소장에서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자료를 들어 “장기간에 걸친 피폭이 약 100밀리시버트 미만일 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나타나지 않았고, 규제 공공 선량한도인 1밀리시버트는 이 양의 1%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이같이 주장했다. 

포항MBC는 이에 ‘인근 주민들이 평생 삼중수소에 노출돼 살아간다’는 점을 단서로 붙였다고 밝히는 한편,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보고서와 미국 과학아카데미(BEIR) 자료를 인용해 방사선은 피폭량이 늘수록 암·유전 영향도 정비례로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한수원은 미국 환경청이 ‘방사선량은 적을수록 좋다고 본다는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는 보도도 허위라고 주장했다. 환경청이 2017년엔 “50에서 100밀리시버트 정도의 방사선 피폭은 통상(usually) 해로운 건강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는 이유다. 포항MBC는 ‘방사성 물질이 적을수록 좋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두 자료가 인체 영향에 대한 같은 고민을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수원의 주장 자체가 보도를 곡해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곳곳에 발견된다. 포항MBC가 ‘동물실험’이라는 점을 명시한 대목을 두고 ‘인간에게 삼중수소 피폭이 암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생명을 앗아간다고 우회적으로 적시’했다는 이유로 문제 삼았다. 장미쁨 포항MBC기자는 통화에서 “해당 실험은 쥐 실험으로, 보도에 적시했을 뿐 아니라 동물에게 유해하면 사람에게도 유해하다고 보는 것이 동물실험의 기본이다. 사람 대상 삼중수소 실험을 할 수 없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출처=한국수력원자력
▲출처=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은 또 ‘원자력안전위원회의 2015년 월성원전 주변 주민 역학조사 결과 여성의 방사선 관련 암 발생률이 대조군의 2.5배’라는 보도엔 ‘원안위는 기존 역학조사를 재분석한 것이며, 월성원전 주변 주민의 방사선 관련 암에 대한 별도 분석을 하진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에 2015년 당시 연구를 진행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역학조사의 재조사도 역학조사이며, 4개의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을 다 조사한 결과”라며 “월성원전 인근 주민을 별도로 조사한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의도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백 교수는 “기존에 한수원이 비용을 댄 역학조사였고 그 의미를 축소하는 부분이 있어 재분석한 것이다. 한수원의 뜻에 맞지 않는 재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그같이 말하는 것은 한수원의 극심한 이해충돌”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방사능 문제를 둘러싼 논의, 논란을 정리하는 방식은 학술 단계와 시민사회 단계, 더 넘어가면 언론 등 다른 단계가 있다. 한수원이 (학술과 시민사회와 논의보다) 언론보도를 법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돈의 힘으로 반론을 ‘만들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언론 소송할 때 아냐…과학적으로 투명하게 밝힐 때”


장미쁨 기자는 “적은 양의 방사성 물질도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이 공기업 한수원의 당연한 책무임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은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자 마치 적은 양의 삼중수소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으며 포항MBC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며 “국민 생명과 원전 안전을 책임지는 공기업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주의 환경단체를 포함한 지역사회와 언론계에서도 한수원의 언론대응에 우려를 표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한수원의 이번 제소에 “언론을 압박하기 위한 소송으로 보인다”며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유해한 것은 사실이다. 삼중수소의 위해성도 사실이지만 그 정도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고 연구가 부족하다. 그것은 한수원이 공론장에서 의견을 나누고 과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문제이지 공론을 형성하는 언론에 소송을 걸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특히 한수원은 본사를 둔 경주지역 언론에 비치는 영향력이 상당히 큰 상황에서 포항MBC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정도의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고 몰아붙인다면 우리 언론지형이 너무 기울어지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포항MBC 기자들은 한수원의 소송 이래 원전 관련 보도가 위축됐다고 말한다. 장 기자는 “혼자 소송 관련 일을 도맡고 있다. 기사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자료를 찾고 서면을 작성하는 데 쓴다. 또 회사에도 소송에 걸렸다는 것만으로 눈치를 보게도 된다”며 “개의치 않으려 해도 물리적, 심리적으로 (취재에) 거리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장성훈 포항MBC 전 보도부장(현 기자)은 “현재 보도부 인력은 데스크를 빼면 단 4명”이라고 했다.

이은용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은 “한수원의 주장의 흐름을 보면, 근거가 약하더라도 소송을 걸어놓고 보는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같은 공세적 소송을 당한 언론사엔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한수원을 비롯한 공기업이 언론 제소보다는 여러 위험이나 우려점을 말끔하게 공개하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수원 홍보팀 관계자는 제소 이유와 무리한 소송이라는 지적에 대한 질문에 “공기업으로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포항 MBC가 지난해부터 40건의 관련 보도를 하면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포항MBC가 과하게 (보도)하니 ‘이 부분만큼은 정정해야겠다’는 부분에 소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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