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염특별구역’의 85%가 여전히 고위험 방사성 물질인 세슘에 오염된 상태다. 일본 정부 데이터 분석 결과 제염이 완료된 면적은 전체 제염특별구역 840km² 중 15%인 120km²에 불과하다.” 그린피스가 日 후쿠시마 핵사고 10주기를 맞아 내놓은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장마리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초래한 방사성 오염 피해는 이제 시작이며, 한 세기 너머까지 해결되지 않을 인류의 짐”이라며 “원전가동을 멈춰야만 통제 불가한 방사성 위기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1년 3월11일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 1만5899명이 사망하고 2527명이 실종됐다. NHK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피난이 해제된 11개 지역에 주민등록을 둔 주민 가운데 실제 거주자는 31.6%에 그쳤다. 방사능 때문이다. 지진 직후 높이 15m의 대형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 가동이 중지됐고, 원자로 1~3호기에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해 1·3·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68개분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최고레벨 재난이었다. 

지난 7일 일본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탈원전 정책을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전인 2016년 동일 조사에서는 62%였다. 한국·일본 녹색당은 지난 11일 공동선언문에서 “일본 핵발전 사고의 심각성을 목격한 한국에서는 그 후 탈핵 정책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일 양국은 핵에너지 없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 부재와 소비중독·경제성장 중독으로 탈핵 노력을 정체시키고 있다”며 “진정 배워야 할 진실은 핵발전의 위험성과 지속 불가능성이며 사회전환의 필요성”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 11일자 1면 사진기사.
▲한겨레 11일자 1면 사진기사.

후쿠시마 10주기를 맞아 국내 언론은 르포 기사를 통해 여전한 ‘재난의 참상’을 전했다. ‘방사능 폐기물 그때 그대로…기차역 내린 사람은 기자뿐’(3월8일 서울신문), ‘후쿠시마 인프라 복구에도…주민들 여전히 타지살이’(3월8일 세계일보), ‘日 대지진 10년…원전 인근 마을은 그날에 멈춰 서 있다’(3월8일 한국일보), ‘6500명 살던 후쿠시마 마을, 지금은 주민 1250명뿐’(3월11일 중앙일보) 등의 기사가 일례다. 동아일보는 8일 지면에서 10년 전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를 인터뷰했다. 그는 “원전 오염수는 지금도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제사회를 속였다”고 주장했다. 

진보성향 신문들은 특히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11일 사설에서 “경제 논리를 내세우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내 원전에서도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들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10일 사설에서 “국내에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원전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원전은 안전 외에도 핵폐기물처리 문제가 있다”며 “‘화장실 없는 아파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원전을 늘리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보수성향 신문들은 원전의 필요성과 안전성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아사히신문 주필 출신으로 ‘후쿠시마 전기’를 출간한 후나바시 요이치 인터뷰를 10일자 14면(국제)에 실었다. ‘“후쿠시마 사태로 교훈 얻지 못해…일본, 여전히 안심 포퓰리즘 유행”’이란 제목으로,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뉘앙스인데 정작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그는 후쿠시마 사태에도 불구, 원자력 에너지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11일자 14면 사진기사.
▲조선일보 11일자 14면 사진기사.

중앙일보는 ‘지진 땐 원자로 자동정지, 해안방벽 높여 쓰나미 대비’란 10일 기사에서 “국내에 후쿠시마와 같은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한국 원전은 안전하다는 게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 전문가들의 진단”이라고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10일 ‘“원전, 기후변화 대응 핵심적 역할 분명”’, 11일 ‘“국내 원전, 지진 등 대비장치 추가…수소폭발 가능성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동아일보는 12일 ‘후쿠시마 사고 10년…국내 방사능 감시 기술 어디까지 왔나’란 기사에서 “최악의 원전 사고를 교훈 삼아 가동 원전의 안전을 담보하고 방사능을 감시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5일 “올해 들어서도 우리나라 원전들에 설치된 수소제거장치(원전 사고시 수소폭발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에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알고도 한국수력원자력이 이를 은폐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고, 경주 월성 원전 부지가 광범위하게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심각한 안전 문제들이 드러났다”며 “원자력은 그 누구도 사고 없이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일본 역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까지 일본의 원전은 안전하다고 이야기해 왔다”고 우려했지만 보수신문 논조는 이 같은 인식과 적지 않은 괴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원전 인근 지역신문 보도는 ‘서울’ 신문사들과 확연히 달랐다. 국제신문은 지난 8일 ‘고리·신고리 사고·고장만 34건 후쿠시마 10년, 원전 안전 요원’이란 기사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자료 분석 결과 2011년 3월11일부터 현재까지 국내 원전 26기(영구정지 원전 포함)에서 발생한 사고·고장은 116건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경남신문은 11일 ‘“원전 밀집 경상권, 사고 위험 예외 아니다”’라는 기사를 냈고 경남도민일보는 같은 날 ‘원전 사고 은폐·부실공사 한국도 방심 땐 속수무책’, ‘“정치 공방 끝내고 탈원전 동참해야”’란 기사를 냈다. 광주일보는 12일 ‘불안한 한빛원전 폐로 촉구 등 탈핵 목소리 높다’란 기사를, 부산일보는 같은 날 ‘“무뎌진 원전 안전 의식 다시 세워야”’란 기사를 냈다. 

▲그린피스 소속 크리스티안 아슬룬드가 2018년 10월17일 공중 촬영한 후쿠시마 원전 전경. 사진 왼쪽(남쪽)에 후쿠시마 원자로 1~4호기가 있고 오른 쪽(북쪽)에 5~6호기가 자리한다. 서쪽과 남쪽에 자리한 후타바와 오쿠마 마을은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사진 뒤쪽으로 푸른색 구조물처럼 보이는 방사성 오염수 저장탱크 944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린피스
▲그린피스 소속 크리스티안 아슬룬드가 2018년 10월17일 공중 촬영한 후쿠시마 원전 전경. 사진 왼쪽(남쪽)에 후쿠시마 원자로 1~4호기가 있고 오른 쪽(북쪽)에 5~6호기가 자리한다. 서쪽과 남쪽에 자리한 후타바와 오쿠마 마을은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사진 뒤쪽으로 푸른색 구조물처럼 보이는 방사성 오염수 저장탱크 944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린피스

사실 보수신문도 10년 전엔 이들 지역신문과 유사한 논조였다. 조선일보는 2011년 3월14일자 사설(‘대한민국 원전 20기, 최악의 재앙에 대비돼 있나’)에서 “세계 최고의 재난 대비 국가라는 일본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가’라고 되묻게 된다”며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가운데 올라앉아 있어 큰 지진의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확률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도 규모 9.0 지진은 최근 100년 사이 겪은 일이 없다. 더구나 우리는 지진에 대해선 무방비 국가”라고 우려했다. 

당시 이 신문은 “가장 큰 걱정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이라며 “원전의 사고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 순 없다”고 강조했다. 10년 전처럼 지금도 조선일보 지적대로 원전의 사고 가능성은 ‘0’이 아니지만, 광고주이자 협찬주인 親원전업계와의 이해관계와 현 정부의 ‘탈핵’ 기조에 정파적인 보도가 더해지며 보수언론은 애써 원전의 위험성을 외면하거나 안전성을 강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탈원전’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OECD 국가의 원전 발전 비중은 2000년 23%에서 2017년 18%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는 비중은 17%에서 27%로 확대됐다. 미래 에너지 전망치도 전 세계 원전 발전 비중은 2017년 10%에서 2040년 9%로 줄고, 재생에너지는 같은 기간 25%에서 42%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보수신문이 탈원전·탈석탄을 통한 ‘에너지 전환’을 정쟁으로 소모하는 가운데 애써 외면하는 ‘변화’다. 

▲후쿠시마 10주기를 맞아 진행한 탈핵 퍼포먼스. ⓒ환경운동연합
▲후쿠시마 10주기를 맞아 진행한 탈핵 퍼포먼스. ⓒ환경운동연합

한겨레는 ‘후쿠시마 사고 뒤 일본은 재생에너지 강국 변신’이란 11일 기사에서 “2019년 일본의 1인당 태양광 소비량은 세계 두 번째(1469kWh)로 호주(1764kWh)에 이어 세계 2위다. 한국은 587kWh로 16위”라고 전했으며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 규모는 연평균 10.8%씩 성장했다. 일본은 현재 원전 54기 중 9기만 재가동을 승인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어 ‘태풍 때마다 원전 불안…한국 안전대책 이행률은 56%뿐’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내) 후쿠시마 후속 안전대책은 보여주기식 사업에 그쳤다”는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 발언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에너지전환포럼은 지난달 22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신한울 3·4호기 공사계획인가 연장 결정을 두고 “신규원전 백지화 공약과 현 정부가 공표한 에너지전환로드맵 정책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내놓은 탈핵 시간표는 앞으로도 60년 동안 원전이 유지되는 느림보 계획”(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 유럽 내 가장 저렴한 발전원으로 풍력·태양광 발전을 꼽았다. 후쿠시마 10주기, 국내에 필요한 보도는 ‘속도감 있는 에너지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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