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지수라는 잘 알려진 개념이 있다. 독일의 통계학자 엥겔은 가난할수록 식비가 높아진다는 법칙을 발견했다. 돈이 많건 적건 먹고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엥겔지수가 높으면(소득 대비 식비가 크면) 문화, 여가 지출 비율이 줄어 들게 된다. 즉, 소득이 낮으면 식비 비중이 높고 생활 수준은 낮아지게 된다.

최근(4일) 서울경제 1면 기사에 따르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현금 복지가 많아진다고 한다.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의미는 중앙정부 등에게 받는 돈의 비율이 높다는 의미다. 이에 서울경제는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현금을 뿌리는 것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자체가 자기 돈이 아니라고 정부 돈으로 방만한 행정을 해서 현금성 복지가 많아진 것은 아니다. 현금성 복지는 기사에도 나왔듯이 주로 기초연금, 생계급여와 같은 기초생활 보장제도 등 법적 의무 지출이 대부분이다. 자체 재원 등이 풍부한 지자체는 법적 의무 지출을 하고도 돈이 남는다. 남는 돈으로 재량 지출을 하다 보면 다른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 지난 3월4일 서울경제 ‘지방 재정자립도 낮을수록 현금복지 ↑’ 기사 갈무리.
▲ 지난 3월4일 서울경제 ‘지방 재정자립도 낮을수록 현금복지 ↑’ 기사 갈무리.

즉, 재정자립도가 높으면 법적 의무 지출 외에 재량 지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기사는 “문제는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현금성 복지지출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라고 했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저소득층은 어쩔 수 없이 식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재량지출 여유가 없는 지자체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의무 지출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현금복지가 싫다고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 보장제도 지출을 줄일 수는 없다.

현금복지의 상당 부분은 법적 의무 지출이다. 실제로 특광역시(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에 속한 기초지자체의 재정자립도와 현금성 복지 비율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니 -0.57이 나온다. 즉,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현금복지 비율이 높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재정자립도가 낮은데도 현금성 복지를 하는 현상은 “문재인정부 시절 복지사업이 늘어 악화됐다”는 서울경제의 주장과는 달리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 기사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저 기사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 기사가 아니라 완전히 틀린 기사다.

많은 언론에서는 지자체 재정을 평가할 때 ‘재정자립도’를 줄곧 언급한다. 그러나 나는 ‘재정자주도’가 재정자립도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세, 세외수입처럼 총세수 대비 지자체의 자체 수입을 의미한다. 반면, 재정자주도는 자체 수입에 자주재원을 더한 개념이다. 즉,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주재원은 나의 자체 수입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가 지급하는 교부세도 해당한다.

그런데 특광역시에 소속된 ○○구와 같은 기초지자체는 시, 군보다 자주재원이 부족하다. 시, 군은 중앙정부로부터 보통교부세를 받지만, 특광역시 소속 ○○구는 보통교부세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특광역시 소속 구보다 시, 군은 재정자주도가 더 높아 재량 지출의 범위가 더 넓다. 특광역시 소속 구는 법적 의무 지출을 하고 나면 거의 남는 돈이 없다. 그래서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에 소속된 자치구는 전체 지출의 60%를 넘게 사회복지 분야 지출을 한다. 즉, 법적 의무 지출을 하고 나면 재량 지출의 여력 자체가 없다.

▲ 지난 1월15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직원이 5만 원권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1월15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직원이 5만 원권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보통교부세를 받는 시, 군은 재정자주도가 높아 재량 지출의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강원도나 경북도의 기초지자체 재정자주도는 60%가 넘는다. 광주광역시 소속 기초지자체(30%)보다 재정자주도가 두 배 이상 높다. 재정자주도가 높아 재량 지출 사업의 여유가 있는 시, 군의 재정자립도와 현금복지 비율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자. 놀랍게도 0.7이다. 즉,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의 현금복지 비율이 높다. 0.7의 상관관계는 대단히 높은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즉, 서울경제신문의 우려와는 달리 재량 지출의 여유가 있는 시, 군 등 기초지자체만 분석해 보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경우 현금복지를 안 한다. 226개 우리나라 전체 기초지자체의 재정자립도와 현금성 복지의 상관관계를 보면 0.31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으면 현금성 복지도 같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지방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현금복지가 높다는 기사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많은 언론은 지나치게 현금성 복지에 대해 우려한다. 정확히 말하면 현금성 복지를 우려하는 현 정부의 말에 지나치게 진지하게 반응한다. 우리나라 복지지출의 규모는 OECD 국가 중 가장 최하위 수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2019년 기준 GDP 대비 12%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 20%보다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다. 그런데 현금성 복지 비율은 더 낮다. GDP 5% 수준으로, OECD 현금성 복지지출 평균 1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금성 복지지출에 대한 언론의 엄살은 좀 줄어들 필요가 있다.

▲ 이상민, 유호림(2024) 예산 시계열 분석을 통한 보건복지 정책 개선방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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