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의 흥행은 그야말로 이변이다. 일반적인 홍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력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통상 극장 개봉작은 별도의 영화전문 홍보사를 고용한다. 이 홍보사가 각종 이야깃거리를 보기좋게 정리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면서 기사 노출을 유도한다. ‘건국전쟁’은 이런 역할을 전담하는 별도의 홍보사 없이 김덕영 감독이 SNS로 직접 영화를 알렸고, 그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면서 스크린 수를 늘린 경우다. 한동훈 장관 등 유력 정치인이 관람하면서 기세에 화력이 붙었다. 영화계를 넘어 언론과 정계까지 작품을 조명하게 된 것이다.

▲ 2월1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전날 5만1천여명(매출액 점유율 22.4%)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지난 1일 개봉한 ‘건국전쟁’의 누적 관객 수는 48만5천여 명으로, 5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영화 상영관 모습. ⓒ 연합뉴스
▲ 2월1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전날 5만1천여명(매출액 점유율 22.4%)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지난 1일 개봉한 ‘건국전쟁’의 누적 관객 수는 48만5천여 명으로, 5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영화 상영관 모습. ⓒ 연합뉴스

이념을 중심으로 뭉친 팬덤 효과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지만, 저예산 다큐멘터리가 개봉 3주 차에 70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 다큐멘터리로서 유례없는 흥행 기록을 쓴 ‘노무현입니다’(2017)의 185만 명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지만 지지층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그대가 조국’(2022, 33만 명)이나 동 시기에 개봉한 ‘길 위의 김대중’(2024, 12만 명)의 성적은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이런 성과에 일각에서는 관객 동원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나오는데, 그런 단순한 전략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면 지금껏 시장에서 수많은 작품이 쓴맛을 보고 나가떨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작품에 일부 지지층을 넘어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존재와 역량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국전쟁’의 문제의식은 어느 정도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점으로 보인다. 그가 조선이 채 근대화되기도 전인 1900년대 초 미국의 조지워싱턴, 하버드, 프린스턴 대학교를 거치며 박사학위까지 받은 놀라운 스펙의 인재였다는 점, 제28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우드로 윌슨과 두터운 교분을 쌓는 등 동시대 조선인으로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고급 외교라인을 확보했다는 점, 1948년 국내 선거부터 여성에게도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했다는 점, 오랜 해외 생활로 국내 지주들과는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어 조봉암을 장관 삼아 과감한 농지개혁을 실행한 점, 그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의 ‘땅 소유’ 개념과 자본주의 논리의 기초를 쌓은 점 등은 지지자가 아닌 입장에서도 평가할 만한 부분으로 여길 수 있는 대목이다.

▲ 영화 ‘건국전쟁’ 스틸컷.
▲ 영화 ‘건국전쟁’ 스틸컷.

그럼에도 영화가 시종 강조하는 ‘건국’이라는 개념에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 대통령’이라면 그가 취임한 1948년이 대한민국이 세워진 시점이라는 이야기일 텐데, 이는 우리 헌법과는 배치되는 이야기다.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에 시작해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맞서 싸운 민중들의 혁명이 발발한 1960년까지 성숙한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 같은 합의를 깨고 구태여 ‘건국’이라는 개념으로 국가의 시작점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가 왜 필요한 건지, 그 시도로 인해 누가 어떤 이득을 얻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강조하느라 명백한 과오까지 무마하려 드는 지지자들의 몇몇 대목은 무리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을 남겨둔 채 피신한 6·25전쟁 당시 국군이 한강다리를 폭파한 사건을 두고 ‘지도자가 앞에 나서서 빨리 죽는 게 낫느냐, 뒤에서 안전하게 지휘하는 게 낫느냐’고 두둔하는 대목은 특히나 한가롭게 들린다. 현재 전쟁 중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후방에 은거하면서 이런 논리를 내세웠다면 과연 세계인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3·15 부정선거가 오직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위해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도 비슷한 인상이다. 4선을 시도할 만큼 한 국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장기 집권자 이승만 대통령이 대대적인 부정선거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말하는 건 의심스러울 만큼 순진하다.

우리 사회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과 과를 치열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지도 오래된 시점인 만큼, 그보다 더 앞선 시절의 역사 속 인물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해보자는 주장이 담긴 영화가 나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우리 국민이 명백히 합의하고 있는 대목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우리 역사가 정확히 기록한 사실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설 때는 보다 적확하고 치밀한 설득이 필요하다. 그게 ‘이념영화’가 아닌 ‘정치 다큐멘터리’로서의 본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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