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끝내 기자회견 없이 ‘사전 녹화 대담’을 택했다. 낙하산 사장 취임 논란에 ‘땡윤 뉴스’ 비판을 받고 있는 KBS와 사전 녹화 형태의 대담 방송을 결정하면서 여러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KBS와 신년 대담 방송을 위한 촬영을 했다. 이날 녹화된 대담은 사흘 뒤인 7일, 기존 ‘생로병사의 비밀’ 방영 시간대인 오후 10시 KBS 1TV에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편성됐다. 대담 진행은 박민 사장 취임 후 ‘뉴스9’를 진행하고 있는 박장범 앵커가 맡았다고 전해진다.

이번 대담은 사전 녹화라는 형식의 한계와 더불어 대통령실의 대응 면에서도 불통 논란을 불렀다. 대통령실은 4일 녹화가 끝난 뒤에야 대변인실 명의로 첫 공식 알림을 했다. 그러나 이날 역시 윤 대통령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질의응답을 진행했고 방송 분량은 얼마나 될지, 대담이 정확히 며칠에 방영되는지, 기자회견이나 생중계 대담 대신 녹화 대담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 기초적인 정보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는 2019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 KBS 대담에 비해서도 한참 후퇴한 형태다. 문 대통령과 송현정 KBS 정치 전문 기자의 대담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청와대(현 대통령실)의 경우 대담 예정일로부터 일주일 전인 2일 고민정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의 대담을 결정한 이유와 장소, 방영일 등을 밝혔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에선 “현안에 대한 질문을 듣고 답하는 형식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정권을 홍보하는 대담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전희경 당시 대변인)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23년 4월18일 로이터통신 인터뷰 당시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2023년 4월18일 로이터통신 인터뷰 당시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KBS 또한 공식 자료를 내지 않고 있다. 문 전 대통령 대담을 앞두고 KBS는 청와대 발표일과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대담 방영 일시와 녹화 장소, 진행자 등 정보를 알렸다. 그러나 이번 윤 대통령 대담 관련해 KBS는 공식 자료를 내지 않은 채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취재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후 KBS가 대담 방영을 하루 앞두고 기존 편성을 변경하면서 편성 시간대가 확인됐다.

대담을 앞두고 제한된 정보가 제한된 창구로 유통된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윤 대통령이 특정 매체와 대담을 하기로 했다고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난 1월20일부터 2월5일까지, 관련 보도량은 세 차례 집중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통해 분석한 결과다.

먼저 1월25일, 윤 대통령이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고가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직접 입장 표명’ ‘정면돌파’한다는 내용이 발화자가 특정되지 않은 채 보도됐다. 2월2일엔 윤 대통령이 대담을 4일 녹화해 7일 KBS에서 방영하는 방안이 익명 관계자발로 전해졌다. 이후 보도가 집중된 시점은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의 대담 녹화 사실을 알린 4일이다.

4일 보도 중에선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참모진의 예상질문 및 답변을 참고하는 걸 거부했고 “어떤 질문이든 마다하지 않고 다 받겠다”고 했다는 채널A 단독 보도가 두드러진다. 사전 녹화 대담은 시시각각 질문과 답변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공개 기자회견, 또는 생중계 대담에 비해 투명성이나 즉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생각을 이야기하겠다”는 대통령 주장에 초점이 맞춰진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같은 날 뉴스1 등을 통해선 “(대통령이) 종이 한 장 없이 녹화에 들어갔다”는 전언 등이 보도됐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5일 국회 브리핑에서 “‘언론과의 소통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며 질문 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해놓고 땡윤뉴스만 틀어대는 방송사를 지정해 대담을 진행하다니 국민께 부끄럽지도 않느냐”며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거부한 대통령의 대담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들을 더욱 키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병민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같은 날 YTN ‘뉴스앤이슈’에 출연해 “(기자회견을 할 경우) 김건희 여사에 관한 문제나 정치적으로 정쟁화된 특정 부분들에 몰리게 된다면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 국정운영의 현안들이 뒤로 묻힐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기자들과의 소통의 부재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면서 이후에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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