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21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34조 1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34조 2항)

각 헌법 조항을 소통의 자유로 바꾸거나 소통권을 추가하면 어떨까? 

모든 국민은 소통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소통과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소통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금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왔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됐는데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합의를 만들어 나갈 ‘소통의 공간’은 부족하다”며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협소한 개념을 넘어 다른 시민의 의견을 서로 확인해나가는 ‘소통’의 권리를 보장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시청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마을미디어 갈무리
▲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시청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마을미디어 갈무리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는 1987년 민주화 당시 만든 헌법 체계에선 필요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개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군사독재정부 시절에는 특정 표현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고 언론 활동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따라서 헌법에서 이를 보장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는 소통의 자유, 소통권이 필요하다는 게 채 교수 주장이다. 그는 ‘소통’을 “평등하게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공유하며 공통의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규정했다. 

2016년 촛불집회로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직접민주주의 필요성과 헌법개정 요구가 나왔다. 1987년 헌법 체제가 한계에 달했다는 문제의식에 2018년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란 문구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언론·출판 등 표현의 자유’라고 ‘표현의 자유’가 추가됐다. 물론 헌법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채 교수는 “진일보했다”고 평가하면서도 “1987년 체제, 일방적 미디어 환경을 전제한 헌법개정”이라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누구나 댓글을 달 수 있고 쌍방향 미디어가 발달한 것을 보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이 되지 않아서 우리 의견이 공론장에서 승인을 못 받는 게 아니다”라며 “사회적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도 심한 나라(2023년 OECD 30개국 중 갈등지수 3위)인데 시민들의 요구가 잘 전달되고 반영돼, 즉 소통권이 보장돼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도 보장된다”고 했다. 다른 말로 “자유의 가능성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만 해선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헌법 34조 1항과 2항을 거론한 이유는 뭘까? 채 교수에 따르면 해당 조항이 김대중 정부 때 ‘생산적 복지’란 개념을 만든 근거다. 그는 “그전에는 정부가 불쌍한 사람들을 시혜적으로 도와주는 개념이었다면 생산적 복지를 통해 수급자들을 권리 주체로 만들어 자선이 아니라 인권을 보장하기로 했다”며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의견이 전달되고 반영되는 소통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법에서 소통권을 명시한 이후엔 취지에 맞춰 법률도 개정할 수 한다. 그는 방송법이나 신문법 등을 개정해 시청자위원회(독자위원회·이용자위원회) 관련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개별 언론사가 전문가 중심으로 시청자위원회를 설치하되 여기서 나온 의견을 언론사가 취사선택한다. 

채 교수는 “내가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낯선 시민을 만나 그들의 의사를 듣고 공통의 의견을 만들어나갈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지금 소통권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방송사 재승인 등 최소한의 책임만 지는데 시청자위원회 구성이나 의사집행 방식 등을 정하도록 법을 바꿔야 시민들의 의견이 선택적으로 반영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채 교수는 “(언론사뿐 아니라) 빅테크에도 시민(이용자위원회 등)의 소통권이 보장되도록 강제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채영길 교수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마을공동체미디어 지원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pixabay
▲ 채영길 교수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마을공동체미디어 지원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pixabay

마을공동체미디어도 이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마을공동체미디어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는 공론장이지만 현재 관련 법이 없다. 채 교수는 “마을공동체미디어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분위기에서 소통의 권리를 만들어 나가는 미디어”라며 “주민들을 초대해서 듣는 마을공동체미디어에 대한 지원은 의회나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당연히 지원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언론의 자유’에 대해 시민들이 ‘언론사의 자유’나 ‘언론인의 자유’ 아니냐며 다소 비판적인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채 교수는 “여기서 자유는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언론의 자유는 이제 언론을 위한 게 아니라 언론의 대상인 시민들을 위한 것이 근본적 목적이니 시민들의 ‘소통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언론사 내부에서도 공통의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 의사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각 매체에서 생산과정도 민주화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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