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박민 KBS 사장의 국장 임명동의제 무력화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2024년 1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박민 KBS 사장의 국장 임명동의제 무력화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전국언론노동조합이 31일 KBS 국장 임명동의제를 무시한 KBS의 인사 강행을 비판하면서 “공영방송 역사의 거대한 퇴행을 이끈 낙하산 박민 사장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언론노조 산하 방송사 노동조합 등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KBS의 임명동의제 형해화 시도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박민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반대한 이유는 그가 권력과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권력의 의도를 공영방송 내부에 무리하게 관철시킬 것이 너무나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했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 위원장은 “수십년간 군부독재와 그에 준하는 언론 탄압의 시기, 방송독립이 무너졌던 시기, 그 아픔을 견디면서 퇴행과 후퇴를 막아내기 위해 언론계에 최소한의 방파제는 있어야겠다라는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된 제도가 임명동의제도다. KBS 뿐만 아니라, MBC, YTN, EBS, 지상파 민영방송인 SBS, 수많은 신문 사업장에도 임명동의제도, 나아가 직선제까지 실시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임명 동의를 거치지 않고 마구 투하되고 있는 박민의 낙하산 실체들을 보라.그 자들이 과연 KBS의 대국민 신뢰, 공영방송의 미래, 망가져가고 있는 KBS의 보도 독립성과 공정성, 제작 자율성을 회복할 혜안이 있는 사람들인가”라고 되물으며 “언론노조는 총선 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제 법제화를 위해 투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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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박민 KBS 사장의 국장 임명동의제 무력화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 지역부본부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미국의 사례를 본따서 대통령 주례 연설을 하겠다는 제안을 KBS에 했다. 당시 KBS 구성원들은 어떻게 공영방송에서 대통령이 매주 주례연설을 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거부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 그 주례 연설이 갑자기 KBS 라디오를 타고 매주 아침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KBS 내부에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대통령 주례 연설이 공영방송 전파를 통해서 전국에 방송될 수 있었다. 이렇게 정권의 방송 장악에 맞서서 내부 조력자들을 걸러내고 그 사람들이 주요 결정권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임명동의제”라며 이 같은 제도가 무력화된 현 상황을 우려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타 방송사 노조들도 입을 모아 임명동의제 의미를 강조했다. 정형택 SBS본부장은 “SBS에서도 정권교체기를 틈타 임명동의제를 사측이 일방적으로 후퇴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사장이나 본부장이 아니라 국장급으로 낮추자는 게 사측의 요구였다”면서 “그런데 박민은 임명동의제를 아예 없애자고 한다. 세상은 더디고 느리지만 진보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퇴행만을 반복하는 이 정권을 보면 참담함마저 든다”고 했다.

정 본부장은 “임명동의제가 도입된 시기를 살펴보면 임명동의제 필요성을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에서 언론들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않나”라며 “수시로 청와대에서 전화해서 방송 보도에 개입하고 부당한 지시를 내리면 공정방송을 책임져야 할 책임자들이 맞서서 저항하거나 싸우는 대신 오히려 책임을 방기하고 더 나아가 동조하기까지 했다. 정권이 장악한 언론에서 공정한 뉴스는 사라졌고 자본의 이익만을 좇아, 노동과 소외된 시민들의 이야기는 사라졌다”고 했다.

▲2024년 1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박민 KBS 사장의 국장 임명동의제 무력화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2024년 1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박민 KBS 사장의 국장 임명동의제 무력화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고한석 YTN지부장은 “YTN은 2000년 초반부터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를 실시했다. 사실상의 보도국장 직선제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낙하산 사장이 오고 순식간에 없어져버렸다. 그때 논리가 인사권 침해라는 것이다. 긴 싸움이 이어졌고 2017년에 노사 합의로 단체협약으로서 보도국장 임명 동의제를 정착시켰다”고 전했다.

고 지부장은 “입만 열면 인사권 타령하는데 인사권이 어디 헌법에 있나. 언론의 자유와 노동 3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 언론 자유의 다른 이름이 공정방송이다. 공정방송은 언론 노동자들의 핵심 노동 조건이다. 그 핵심 노동 조건을 지키기 위한 것이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라고 강조했다.

박유준 EBS지부장은 “EBS 정상화를 위해 물러나야 할 김유열 사장 또한 EBS 구성원의 뜻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본인의 뜻대로 EBS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임명동의제를 없애려고 생각했다고 본인의 입으로 직접 밝힌 적이 있다”면서 “공영방송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언론 장악와 방송 탄압을 목적으로 그리고 자기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수단으로 임명동의제를 없애려 하고 무시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 사측은 지난 26일 통합뉴스룸국장, 시사제작국장, 시사교양1국장, 시사교양2국장, 라디오제작국장 등을 임명동의제 없이 임명하면서 “단체협약대로 임명동의를 거쳐 5대 국장을 임명하면 인사규정에서 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직원을 임면하는 것으로서 이는 사장이 인사규정, 정관, 방송법을 순차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KBS 교섭대표노동조합인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번 인사에 대한 법률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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