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과 노동당 울산시당위원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등이 참여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은 18일 오전 울산 중구 학산동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전보 규탄과 온전한 노동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엔딩크레딧과 노동당 울산시당위원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등이 참여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은 18일 오전 울산 중구 학산동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전보 규탄과 온전한 노동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제 목소리를 밖으로 직접 낸 게 오늘이 처음이네요. 4년 가까이 쌓였던 울분이 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2021년 UBC울산방송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한 뒤 법적 싸움 중인 아나운서 이산하씨가 말했다. 

지난 18일 울산지역 지상파 민영방송 UBC울산방송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장소인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 이산하씨와 CG제작 노동자 손민정씨, 미디어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등 울산지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날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이 결성됐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울산 동구의 커피숍에서 이산하씨와 손민정씨를 만났다. 이들은 9년간 몸 담아온 UBC에 ‘제대로 된 근로계약’을 요구하는 법적 다툼 중이다. 손씨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이씨는 정규직과 다름 없이 일했음을 확인해달라는 ‘일반직 직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해온 CG제작과 아나운서의 일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일이자, 기존 정규직과 차별 없는 노동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다.

이씨는 지난 15일부터 매일 아침 출근길 UBC 앞에서 ‘부당전보 비판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씨는 “제가 다니는 회사의 과오를 이야기하는 것이 걱정되고 속상하기도 해 버티다, 벼랑 끝 심정으로 하게 됐다”고 했다.

▲UBC울산방송과 법적 다툼에 나선 방송노동자 이산하씨와 손민정씨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UBC울산방송과 법적 다툼에 나선 방송노동자 이산하씨와 손민정씨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회사의 수용 의지 없다고 느껴” “이건 나가라는 얘기구나”

이씨의 싸움은 2021년 회사가 그를 해고하며 시작됐다. UBC는 6년 간 계약서 없이 ‘프리랜서’ 신분을 적용하면서도 기상캐스터, 뉴스진행, 라디오진행, 취재기사 작성, 행사 진행 등 업무를 맡겼다. 2020년, 일한 지 6년을 맞은 그에게 보도국 부서장은 ‘앞으로 뉴스를 줄 수 없다. 다른 데로 옮기거나, 혹시 결혼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 4월 해고당한 뒤 부당해고를 인정 받고 복직했지만 싸움은 더 어려워졌다. UBC는 이씨와 2년째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있고, 올 초엔 편집요원으로 동의 없이 전보했다. 이씨는 “회사가 저를 받아들일 의지가 아예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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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씨가 UBC 아침 뉴스인 모닝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UBC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손씨는 계약서 없이 9년 간 회사 지휘·감독에 따라 CG제작을 해왔다. 이씨가 소송을 시작하자 UBC는 다른 직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새 계약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7년을 계약서 없이 일했는데, 산하씨가 낸 소송에서 진 뒤 프리랜서 계약을 하자고 했어요. 계약서엔 모든 조항에 ‘프리랜서’란 주어를 강조하고, ‘프리랜서는 퇴직금이나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는 거예요.” 손씨는 작성을 거부했다.

다음해엔 회사가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7년 근속을 인정하지 않고, 월급은 줄고 근무시간은 늘어나는 조건이었다. 이씨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CG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회사는 그해 중순 3교대제로 일하던 그를 새벽 근무 2시간 단시간 근무에 배치했다. 손씨는 “통장에 찍히는 돈이 월 100만원으로 줄어드니 ‘나가라는 얘기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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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에서 9년째 ‘프리랜서’로 일하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한 CG제작 노동자 손민정씨. 사진=김예리 기자

“노동시간 줄이기, 경영난 탓이라지만 프리랜서 새로 채용”

이들은 회사가 직무 전환이나 노동시간 축소 이유로 제시한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기존에 이들이 맡았던 업무가 ‘새로운 프리랜서’에게 맡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UBC 경영정책국장은 “(CG담당) 정규직원이 출산휴가를 갔기 때문에 대체하기 위해 다른 요원을 부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영정책국장은 이씨가 맡던 방송을 다른 프리랜서에게 맡긴 이유로 “라디오 진행은 (이씨 본래 업무가 아니라) 한 번 해보라는 배려 차원”이라 주장했다. 이씨는 2015년 말부터 2021년 해고 통보를 받기까지 6년 가까이 라디오를 진행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2년 UBC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UBC가 이씨보다 경제·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업무를 제안해 이씨가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판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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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울산방송에서 ‘프리랜서’로 6년가량 일하다 잘린 뒤 부당해고를 인정 받고 복직했지만 현재까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다 편집요원 전보를 통보 받은 아나운서 이산하씨. 사진=김예리 기자 

“말없이 안아주는 건 비정규직 분들”

공론화에 나선 이들은 사내에서 겪는 고립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손씨는 새벽 2시 단시간 근무를 하면서 동료들과 마주칠 수 없게 됐다. 부당해고 법적 다툼을 시작한 이씨를 두고서는 아버지가 ‘김앤장 변호사’ ‘국정원 직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변호사와 노무법인이 이씨를 조종한다’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씨는 “벼랑 끝 심정으로 공론화를 시작했고, 간절함으로 버텨왔다. 그런데 ‘회사 상대로 한 언론플레이’라는 말이나, 접하는 시선은 아무리 무뎌지고 적응해도 상처가 되더라”고 했다. 1인 시위에 대한 사내 반응을 묻자 이씨는 “말없이 안아주는 건 비정규직 분들”이라며 “비정규직 분들이 직접 나서기 더 어렵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따뜻한 음료를 주거나, 몰래 시위 사진을 찍어주고, 개인적으로 연락해 고생이 많다, 도움이 못 돼 미안하다, 힘내라는 말을 해준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 회사에 있으면 제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비정상처럼 느껴진다. 회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 발자국만 나와도 사람들은 회사의 대응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며 “‘내가 이상한가’라고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 많이 힘들다”고 했다.

▲UBC울산방송 아나운서 이산하씨는 15일 아침 출근길 U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산하 아나운서 제공
▲UBC울산방송 아나운서 이산하씨는 15일 아침 출근길 U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산하 아나운서 제공

기자회견 찾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우리만의 일 아님을 느껴”

손씨는 공론화를 통해 “우리의 노동이 다른 이들의 노동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최순혁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18일 기자회견 연대 발언에 나서 “한국 사회에서 자본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마치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계약 결정권을 쥐는 사람처럼 우리를 포장한다”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과 똑같이 차를 만들면서도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는다”고 했다. 손씨는 “기자회견에 와주신 분들의 ‘너무 늦게 알았다’는 말이 와닿았다”며 “그만큼 우리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다른 분들도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느꼈다”고 말했다.

UBC 경영정책국장은 이씨와 손씨 상대로 진행중인 소송과 관련해 “민사소송 결과가 나오면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소송 중이라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씨 전환배치는 회사 필요에 따른 것이라며 “지난해 4명이 퇴직했는데 UBC는 신규 충원하지 않고 정규직 직원들을 전환배치했다”고 했다. 이씨 1인 시위를 두고는 “언론플레이와 1인시위를 함으로써 회사 내부에서 부정적 시각을 가지게 돼 이씨에게도 득보다 실이다. 노무법인이 이산하씨를 희생양 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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