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도입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언론의 반응은 냉랭하다. 지난해 공매도 전면금지 발표에 이어 총선을 앞둔 정부의 ‘선심성 정책’이라는 평가다. 주요 아침신문 9개 중 6개 신문이 관련해 비판 사설을 냈다.

▲ 1월2일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1월2일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에서 개최된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 축사에서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하며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라고 했다.

금투세는 대주주 여부와 상관없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천만 원·기타 250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를 상대로 해당 소득의 20%(3억 원 초과분 25%)를 부과하는 세금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법안이 처음 통과됐고 2023년 1월 시행 예정이었지만 여야 합의로 2025년 1월로 도입 시점이 미뤄졌다. 그러다 2024년 1월 결국 폐지가 공식화된 것이다.

언론의 반응은 냉랭하다. 주요 아침신문 9개 중 7개 신문이 3일 관련 사설을 냈는데 서울신문을 제외한 6개 신문이 금투세 폐지에 비판적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관련 사설을 내지 않았다.

▲ 1월3일자 경향신문 사설.
▲ 1월3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부자감세’, 한겨레는 ‘포퓰리즘’ 키워드를 잡았다. 경향신문은 지난 3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금투세 폐지가 계층 이동에 도움이 된다는 황당무계한 발언으로 감세를 정당화했다”며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에게 주식·채권에 투자할 여윳돈이 있겠는가. 가계 부채가 이미 천문학적인 수준인데 또다시 ‘영끌’해서 주식시장에 뛰어들라는 얘기인가”라고 했다.

같은 날 한겨레도 <대통령 금투세 폐지 주장, 총선 겨냥 퇴행적 포퓰리즘> 사설에서 “금투세 폐지 주장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원칙과 조세형평성, 정책 신뢰와 금융 선진화를 한꺼번에 허무는 퇴행적 포퓰리즘”이라며 “마치 ‘김포 서울 편입 주장’처럼 야당을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 설사 성사가 되지 않더라도 1400만 명이 넘는 개인 투자자의 표를 노려보겠다는 전형적인 매표 전략”이라고 평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했는데 중앙일보가 이를 정면 반박했다.

▲ 1월3일자 중앙일보 사설.
▲ 1월3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 <금투세 폐지는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인가>에서 “2020년 금투세 도입을 발표할 때 정부가 내세웠던 명분은 ‘금융세제 선진화’였다”며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투자유형별·금융상품별로 제각각인 과세 체계를 바로잡겠다는 게 선진화의 골자였다. 금투세가 금융세제 선진화라면 윤 대통령이 말한 금투세 폐지는 대체 뭐란 말인가”라고 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금투세 폐지는 공매도 전면 중단과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에 이어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의 표심을 노린 정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일부 개인투자자 단체는 ‘금투세는 개인투자자 독박 과세’라고 주장하며 공매도에 이어 다음 타깃으로 삼아 왔다”며 “이쯤 되면 우리 증시는 이제 개인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다. 일부 개인투자자 주장을 과도하게 반영한 탓에 글로벌 스탠더드와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운용계획'과 관련 사전 상세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운용계획'과 관련 사전 상세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지난해 정부 예산 ‘세수 펑크’는 약 60조 원에 달한다. 세수 확충이 절실한 상황에서 다시 감세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다수 언론이 금투세 폐지를 놓고 정부의 손을 들어주지 못한 이유다.

국민일보는 <금투세 폐지, 서두를 일 아니다>에서 “지난해 세수 결손은 60조 원에 달하고 올해에도 경기 회복이 더뎌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 양도세 완화에 이어 금투세까지 폐지하는 것은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와도 어긋난다”고 했다. 한국일보도 3일 사설에서 “세수 결손이 커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 감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 자세라고 볼 수도 없다. 지난해 대주주 양도세로 거둔 세금이 7조 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또 ‘총선용’ 금투세 폐지, 세수펑크 나라 곳간은 어찌 채우나> 사설에서 “금투세를 폐지하면 연평균 1조 3443억 원에 이르는 세수 증가 효과를 아예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보수 정권이라면 달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1월3일자 서울신문 사설.
▲ 1월3일자 서울신문 사설.

유일하게 서울신문만이 정부 옹호 사설을 냈다. 서울신문은 <금투세 폐지, 방향 옳지만 세수 확보책도 있어야> 사설을 내고 “금융투자시장이 윤 대통령의 언급처럼 ‘국민의 자산 축적을 지원하는 기회의 사다리’라는 측면에서 금투세 폐지는 옳은 방향”이라고 했다. 다만 “문제는 재정 여건”이라며 “기업과 가계의 빚은 사상 최대 기록을 쓰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정부의 ‘공매도 전면금지’ 발표 때도 언론은 ‘포퓰리즘’ 경고를 낸 바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2024년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금지하겠다고 밝히자 보수신문에서도 <경제위기도 아닌데 공매도 금지는 처음… 총선 앞 與 압박에 백기>(동아일보), <또 선거용 공매도 금지… 솜방망이 처벌부터 고쳐야>(중앙일보 사설) 등 우려가 나왔다.

[관련 기사 : 공매도 전면금지에 보수경제지 “포퓰리즘으로 나라 미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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