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를 발표하자 신문이 일제히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강조해 온 보수·경제지도 사설을 통해 당국이 시장 원칙을 훼손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브리핑하고 있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원회
▲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브리핑하고 있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원회

지난 5일 금융위원회는 6일부터 내년 6월28일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고금리와 이스라엘-하마스 무력분쟁 등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선제 대응할 필요성이 있고, 불법 무차입 공매도 행위가 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불법 공매도가 적발된 글로벌 투자은행(IB)에 대한 전수조사도 예고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 주식을 사서 되갚는 투자 기법이다. 개인보다는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국내 증시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며 전면 금지를 요구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나라가 거의 없고,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장애물로 ‘공매도의 제한적 이용’ 등이 꼽혀 당국은 공매도 금지와 선을 그어 왔다.

‘경제위기’에 준하는 주가 폭락기에만 일시적 공매도 금지가 이뤄졌던 이유다. 앞서 금융위는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경우에만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전면 금지했고 2021년 이후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를 구성하는 상위 종목에 한해 공매도가 허용됐다. 하지만 당국은 지난 5일 예정에 없던 휴일 임시 금융위를 열고 공매도 전면 금지를 발표했다.

▲ 4일자 동아일보 4면 사진기사.
▲ 4일자 동아일보 4면 사진기사.
▲ 6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 6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금융위는 최근 적발된 글로벌 투자은행의 대규모 불법 공매도 등을 근거로 들었지만 의도는 ‘총선’이라는 평가다. 공매도를 금지해달라는 여론에 권성동, 윤창현, 윤상현 의원 등 여권이 최근 잇따라 공매도 금지 주장을 폈고 금융당국이 받아들인 모양새다. 지난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간사인 송언석 의원이 같은 당 원내대변인인 장동혁 의원에게 “저희가 이번에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한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보수신문을 중심으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나온다. 동아일보는 6일자 4면 <경제위기도 아닌데 공매도 금지는 처음… 총선 앞 與 압박에 백기> 기사에서 “금융위원회와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주가의 거품을 제거해 적정한 가격을 유도하는 순기능이 있고, 이를 전면 금지하는 선진국이 없는 만큼 관련 규제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며 “금융당국은 총선을 앞둔 여권의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당국은 공매도 허용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며 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자본시장 선진화에 역행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고 지적했다.

▲ 6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 6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중앙일보도 3면 <“증시 단기반등 효과 있지만, 길게는 외국인 이탈 등 우려”> 기사에 이어 사설 <또 선거용 공매도 금지… 솜방망이 처벌부터 고쳐야>에서도 “이번엔 팬데믹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증시에 큰 충격을 주는 대형 악재가 없는데도 공매도를 다시 금지하는 것이라 여러모로 우려스럽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외국계 IB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같은 문제점도 있지만 자본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순기능이 더 크다”며 “특히 실적이 과대 평가된 기업이나 부실 기업의 주가 거품에 경고 신호를 주고, 주가조작 세력의 시세조종을 억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코로나19로 주식시장에 위기가 닥친 2020년 3월 이후 1년2개월간 전면 금지했던 공매도를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에도 일부 재개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고 했다.

경제신문도 마찬가지다. 경제신문은 그간 공매도 금지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것이며 MCSI 선진국지수 편입에 악영향이라고 주장해왔다. 당국의 이번 결정이 시장 원칙 훼손이라고 보는 이유다.

▲ 6일자 한국경제 사설.
▲ 6일자 한국경제 사설.

한국경제는 3면 <개미들 아우성에 공매도 전격 금지…멀어지는 韓 자본시장 선진화> 기사에서 “금융위원회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자본시장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선 공매도를 전면 재개해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하지만 이달 들어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국내 증시 부진에 개인투자자의 불만이 커지자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여권이 공매도 제한 조치를 강하게 밀어붙인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사설에서 한국경제는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불법 공매도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즉흥적인 전면 중단은 오히려 개인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적발된 시세조종은 대부분 공매도 금지 종목에서 이어졌고, 외국인 투자자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하다. 거대 야당에 이어 자유를 내세워온 정부·여당마저 포퓰리즘으로 나라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삶을 위협할 텐가”라고 했다.

▲ 6일자 매일경제 2면 기사.
▲ 6일자 매일경제 2면 기사.

주가 상승 효과가 없을 것이란 예측도 했다. 매일경제는 2면 <통상 연말에는 공매도 줄어 금지해도 주가상승 제한적>에서 “공매도와 주가 방향성 간 인과관계가 작다는 점과 월말 공매도 잔액 하락 경향을 감안하면 공매도가 전면적으로 금지된다고 하더라도 주가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도 필요하면, 시장이 급변하면 공매도를 금지한다”며 공매도 금지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도 신문은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7월13일 기사에서 “2020년 3월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할 때도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지난해 7월20일 칼럼 <[기자의 시각] 공매도가 미우신가요?>에서도 “실제로 공매도와 주가 하락은 관련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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