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를 건전재정이라고 밝히며 재정확대 요구를 일축했다. 또한 그는 내년도 예산 가운데 R&D(연구개발) 분야를 무려 16.6% 삭감한 것과 관련해 “구조조정이 시급했다”며 R&D 예산을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기초 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 역량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사전 환담에서 만나고, 본회의장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이날 유일하게 본회의장에서 팻말시위를 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팻말에서 “줄일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이 지나치게 긴축재정으로 운용된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이같이 건전재정 방침을 고수했다. 2024년도 정부 예산은 656조9000억원 규모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이라며 “건전재정은 단순하게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은 대내적으로는 물가 안정에, 대외적으로는 국가신인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2024년 총지출을 두고 “2005년 이후가장 낮은 수준인 2.8% 증가하도록 편성하여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총 23조원 규모의 지출을 구조조정하였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모든 재정사업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하여 예산 항목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 지출, 불요불급하거나 부정 지출이 확인된 부분을 꼼꼼하게 찾아내어 지출 조정을 하였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윤 대통령은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을 국방, 법치, 교육, 보건 등 국가 본질 기능 강화와 약자 보호,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더 투입하겠다면서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어려움을 더 크게 겪는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은 △최저생활 보장 생계급여 지급액을 4인 가구 기준 162만원에서 183만4000원으로 21만3000원 인상 △장애 정도가 심한 발달 장애인에게 1:1 전담 서비스 제공 △개별 돌봄 시범 서비스를 전국 24시간 지원 체제로 확대 등을 제시했다. 또한 자립준비청년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매월 10만 원씩, 25% 인상하고 기초와 차상위의 가구 모든 청년들에게대학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 12만 명의 소상공인들에 저리 융자 제공 △고효율 냉난방기 구입 비용을 보조해 연간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하겠다고 했고, 안보서비스 분야와 관련해 △병 봉급을 내년도에 35만원을 인상해 2025년까지 ‘병 봉급 205만원’ 달성에 차질없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윤 대통령은 AI, 바이오, 사이버 보안,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축에 4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공급망 불안정에 대비하기 위해 핵심 광물의 공공 비축도 늘리겠다고 했다. 그는 출산, 양육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모 급여를 인상하고 출산 가구에 공공 분양 주택과 임대주택을우선 배정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R&D(연구개발) 분야 예산을 대폭 축소한 데 대해서는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월29일 발표한 ‘2024년 예산안’을 보면, 내년도 R&D 분야 예산은 25조9152억원으로 2023년 31조778억원에 비해 5조1626억원(16.6%)이 줄었다. 윤 대통령은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 원 수준에서 30조 원까지 양적으로는 대폭 증가하였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서는 질적인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국가 R&D 예산은 민간과 시장에서 연구 개발 투자를 하기 어려운 기초 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 역량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고 해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장에 입장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장에 입장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윤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에는 첨단 AI 디지털, 바이오,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하였다”며 “원천 기술 및 차세대 기술 경쟁을 선도하는 데 필요한 우리 인재들의 글로벌 공동 연구에도 지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원천 기술, 차세대 기술, 최첨단 선도 분야에 대한 국가 재정 R&D는 앞으로도 계속 발굴 확대하여 미래 성장 동력을 이끌겠다”며 “중소기업들이 자금 여력 부족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기술 개발 분야와 인공지능, 머신러닝, 자율주행 등의 딥테크 분야에 대한 R&D 투자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R&D 예산은 향후 계속 지원 분야를 발굴하여 지원 규모를 늘릴 것이지만, 일단 이번에 지출 구조조정을 해서 마련된 3조4000억원은 약 300만 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데 배정하였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R&D 분야 구조조정 외에도 앞서 정치 보조금, 이권카르텔 예산을 삭감해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29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정치 보조금 예산, 이권 카르텔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하였고, 총 23조원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혀 큰 논란을 낳았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연금, 노동, 교육 등 3대개혁을 재차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두고 “최고 전문가들과 80여차례 회의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축적했으며, 24번의 계층별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국민 의견을 경청하고, 여론조사도 꼼꼼하게 실시했다”며 “이렇게 마련한 방대한 데이터는 국민연금 모수개혁을 포함하여 연금제도 구조개혁을 위해 요긴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노동개혁을 두고 최근 양대 노총이 회계 공시를 하기로 결정한 점을 들어 “늦었지만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이러한 결정이 도출되는 데 수고한 많은 분들께 고맙게 생각한다”며 “이번 회계 공시를 계기로 투명하고 신뢰받는 노동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노사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와 청년의 미래를 위한 노동개혁에 함께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면서 의원들과 악수하는 과정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면서 의원들과 악수하는 과정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교육개혁과 관련, 윤 대통령은 “수십 년간 공고하게 유지되어 온 사교육 카르텔을 근절하고 공정 입시를 실현해 누구나 공평하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교육시스템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며 “교권 확립을 위한 교권 보호 4법을 개정하여 학교 현장의 정상화를 위한 큰 걸음도 내딛었다”고 자평했다.

한편, 이날 윤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입장하는 과정에서 지난해와 달리 민주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입장했고, 연설 후 퇴장하면서도 의원들과 악수하는 데 꽤 시간을 들였다. 앞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 회의장에서 고성과, 야유, 팻말시위 등을 하지 않기로 신사협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유일하게 한 의원만 팻말을 들고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팻말을 통해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