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 베들레헴의 루터교회 연단에 설치된 아기 예수 탄생 조형물. ⓒ알자지라 유튜브 갈무리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 베들레헴의 루터교회 연단에 설치된 아기 예수 탄생 조형물. ⓒ알자지라 유튜브 갈무리

“이스라엘은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여기엔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있는 주요 교회들을 파괴했습니다. 전세계의 코앞에서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멈출 수 없다면, 우리는 적어도 팔레스타인인으로 태어난 죄밖에 없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퍼지도록 계속 이야기할 것입니다.”

가자지구 출신의 난민 살레 란티쉬씨는 24일 전 세계 주요국에서 성탄절 기념 축제를 벌이면서도 예수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학살에 눈감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청계천로 무교동사거리에 있는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 집단학살 중단 촉구 시위에 참가했다.

성탄절을 앞두고 베들레헴 내 모든 교회는 ‘가자지구에서 살해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애도하고 기리기 위해 전통적으로 개최해오던 축제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성서 속 예수, 쿠란 속 이사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위치한다.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을 시작한 지 78일째인 지난 23일, 이스라엘군에 의해 숨진 팔레스타인인 민간인은 최소 2만 258명을 기록했다. 부상자는 5만 3688명이다(가자지구 보건부 통계). 서안지구에선 이스라엘 불법정착민과 군에 의해 293명이 살해당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전쟁을 시작한 10월7일 이래 가자 주민의 85%에 달하는 190만명이 난민이 됐다.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 란티쉬 씨가 지난 10월22일 오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주최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규탄 집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김예리 기자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 란티쉬 씨가 지난 10월22일 오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주최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규탄 집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김예리 기자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비롯해 149개 단체가 결성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24일 이스라엘 집단학살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비롯해 149개 단체가 결성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24일 이스라엘 집단학살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살레 씨의 가족도 현재 가자지구에 있다. 그와 가족은 모두 유엔의 팔레스타인 난민지원기구인 UNWRA에 등록된 난민이다. 본래 살레씨 가족의 고향은 팔레스타인 중부에 있는 이브나였다. 살레 씨는 그의 할아버지가 15세 때 나크바가 일어나 가자지구로 쫓겨났고, 그의 아버지와 그는 가자지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의 나크바는 1948년 8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학살 당하고 강제추방 당한 사건을 뜻한다.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그해 5월14일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함과 동시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기점으로 1년 간 팔레스타인 마을 530여개를 파괴하고 15만여명을 학살했다. 팔레스타인 인구 절반이 넘는 80만명을 강제추방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찾했다. 그의 할아버지도 강제추방된 난민 중 하나였다.

살레 씨는 현재 가자의 상황을 두고 “정의가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이 여기서 듣는 어떤 이야기보다 현실은 더 끔찍합니다. (피해 현장을 담은) 비디오와 사진이 온라인으로 퍼지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장면은 오히려 퍼지지 않습니다.” 살레 씨는 “그들(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보는 앞에서 살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이 상황에 손 놓고 ‘정의’를 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살레 씨는 “우리는 전 세계 그리스도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가자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을 ‘인간’이라는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그는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침묵하는 건 자유, 존엄성, 평등을 믿는 모든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라며 “여러분에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스라엘의 점령범죄에 대한 정보를 계속 확산하고 사회를 교육해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이스라엘 집단학살 중단 촉구 시위 참가자가 피켓에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라고 문구를 적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스라엘 집단학살 중단 촉구 시위 참가자가 피켓에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라고 문구를 적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한국 정부의 책임에 대해 말하고 싶다”며 “한국 정부가 전쟁범죄에 사용되는 무기를 이스라엘에 판매하며 학살을 지원하고, 홍해 파병을 검토하며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려 한다”고 비판했다. 예멘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을 비난하며 홍해로 이스라엘에 향하는 선박을 공격해 왔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지원 요청에 ‘구제적 지원 방안을 살피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날 시위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비롯해 149개 단체가 결성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주최로 열렸다. 긴급행동은 이날 “지난 두 달 만에 약 2만 명의 주민, 즉 약 240만 가자지구 인구의 1%가 희생됐다”며 “참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즉각 휴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봉쇄를 해제하고 점령을 중단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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