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의해 폭격 당한 누세이랏 난민촌. 사진=UNRWA, Ashraf Amra
▲이스라엘에 의해 폭격 당한 누세이랏 난민촌. 사진=UNRWA, Ashraf Amra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2만30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아기와 어린이가 1만 명에 달한다. 유엔은 지난 6일 가자지구가 “죽음과 절망의 장소”이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됐다고 밝혔다. “음식도 없고. 물도 없고 학교도 없다. 매일 매일 끔찍한 전쟁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러나 언론 반응은 점점 무디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다룬 일간지와 방송사 보도는 10월 4000여건에서 12월 1400여건으로 가파른 하향 직선을 그린다. 영미 언론은 팔레스타인 희생자의 죽음을 축소하는 보도로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 과학저널리스트 다나 나자르 등이 최근 발표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BBC 보도 편향성 분석’에 따르면 이스라엘-가자 전쟁 직후인 10월7일 이후 BBC의 이스라엘 희생자 언급은 일일 최고 110건을 훌쩍 넘겼지만 팔레스타인 희생자 언급은 일일 최고 60여건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가디언의 데이터에디터 모나 칼라비(Mona Chalabi)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BBC 보도 편향성 분석’를 시각화한 페이지. 이미지=@monachalabi 인스타그램 계정
▲가디언의 데이터에디터 모나 칼라비(Mona Chalabi)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BBC 보도 편향성 분석’를 시각화한 페이지. 이미지=@monachalabi 인스타그램 계정

가자지구에 살던 난민 살레 란티시씨는 지난 5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들은 현재 가자지구에 있다. 27세인 그는 가자에서 나고 자랐으며, 2022년 말 한국을 찾았다. 지금은 가자지구에서 피난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시도하며 하루를 보낸다.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인 살레 란티시씨. 사진=김예리 기자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인 살레 란티시씨. 사진=김예리 기자

가자지구에서 피난 중인 가족…3주째 연락 끊겨

통신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는 “온라인 메신저로 연락이 닿을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렵다”며 “일단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들어오는 전기를 끊어서 주민들이 휴대폰을 충전할 수가 없고, 이스라엘 점령군이 네트워크를 표적 공격한다”고 전했다. 신호를 잡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옥상 등 높은 곳에 올라야 하는데, 비행 중이던 이스라엘군이 저격하거나 공습하기 때문이다. 연결돼도 문자 메시지를 받는 수준이고, 영상통화는 생각하기도 어렵다.

살레씨는 3주째 삼촌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다. 그는 “나를 무엇보다 두렵게 하는 ‘트리거’는 그들과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삼촌은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섞어서 가족 모두에 일일 할당량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전기가 없어 물을 데울 수 없고, 새 물도 없어 샤워도 할 수 없다. 3개월째 이렇다.” 인터뷰 뒤인 지난 9일, 살레씨는 드디어 삼촌과 만난 이웃과 연락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친구들의 피해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그의 동료인 작가이자 활동가 아흐메드 아부 아르테마는 아들이 비상식량으로 비스킷을 사러 나갔다 돌아온 직후 집이 이스라엘 공습을 당했다. 그의 아들이 숨졌다. 친구들은 피난 중 떨어진 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며 연락해달라고 부탁해, 한국에 있는 그가 메신저 역할도 하고 있다.

▲살레 란티시씨의 동료인 작가이자 활동가 아흐메드 아부 아르테마가 11월3일 팔레스타인 언론 ‘일렉트로닉 인티파다’에 기고한 칼럼 ‘왜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을 죽였나’.
▲살레 란티시씨의 동료인 작가이자 활동가 아흐메드 아부 아르테마가 11월3일 팔레스타인 언론 ‘일렉트로닉 인티파다’에 기고한 칼럼 ‘왜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을 죽였나’.

 

▲팔레스타인인 집에 이스라엘의 가옥 파괴에 저항하는 벽화 문구가 적혀 있다. 문구는 “이곳은 집이다. 당신의 집과 똑같이”라고 썼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제공
▲팔레스타인인 집에 이스라엘의 가옥 파괴에 저항하는 벽화 문구가 적혀 있다. 문구는 “이곳은 집이다. 당신의 집과 똑같이”라고 썼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제공

영어시험 보는데 시작된 이스라엘 봉쇄
피난처 된 학교...‘모든게 끊긴 감옥’

그는 “모든 게 10월7일이 아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살레씨는 12세에 2006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할 당시를 기억한다. “6학년이었다. 학교에서 영어 과목 기말고사를 보고 있었다. 그때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됐다. 연기가 났고 모두들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가 첫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스라엘이 민간인 집을 폭격하면서 우리 학교는 피난처가 됐다.”

살레씨의 할아버지는 1948년 이스라엘에 터전을 빼앗기고 난민이 됐다. 본래 팔레스타인 중부에 있는 이브나에 살던 그는 15세 때 나크바 때 가자지구로 내몰렸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1948년 8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학살 당하고 강제추방 당한 사건을 말한다.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그해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면서 가옥 파괴와 학살을 자행했다.

2006년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안팎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 등 모든 것을 통제한다. 전기와 연료 공급을 차단해 배터리에 의존해야 하고, 생필품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그때 이후로 우리에게 전기가 하루 8시간 공급되어도 ‘정말 좋은 상황’이라고 말하게 됐다. 매일 매일이 말 그대로 감옥이다.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의 점령 상황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은 보지 못한다.”

▲지난해 10월22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규탄하는 긴급시위’에 아랍 어린이가 참가하고 있다. 사진=스튜디오알 제공
▲지난해 10월22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규탄하는 긴급시위’에 아랍 어린이가 참가하고 있다. 사진=스튜디오알 제공

팔레스타인인들이 비폭력 저항으로 나서면 이스라엘은 총격과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는 2019년 그의 동료 아흐메드 아부 아르테마가 주도했던 2019년 국경 대행진을 떠올렸다. “가자 국경지대에서 매주 함께 전통 음식을 해 먹고, 춤을 추고, 행진을 하며 저항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저격수들이 집을 공격하고 아이들을 죽였다.” 시위에는 수만 명이 참가했고 이듬해 12월까지 이어졌다.

그는 한국인 동료가 ‘10월7일 하마스 공격에 대한 생각’을 물어오면 ‘질문이 틀렸다’고 반박한다. “마치 10월 7일 전에는 모든 게 정상이고 번영했다는 듯한 물음이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가자 주민 65%가 빈곤선 밑에 있고, 실업률(지난해 상반기 46%)도 매우 높다.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이 한 행동으로 답변한다. 시작점은 이스라엘이 가한 점령과 봉쇄, 그리고 전쟁이라고.” 결국 시작점은 1948년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달 29일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그는 남아공의 제소 자체는 환영하지만, 국제기구의 시스템을 믿지는 않는다. “조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지금 상황은 명확하다. 그들이 병원을 공격하고, 1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를 죽이고, 8000명 넘는 여성들을 죽인 걸 보면.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미국이 입김을 가하는 국제기구의 절차에 대해 위협을 느낄지는 회의적이다.”

▲10월22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규탄 시위대 대표 3인이 항의성명을 전달하기 위해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을 찾았다. 이들은 경찰에 막혀 건물 관리인에게 항의 서한 전달을 요청했다. 사진=스튜디오알 제공
▲10월22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규탄 시위대 대표 3인이 항의성명을 전달하기 위해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을 찾았다. 이들은 경찰에 막혀 건물 관리인에게 항의 서한 전달을 요청했다. 사진=스튜디오알 제공

그는 가자지구 밖 각국 시민들의 압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살레씨는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이스라엘 집단학살 중단 촉구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집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멈출 수 없다면, 우리는 적어도 팔레스타인인으로 태어난 죄밖에 없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퍼지도록 계속 이야기할 것입니다.”

경찰이 10월 초 집회가 시작된 뒤 이스라엘 대사관 입구를 둘러 기동대 버스 차벽을 세우고 바리케이드를 쳐 입구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경찰 차벽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있고, 이 행동에 힘이 있기에 그들이 차벽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수백 명이 모이고, 시위하고, 외치는 것으로 그들(이스라엘)은 두려워한다. 그들은 자신이 불법 점령과 학살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고 죄가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가슴 깊이 우리의 권리를 알고 있기에 그들보다 강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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