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된 언론인들이 강제해직사건 보고서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실명을 가리지 말 것을 주장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 측은 다른 조사위원회에서 내는 보고서 등에서도 개인 신상정보의 문제 때문에 실명을 쓰지 않는다(비식별처리)는 입장이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대책위원회(위원장 한종범, 이하 대책위)는 지난 18일 5·18진상조사위 공문을 보내 “80년 언론인 해직 관련 조사보고서와 관련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과 직책 등 개인정보를 비식별처리하지 말고 공개해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 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 된 6월 2일자 1면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지면)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있다.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잘렸다. 현재 대장은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돼있다.
▲ 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 된 6월 2일자 1면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지면)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있다.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잘렸다. 현재 대장은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돼있다.

대책위는 “5·18진상조사위가 지난 5월 펴낸 ‘5·18민주화운동 관련 군 자료집’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비실명처리한 채 출판된 걸 봤는데 우리는 ‘80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인 강제 해직사건 보고서’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비식별처리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대책위는 “우리 80년 해직 언론인들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된 사실이 불명예도 아니고 감춰야 할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우리의 명예회복과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된 사실이 분명하게 적시 공개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어 “따라서 우리는 진상조사 결과보고서에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신원이 개인정보보호라는 미명 아래 비식별처리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1980년 5월18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시위하는 학생을 계엄군이 연행해 탱크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있다. ⓒ 연합뉴스
▲ 1980년 5월18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시위하는 학생을 계엄군이 연행해 탱크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서 대책위는 이러한 입장을 지난 15일 송선태 5·18진상조사위원장과 담당 조사과장과 팀장 등과 면담 때도 전했다면서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해당 공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김준범·한종범(중앙일보, TBC동양방송), 전진우·김재홍(동아일보, 동아방송), 신연숙(한국일보), 윤덕한(경향신문), 김형배·이원섭(조선일보), 이희찬(KBS), 김상기(MBC), 권영국(CBS), 윤후상·유숙열(합동통신), 현이섭·왕길남(경제신문) 등이다. 

5·18진상조사위 관계자는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개인 신상 문제도 있고 모든 국가 보고서에는 실명 처리가 안 돼 있다”며 대책위 쪽 입장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한 정부 산하 조사위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던 A씨는 이날 미디어오늘에 “관련자들이 있고, 특히 소송 등 법적다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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