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위반을 이유로 네이버가 언론사와 제휴계약을 해지한 것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21년 포털 제휴단계로 강등됐던 연합뉴스 가처분 인용에서 ‘제휴약관 무효’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이번 본안 소송에선 그 약관 무효를 정식 인정한 셈이라 향후 포털의 언론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연합뉴스
▲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연합뉴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박태일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인터넷언론 ‘위키리크스한국’이 네이버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이행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재판부는 “네이버가 위키리크스에 대해 뉴스스탠드에 언론사 웹사이트를 배열하고 출처정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뉴스스탠드 관리페이지 접속 계정을 제공하라”고 주문했다.

포털 뉴스 제휴방식은 △검색제휴 △뉴스스탠드제휴 △콘텐츠제휴(CP) 3가지가 있다. 검색제휴는 포털이 전재료를 지급하지 않고 검색 결과에만 노출되는 낮은 단계의 제휴고, 뉴스스탠드제휴는 포털 네이버 PC 첫화면의 스탠드 구독을 운영할 수 있는 제휴를 말한다. CP제휴는 포털이 언론사의 기사를 구매하는 개념으로 금전적 대가를 제공하는 최상위 제휴다.

위키리크스한국은 2021년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의 재평가 대상이 됐고 지난해 2월 재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뉴스스탠드 제휴 해지를 통보받았다. 인터넷신문사업자 ‘노동닷컴’이 네이버와 뉴스검색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제출한 ‘자체 기사 목록’에 위키리크스한국의 기사 4건이 포함돼 있어 언론의 객관성 및 공정성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제평위는 규정 위반 벌점이 누적된 매체에 재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결과 기준 점수에 미달되면 강등이나 퇴출을 한다. 

▲ 위키리크스한국 로고.
▲ 위키리크스한국 로고.

하지만 재판부는 계약해지 근거로 작용한 ‘약관’이 약관규제법에 따라 ‘무효’라고 판단했다. 네이버 뉴스스탠드제휴약관에 따르면 언론이 제평위 결정에 이의제기할 수 없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해지 권고를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법률 위반이라는 것이다. 사건을 대리한 조용현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제평위 심사 규정을 사실상 당연히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하는 건 약관규제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CP든, 뉴스스탠드 제휴든 약관은 큰 차이가 없다”며 “대법원 판결이 아니니 2심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래도 첫 번째 판단이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본안 판결이 큰 의미를 가진다. 이 법리가 인정된다면 앞으로 포털이 언론을 퇴출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포털의 약관 문제는 이미 2021년 지적됐다. ‘기사형광고’로 제휴 단계가 강등됐던 연합뉴스가 제기했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때 재판부는 “해지조항이 약관규제법에 따라 무효가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당시 결정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계약기간 중 제평위가 심사규정을 개정할 경우 자동으로 개정된 규정이 적용되거나 채권자(언론사)의 개정 규정에 대한 동의 의사표시가 의제(본질은 같지 않지만 법률에서 다룰 때는 동일한 것으로 처리해 동일한 효과를 줌)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가처분 인용, 포털 제평위 근간 뒤흔들다]

이어 재판부는 해지조항이 “심사과정에서도 채권자는 제평위 또는 채무자들로부터 재평가의 구체적인 결과와 사유를 통지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채권자 등 제휴언론매체가 재평가결과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물론, 재평가 및 해지 사유를 확인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연합뉴스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연합뉴스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2021년 연합뉴스 포털 강등에 대한 본안 소송은 불발됐다. 네이버가 제평위 권고를 수용해 카카오와 공동 대응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카카오가 거부했다. 연합뉴스 가처분 인용 이후 포털 제평위에서 퇴출된 다수 매체들이 가처분을 신청했고 일부가 인용됐지만 아직까지 본안소송 승소는 없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상대 소송 엇갈린 네이버와 카카오]

이번 승소가 최종 판결에서도 확정되면 포털에 미칠 파장이 클 전망이다. 우선, 그간 퇴출되거나 강등된 언론사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제평위 설립 이후 5년 간 (2016~2020년) 검색제휴 매체 38곳, 스탠드 제휴 매체 11곳, 콘텐츠 제휴 매체 6곳을 퇴출시켰다. 폴리뉴스, 코리아타임스, 위키리크스한국, 뉴스타운 등은 퇴출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처분 기각 사례도 있지만 본안 소송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조 변호사는 “가처분이 기각된 걸 졌다고만 볼 순 없다. 급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라며 “그러한 기각은 본안으로 소송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재 운영이 중단된 제평위가 활동을 재개하더라도 심사 방식 개편이 불가피하다. 네이버와 카카오(다음)가 공동 설립한 언론사 독립 심사기구 제평위는 현재 운영되고 있지 않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여당에서 제평위가 ‘좌편향’됐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고 지난 5월 운영이 잠정 중단됐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제평위 법제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포털의 언론 정책 변경에 시선이 쏠리기도 한다. 포털 다음은 지난달 22일 뉴스 검색 서비스 기본값을 전체 언론사에서 CP사로 변경한다고 밝혔는데, 계약위반이라며 언론사 29곳이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 지난 1일 이의춘 한국인터넷신문협회장과 정경민 비상대책위원장이 포털다음의 뉴스 검색서비스 제한 중지’ 가처분 신청서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제출하고 있다. 사진=인터넷신문협회 제공
▲ 지난 1일 이의춘 한국인터넷신문협회장과 정경민 비상대책위원장이 포털다음의 뉴스 검색서비스 제한 중지’ 가처분 신청서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제출하고 있다. 사진=인터넷신문협회 제공

가처분 인용 여부는 본안 소송 쟁점과는 포인트에 다소 차이가 있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할 만큼 신속한 효력정지 사유가 있는지가 주된 쟁점이다. 기본값 변경이 제휴계약 해지만큼의 피해를 주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지난 2월 위키리크스한국이 냈던 계약해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는데 당시 재판부는 “네이버와 제휴계약이 해지되면 사실상 공론장에서 퇴출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이로 인해 사후적인 금전적 배상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가처분은 보전의 필요성뿐 아니라 피보전 권리가 인정이 돼야 한다. 약관규제법에 의해 무효가 되니까 권리는 인정될 수 있다고 보지만 검색의 기본값 변경은 이번 승소 건과 포인트가 조금 다르다. 지켜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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