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에서 다양한 장애 의제를 다루지 않는 현실 속에서, 미디어에서 장애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장애 의제를 다룬 보도는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과 감수성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선 장애인 인권에 관한 보도 규정을 제시하고 있지만, 미디어가 장애 혐오의 장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언론진흥재단·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장애인권 보도 현안과 방향 토론회>에선 장애 보도 양상과 개선점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발제를 맡은 안문경 경희대 강사(학술연구용역 스콜라란 대표)는 8개월 동안 지상파 3사의 장애인 관련 보도 영상을 분석한 결과를 공유했다. 안 강사는 텍스트가 아닌 영상 특징에 집중하기 위해 뉴스를 무음으로 청취했다.

▲ 지난 6일 열린 토론회에 참여한 안문경 학술연구용역 스콜라란 대표.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 지난 6일 열린 토론회에 참여한 안문경 학술연구용역 스콜라란 대표.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장애인 관련 보도 영상에선 주제와 관련 없는 장면이 많았다. 장애인 폭행 피해 관련 보도에서 보도와 관계없는 다수의 중증장애인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지난해 여름 홍수로 인한 장애인 거주시설의 피해 현장을 보도하면서는 피해 영상이 아닌 다수 중증장애인의 일상 생활 모습을 계속 노출하는 경향이 보였다. 안 강사는 “소리를 없앤 채 영상만 보게 되면 장애인들이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걸 보여주는 건지, 집중호우로 시설에 문제가 생긴 건지 파악할 수 없다”며 “화면에 나오는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이 저렇게 보여지는 것을 원했을까,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주제”라고 말했다. 

보도 내용과 무관한 장애인의 신체적·정신적 특성을 강조하는 보도도 다수였다. 특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보도 영상에선 하체에서 얼굴까지를 연속해 비추는 경향이 뚜렷하다. 휠체어가 이동할 땐 덜컹거리고, 턱에 걸려 넘어가지 못하는 모습이 강조됐다. 안 강사는 “장애인 이동이 힘들다라는 걸 전하려는 의도는 알지만, 보도에 불필요한 경우였다”며 “보행에 불편을 겪는 분들의 이동을 보도할 때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필요하게 이동 모습을 불안정하고 역동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CCTV 영상을 통해 노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장애인이 학대받는 CCTV 영상을 긴급 입수했다고 강조하며, 후속보도로 동일 영상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식이다. 안 강사는 <[단독] ‘강제식사’ 처음이 아니었다…CCTV 속 장면 보니> 기사를 사례로 들었다. 보도에선 시설의 식사 시간에 학대 당하는 장애인 모습을 노출했고, 이후 재가공 보도를 반복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올해 안 강사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장애인 보도 영상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했다. 가이드는 영상 관련 다섯 가지 권고 기준을 제시한다. △장애인 관련 주제의 심층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등함과 중립적 시선 △시각적 과잉이 아닌 절제 보도의 효과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고려 △장애 특성이 아닌 사회제도 개선에 초점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보도에 대한 연구를 계획 중인 안 강사는 대립 구도로 굳어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보도도 지적했다. 전장연 시위 관련 보도에선 장애인 단체와 정치인, 장애인 이동권과 시민의 이동권, 정책 비판과 장애인 시위 비난, 시위 예고와 서울시 불허 등의 대립각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대립 구도에선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핵심 주제는 사라지고 갈등만 남게 될 위험이 있다. 분노한 장애인의 모습과 달리 행정부의 입장은 강한 발언을 담은 문서로만 짧게 보도된다는 특징도 있다. 

안 강사는 “이러한 보도 패턴, 시각적 불균형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며 “장애인의 특성만을 부각하는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시각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 장애인 학대 사례를 전하는 보도에선 그들의 불편한 모습이나 피해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삼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학대보도 개선 위한 권고기준 만들어져, 세부 지침·보도 사례 담아

최근엔 ‘장애인 학대보도 개선을 위한 권고기준’ 책자가 만들어져 배포를 앞두고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협업해 작업에 참여한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 관련 규정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일부 언론에선 여전히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2차 가해를 이어가 권고기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현직 기자부터 인권 전문가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연구에 참여해 장애인, 장애인 가족, 기자, 실무자를 대상으로 인터뷰해 기준을 만들었다. 

▲ 지난 6일 열린 토론회에 참여한 유현재 교수.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 지난 6일 열린 토론회에 참여한 유현재 교수.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책자는 5가지의 권고기준과 13까지 세부 지침으로 구성했다. 권고기준에는 △학대 사건 보도는 제 2의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장애인의 경우, 피해자나 가해자의 특정이 비교적 쉬워 피해자 정보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CCTV 등 자료화면 사용 시 관련성이 없거나 낮은 특정 사건이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제목 및 헤드라인 작성에 있어 장애인에 대한 과도한 묘사 혹은 비하가 있는지 반드시 반복해 확인해야 한다 △학대 가해자가 장애인일 경우, 장애 사실을 강조하기보단 범죄와 관련된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작성하는 게 합리적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13가지 세부 지침엔 구체적인 보도 사례와 관련 자료를 담았다.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례와 이유, 피해 양상을 설명하고, 비슷한 상황에서의 좋은 보도를 넣어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유 교수는 “이전엔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편견 해소와 인식개선을 위한 전략 연구를 통해 권고기준을 만들었었다. 권고 기준이 만들어진 다음엔 어떻게 확산되느냐가 중요하다. 연구자들만 아는 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인지해야 한다”며 다양한 홍보 사례도 소개했다. 

이해수 고려대 BK21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교수는 “전장연 지하철 행동이 의미있는 건 인식되지 않았던 존재가 공공장소인 지하철역에 몸을 드러내고 열차를 멈춰세움으로써 누군가의 출근길이 당연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몸을 드러내는 것, 장애 특성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언론이 어떻게 프레이밍하는가, 어떠한 메시지가 더해져서 이들을 예외적인 존재로 만드는가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언론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예들도 가이드라인에서 다뤘으면 좋겠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 제재 요소만을 적용했을 때 그것의 민감함에 두려워 의제화하지 않는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며 “바람직하지 않은 보도를 예방하기 위해선 좋은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단순히 부정적인 재현을 제재하고 예방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맥락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대응이 되려면 좀더 많은 사례가 발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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