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지난 3일 민영방송 경영규제의 법적 문제를 검토하는 국회 토론회 내용을 보도했다. 당일 오후 SBS 뉴스 홈페이지엔 보도본부 소속 기자가 작성한 2개의 디지털콘텐츠(온라인 스트레이트 기사, D리포트)가 출고됐다. SBS는 “재허가·재승인 때 민영 방송사업자들에게 부과하는 ‘소유·경영 분리’ 조건은 방송법에 뒷받침할 규정이 없어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당 기사는 SBS가 이해당사자다. 당장 보도 사유화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권 비판 보도가 축소된다고 느끼는 가운데 자사 이익이 걸린 민영방송 규제완화 보도는 적극적이라는 비판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노조)에 따르면, 해당 기사는 대부분의 D리포트들과 달리 발제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및 내용 공유가 이뤄지지 않았다. 

▲ SBS [D리포트] "민방 '소유 · 경영 분리' 재허가 조건, 법적 근거 부족" 보도화면 갈무리.
▲ SBS [D리포트] "민방 '소유 · 경영 분리' 재허가 조건, 법적 근거 부족" 보도화면 갈무리.

SBS 기자들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잇따른 정권 눈치 분위기에 자기검열로 인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강화된 기사 데스킹 기준과 정권 비판 아이템에 대한 데스크의 잣대가 높게 적용되는 내부 분위기도 전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8조 개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SBS를 길들이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SBS는 방송법 8조 위반 상황이다.  

“중대하지 않다던 단독 뉴스, 다음날 경향신문 1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SBS에선 ‘정권 눈치’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3월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은 개편 한 달 반만에 급작스럽게 앵커를 교체해 윤 정부에 비판적 발언을 해왔던 주 앵커에 대한 ‘외압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5월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TV 동물농장>에 출연해 사내에서 SBS가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소극적인 정권 비판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내부에선 이동관 방통위원장에 대한 검증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다루며 대통령실 비판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9월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위협받는 동물권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1시간 만에 돌연 삭제해 정권 눈치 비판이 일었다. 

▲ 지난 2월1일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개편 소식을 전한 SBS 보도 영상 갈무리.
▲ 지난 2월1일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개편 소식을 전한 SBS 보도 영상 갈무리.

SBS 소속 A기자는 “국민적 관심이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역린처럼 느껴지면 소극적으로 보도하는 게 느껴진다”며 “첫 오염수 방류 날에도 KBS, MBC는 주요 기사로 보도했는데 우리는 뒷부분의 한 꼭지로 특파원이 처리했다”고 말했다. SBS 소속 B기자는 “유독 정부·여당 비판 기사에만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사안이 쌓이다 보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취임 후 정권 눈치 보기가 심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SBS 소속 C기자는 “최근 이동관 위원장 선임이나, MBS·KBS에 대한 정권 차원의 위력 행사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보도국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나 생각된다”며 “SBS는 공영방송은 아니지만 방통위 재허가에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압력을 받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 SBS 보도화면 갈무리.
▲ SBS 보도화면 갈무리.

기자들은 특히 SBS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관련 소극적 보도를 지적했다. 내부에선 홍범도 흉상 철거를 추진한 TF의 총괄 간사가 박근혜 국정교과서 집필진이라는 내용을 타사보다 먼저 취재했음에도 <8뉴스>에 내지 않았고, 온라인 스트레이트로 다루며 ‘단독’ 표기 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A기자는 “중대하지 않다는 이유로 8뉴스에도, 단독 기사로도 출고되지 않은 걸로 안다”며 “결국 단독을 떼고 출고됐는데, 해당 뉴스가 다음날 경향신문엔 1면에 실렸다”고 말했다. C기자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보도도 SBS가 처음부터 이슈를 이끌고 나갔는데, 이후 대통령실로 책임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SBS 보도량이 확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보도된 민영방송 규제완화 기사에 대해 B기자는 “너무 눈에 보이는 정도의 기사를 써서 놀랐다. 보도 사유화”라며 “지난 몇 년 사이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회사 관련 민원 해결용 기사를 쓰라고 시키진 않았다. 최근 들어 바뀐 회사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취재파일도 데스킹 거치기 시작... “전체적으로 너무 눈치를 보고있다”

기자들은 최근 들어 SBS 보도국 내부의 기사 데스킹 기준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본래 취재기자가 짧은 방송 기사에 담지 못한 내용을 데스킹 없이 자유롭게 쓰던 ‘취재파일’ 기사도 최근 데스킹을 거치게 됐다. 기자들은 온라인 ‘스브스 프리미엄’의 <새만금 잼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이비 국가주의’>(8월13일) 기사로 내부에서 논란이 생긴 후 해당 데스킹 원칙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기사의 제목은 <새만금 잼버리에서 드러난 여야 정치권의 ‘국가주의’>로 바뀌었다. 

▲ SBS 기사 수정 전(위쪽)과 수정 후 제목 비교.
▲ SBS 기사 수정 전(위쪽)과 수정 후 제목 비교.

A기자는 “취재 파일은 취재기자들의 숨통이 트이는 창구였다”며 “전체적으로 너무 눈치를 보고있다”고 말했다. C기자도 “이 기사를 계기로 데스킹을 강화했다는 건, 명확한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B기자는 “(데스크가) 정권 비판 아이템을 대놓고 보류한다기보단, 잣대를 높이는 식이다. 취재가 부족하다, 기사가 약하지 않냐고 말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보도본부는 최근 SBS 경영위원회의 결정으로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재점검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관련해 사측은 올해 3분기 노사협의회에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위험 최소화 목적의 게이트키핑과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C기자는 “저널리즘 원칙을 검토한다는 말은 일종의 포장”이라며 “결국 예민하고 권력이 불편할 수 있는 기사에 게이트키핑을 강화하겠다는 게 된다. 결국 수뇌부가 생각하는 저널리즘 방향대로 따라가자는 얘기밖에 더 되나”라고 반문했다. 

B기자는 “원칙적으로 저널리즘 원칙을 세운 게 오래됐으니 지금에 맞게 업데이트할 필요성이 있다는 거엔 동의한다”면서도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가 있었던 게 아니라 최근 정부에서 가짜뉴스, 대선 직전 보도를 때려잡는 상황에서 갑자기 저널리즘 원칙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고 한 거여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울 목동 SBS사옥. ⓒ연합뉴스
▲ 서울 목동 SBS사옥. ⓒ연합뉴스

최대식 SBS 보도국장은 지난 9월 취임 당시 “힘자랑이 아닌 절제와 겸손, 공감과 배려를 겸비했을 때 존중받는 저널리즘이 가능하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고 틀릴 수 있다는 경계로 팩트와 주장을 검증하고 구별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A기자는 “만약 그런 절제가 필요했다면, 자사의 이익과 아주 밀접한 사안이야말로 잘 판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B기자도 “결국 기사를 덜 쓰라는 말, 약하게 쓰라는 말로 들린다. 오히려 가만히 있고 사고 치지 말라는 뜻에 방점이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외압 행사 아니다” 사측의 반복되는 설명에 무력감 느끼는 기자들

노조는 SBS에 대한 외압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사측에 설명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사측은 “외압이 행사된 결과는 아니다”, “사안의 경중에 대한 판단이 달랐을 뿐”이라는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A기자는 “수뇌부는 뉴스의 중요도가 다른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러한 설명이 더 이상 기자들에겐 공평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단순히 기사에 대한 가치 판단의 차원을 넘어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동료들도 자과감을 넘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들은 기사를 발제할 때부터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A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서 자기 검열하게 된다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 데스크에게 가서 대놓고 따지는 상황은 많이 줄었고, 기자들 사이의 무력감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C기자도 “기자들이 예민한 사안은 발제와 취재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엄격한 저널리즘 잣대가 예민한 일부분에만 강하게 적용된다면 연성 아이템에 더 집중하게 된다.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 자연스럽게 도태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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