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코로나와 각종 국지적 재난 등을 겪으며 지역방송사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지원에 있어서는 여전히 소극적 모습이다. 방통위는 올해 말 발표할 제4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 초안을 지난 30일 지역방송사에 공개하고 의견을 듣는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지역방송발전기금 조성, 서울권 방송사와 불균형 해소 등 근본 해결책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간담회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한국전파진흥협회(RAPA), 방통위 지역미디어정책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사업자(지역방송사) 측에서는 정책담당자 2명(울산방송·대전방송)과 노조위원장 5명(전주방송·G1방송·청주방송·KNN·대전방송) 등이 참석했다. 정책담당자가 2개 방송사에서만 참여한 것을 포함해 일부 지역민방 측만 참석했고 지역KBS·지역MBC 등에선 참석하지 않았다. 

이는 방통위가 각 지역을 돌면서 지역방송사 고충을 듣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날짜를 정하고 지역방송사와 무관한 서울로 간담회 장소를 잡았기 때문이다. 간담회 방식과 장소 선정부터 서울중심적이라는 비판이 가능한데, 그나마 방통위 내에선 ‘지역미디어정책과는 지역방송사들 대변인이냐’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중앙부처에서 지역방송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일부 참석자들은 “이미 지역방송의 어려움과 불합리한 정책에 대해 여러 차례 말했지만 기존 1~3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4차 발표에도 기대감이 없다. 그래서 참석률이 저조한 것”이라고 전했다. 

2014년 12월 시행한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에 따라 방통위는 지난 2015년 제1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2015~2017년, 3개년 계획이다. 이후 2018~2020년 2차 계획안, 2021~2023년 3차 계획안이 각각 발표됐다. 방통위는 올 연말 제4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2024~2026년)을 발표할 예정이다. 

▲ 지역 민영방송사들 로고.
▲ 지역 민영방송사들 로고.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방통위가 공개한 초안에 대해 지역방송 관계자들은 지역방송발전기금 신설, 전국단위 방송사와 지역방송의 불균형 해소 방안 등 ‘알맹이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박완주 무소속 의원은 방송통신발전기금 분담금을 부담하지 않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기관에 최근 5년간 지원된 예산이 2300억 원이 넘는데 같은 기간 지역방송에 지원한 예산은 약 212억 원으로 10%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지역방송사들은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을 제정했으니 이를 뒷받침할 지역방송발전기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이번 4차 계획안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참고로 지역신문의 경우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제정 이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선 방통위가 전국단위 방송사들에 유리하게 광고규제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간접·가상·중간광고 등을 허용하며 광고 규제를 완화할 때 모든 방송사 규제를 한번에 풀었는데 그러면 광고가 서울 방송사로 몰리게 된다. 지역방송사 입장에서는 실익 없는 규제완화인 셈이다. 서울의 대형 방송사들도 방송광고 시장이 위축되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지역방송사들이 보기엔 방통위가 서울 방송사 관점에서 각종 광고규제를 추진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향후 의료광고 규제 완화를 추진할 때 지역방송에 먼저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역의 많은 병원이 홍보비를 이미 쓰고 있는데 방송광고를 허용할 경우 전체 방송사에 모두 허용하면 서울 쪽 방송사에 광고를 하겠지만 지역에만 먼저 허용할 경우 해당 지역 방송사에 광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 광고 규제에 대해 방통위는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 등과 입장을 조율해야 할 문제라 국회 차원에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측은 이날 간담회에서 코로나19, 기후변화 등으로 여러 국지성 재난 등을 겪으며 지역방송사의 공적 역할 중요성을 체감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특히 지난 3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이 2020년 말 발표됐는데 그 이후 코로나19가 확산했기 때문에 4차 계획안에선 진전된 지원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난방송 분야에서 지역방송 역할은 앞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방송사 관계자들은 방통위 쪽에서 지역방송 중요성을 체감했다면 현실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비현실적인 제재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현재 지역방송사들은 서울 방송사들처럼 재난방송 의무를 부여받고 있는데 이를 수행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서 재난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지역방송사는 이 내용을 위성이나 LTE 등으로 서울로 보내야 하는데 이러한 기반 시설을 지역방송사가 갖추기 어렵다. 방통위가 지역민방의 재난방송 역할을 재난주관방송사인 KBS 수준까지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그렇다면 먼저 지역방송사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한 뒤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방송사에도 연간 수천 건의 재난방송 의무가 부과되는데 한 예로 울산방송의 경우, 실수로 한 건 정도 놓치거나 비슷한 내용이라 전날 방송이 똑같이 방영된 것 등을 이유로 2200만 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서울 지상파 방송과 달리 수백만 원으로 한 개 프로그램을 만드는 지역방송사 입장에서 거액의 과징금은 경영에 타격을 주는 수준이다. 

이에 일부 참석자들은 “현재 재난방송 한 건 놓치면 1500만 원 과징금인데 서울에서의 1500만 원과 지역에서의 이 금액은 사실상 역차별”이라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재난 예방과 해결 주체는 정부인데 사실상 방송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 방송통신위원회
▲ 방송통신위원회

이날 공개한 4차 계획 초안 중에는 기존 계획에 있던 내용 중 사라진 부분도 있다. 지난 2020년 12월 발표한 3차 계획에 보면 ‘지역방송 공적 책임 강화’가 있다. 과제 3-1 ‘지역방송 경영의 자율성·투명성 개선’을 보면 “방송사 사장 선임 절차의 투명성, 주요 주주의 방송 편성 개입을 방지하는 시스템 등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2020년 하반기 재허가 심사위원회에서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실현 여부를 중점 심사하겠다고 했다. 

지역MBC에 대해 주주와 특수관계자가 아니면서 방송에 대한 전문성을 지난 독립적 사외이사 위촉, 감사제도 강화 등 시행 여부를 점검했고, 민영방송에는 방송전문경영인 제도 유지, 주주와 특수관계자가 아닌 독립적 사외이사 복수 위촉, 감사제도 강화 등 이행 여부를 점검했다. 또 사외이사, 감사, 감사위원의 장기 연임 제한 관련 규정 마련 등을 점검했다. 지역방송사가 방송사업 외 부대사업을 위해 법인이나 부설기관을 운영할 때 역시 방송의 공적 책임이 훼손되지 않도록 그 운영 현황을 방통위에 제출하도록 했다. 

4차 계획 초안에선 ‘지역방송 공적기능 강화’ 방안으로 ‘재난방송 기능 고도화’와 취약계층 지역 방송시청지원 등 ‘지역 미디어 복지 강화’ 관련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그나마 3차 계획에서 필요한 부분인 경영자 공적 책임 부분이 빠졌는데 4차 계획 최종안에는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 의견을 종합하면 전국단위 방송사와 지역방송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방통위가 ‘사업자 간 해결할 문제’라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방통위가 지역방송사들에도 같은 규제, 혹은 더 무거운 의무를 지우면서 불공정한 거래 상황에서 외면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방송계의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요구한 것이다. 

또 지역의 건강한 콘텐츠를 OTT에 공급할 수 있는 장을 만들거나 유튜브 지원책을 검토하는 안도 의미는 있지만 지역방송 위기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닌 만큼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 참석자는 “방통위는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안이 아닌 ‘무엇을 유도하겠다’고만 하는데 이런 태도로는 지역방송 구성원들이 지역방송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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