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라는 말을 쓰는 순간 우린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나누게 된다. 가짜라는 말에 현혹돼 진짜의 편에 서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가짜뉴스 개념을 따지고 들어갈 틈도 없이 흑백 논리가 작동된다. 특히 가짜뉴스 때리기 프레임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뉴스타파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하는 것은 가짜뉴스다’라고 주장하면 프레임은 깨지지 않고 오히려 견고해지는 모순에 빠지고 그 늪은 깊어진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첫 단추부터 풀어야 한다. 가짜뉴스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멈추는 방법이 있다.

지난 16일 유럽연합이 소셜미디어 엑스(X)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일 하마스 간 전쟁 허위정보를 방치한 것에 대해 디지털서비스법 적용을 추진하기로 했다. 허위 불법 혐오성 콘텐츠를 방치하면 플랫폼 기업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정보나 유해 콘텐츠를 솎아내는 범국제적인 규제책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제목에 ‘가짜뉴스 규제책’이라는 말을 썼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에서 이 같은 강력한 법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유해 콘텐츠를 사회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과 함께 가짜뉴스라는 말을 살짝 끼워넣었다. 디지털서비스법은 유해 콘텐츠 처리에 미비한 플랫품을 규제하는 게 핵심인데 마치 허위조작정보를 담은 언론사 뉴스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하는 것처럼 가짜뉴스 규제책이라는 말로 뭉뜨그려 표현한 것이다.

▲ 가짜뉴스, Fake news. 사진=gettyimagesbank
▲ 가짜뉴스, Fake news. 사진=gettyimagesbank

‘브라질 당국 가짜뉴스 못 걸러내면 빅테크 처벌’한다고 전한 뉴스를 보면 “플랫폼 기업들은 온라인에 유포되는 허위 정보 극단주의 콘텐츠를 걸러내고 삭제할 의무가 있으며 가짜 뉴스 유포를 제대로 막지 못하면 처벌받는다”고 보도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 설명 없이 가짜뉴스 유포라는 성립이 되지 않는 걸 뻔히 알지만 가짜뉴스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설즈버거 뉴욕타임스(NYT) 회장이 지난 19일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가짜뉴스라는 표현에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우리 언론 보도는 본질을 비껴갔다. 설즈버거 회장은 “‘가짜뉴스’(Fake news)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굉장히 음흉한 표현”이라며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짜뉴스’, ‘국민의 적’이라는 표현은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등 인류 역사의 끔찍한 순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날로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언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A.G. 설즈버거(Arthur Gregg Sulzberger). 사진=flickr(world economic forum)
▲ A.G. 설즈버거(Arthur Gregg Sulzberger). 사진=flickr(world economic forum)

우리 언론은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제목에 쓰지 않았지만 설즈버거 회장의 발언을 한국의 현실에 비춰 조명한 해설은 거의 내놓지 않았다. 그나마 김승련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의도적 조작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뉴스라는 외피를 입게 되면서 언론의 공신력이 훼손된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가짜와 뉴스는 같이 쓰는 자체가 형용 모순이란 뜻이기도 하다”며 설즈버거 회장 발언의 핵심을 간파하긴 했지만 한국의 현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도 지난 2019년 방한했을 때 “가짜뉴스라는 말을 페기했으면 좋겠다”면서 “이 프레임 자체가 트럼프에게 놀아나는 것이다. 가짜뉴스란 표현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가짜뉴스라는 말이 ‘정치적 마케팅’에 불과하고 정치 진영의 오염된 말로 규정한지 오래인데 왜 한국에선 가짜뉴스라는 말이 횡행하는지, 그 의도는 무엇인지 우리 언론은 눈을 감고 있다.

가짜뉴스라는 말을 용도 폐기하자는 선언을 내놓는 건 어떨까. 가짜뉴스라는 말을 ‘그들의 언어’로 고립시키는 전략이다. 가짜뉴스라는 말을 쓰면 의심부터 들도록 하는 것이다. 허위조작정보, 잘못된 정보, 오보를 정확히 구분해서 쓰는 것은 사실에 기반한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의 지위를 공고히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