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1일 뉴욕 디지털 포럼에서 가짜뉴스에 대해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관련 MBC 보도 갈무리
▲ 지난 9월21일 뉴욕 디지털 포럼에서 가짜뉴스에 대해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관련 MBC 보도 갈무리

‘가짜뉴스 퇴치’라 쓰고 ‘비판언론 퇴출’이라 읽는다

지금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짜 뉴스’ 퇴치 공세의 근본적인 문제는 가짜뉴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실체 없는 ‘유령’을 상대로 마구 무기를 휘두르는 식이다. 지난 정권 때 민주당이 추진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강한 반발 역시 가짜뉴스 개념의 불명확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사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그새 무엇이 바뀌었는가. 바로 거기에 지금의 ‘가짜뉴스 맹공’의 숨은 이유가 있다. 가짜뉴스라는 낙인찍기, 가짜뉴스 프레임이 겨냥하는 ‘진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즉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비우호적인 언론,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누르려는 것이다. 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매체의 보도는 철저히 비호하고 감싸는 안전망을 제공하려 한다. 가짜뉴스 공세가 오히려 한편으로는 부정확한 보도,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는 역설을 자아내고 있다.

▲ 지난 9월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부 반발 관련 방심위의 입장 발표 보도자료 갈무리. 사진=방심위 누리집
▲ 지난 9월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부 반발 관련 방심위의 입장 발표 보도자료 갈무리. 사진=방심위 누리집

‘가짜뉴스 척결’에 어디보다 앞장서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내부로부터 그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나오고 있는 것이 그 실상을 보여준다. 방심위가 인터넷 뉴스를 포함한 언론보도에 대한 위헌·위법적 심의 계획을 발표해 비난을 사고 있는 가운데, 방심위의 한 팀장급 직원이 9월25일 위원장에게 ‘위원회 심의 근간을 흔들고 위원회 존립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공개 비난 편지를 보냈다. 이 팀장의 편지에서도 무엇보다 먼저 묻고 있는 것이 “대체 가짜뉴스란 무엇인지부터 얘기해 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 직책까지 밝힌 것에서부터 방심위 내부의 불만 기류를 읽을 수 있는데, 그는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나 합의도 없이, 위원회가 그동안 지켜온 통신심의의 원칙과 기준들을 무시하며 벌이고 있는 가짜뉴스 척결은 정말 사회적 대의를 위한 것인가”라고 위원장을 추궁했다.

▲ 지난 5월8일, 한국언론진흥재단 가짜뉴스 피해신고·상담센터 개소 관련 보도자료 갈무리.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누리집
▲ 지난 5월8일, 한국언론진흥재단 가짜뉴스 피해신고·상담센터 개소 관련 보도자료 갈무리.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누리집

무엇이 도둑질인지도 모르고 도둑 잡겠다?

또 다른 언론 공공기관인 언론진흥재단에서도 가짜뉴스를 둘러싸고 스스로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재단 내에는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현 정부에서 임명한 신임 이사들의 주도로 ‘가짜뉴스 피해신고·상담 센터’가 결국 설치됐다. 이에 대해 언론단체들은 “가짜뉴스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없으니, 무엇이 도둑질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찰이 도둑을 잡겠다고 나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호되게 비판했거니와 재단이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가짜뉴스 드라이브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드러냈다.

언론진흥재단이 6월에 주최한 ‘가짜뉴스 vs 팩트체크’ 토론회에는 팩트체크 분야에서 잘 알려진 전문가인 미국 듀크대의 빌 아데어 교수가 참가했다. 그는 이 토론회에서 “오늘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자기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기사에 대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많은 혼란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 나와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에서는 가짜뉴스 추방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선봉에 서 있다. 국무회의, 국가 기념일 행사, 국제 행사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가짜뉴스를 규탄해 온 그가 6월 한국자유총연맹 기념식에서 얘기한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라는 말이 지금의 가짜뉴스 퇴치 드라이브의 발원지가 어디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의 가짜뉴스 선창, 뒤따르는 정부 조직

윤석열 정부와 여당 등의 가짜뉴스 공세는 지난해 출범 초에 이미 시작됐다. 언론과 SNS, 유튜브 등에서 쏟아지는 정부 비판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면서 ‘근절’ 방침을 얘기해 온 정부 여당이 가짜뉴스 공세를 더욱 본격적으로 펼친 것은 MBC의 ‘윤 대통령 욕설 보도’가 큰 계기가 됐다. 명백한 사실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면서 오히려 이를 윤 대통령의 계속된 망발·망언·실언과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가짜뉴스 취급을 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실소가 나오는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선창에 정부 부처와 조직들은 일제히 제창과 발 빠른 행동으로 호응하고 있다. 특히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내놓은 ‘가짜뉴스 근절 대책’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한 ‘가짜뉴스’ 신고와 심의의 형식으로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서 쫓아내겠다는 발상이다. 방통심의위가 5일 김만배-신학림 뉴스타파 인터뷰를 인용보도한 MBC <뉴스데스크> JTBC 등에 최고 수위 징계인 ‘과징금 부과’를 의결한 것은 그 같은 발상의 민첩한 실행이다.

한편으로 억압, 한편으로는 비호

그러나 방심위의 이날 결정은 가짜뉴스 퇴치 공세의 이면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방심위는 같은 안건으로 올라온 보수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채널A, MBN에 대해선 경징계 수준의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이러한 이중적 선택적 잣대의 적용은 가짜 뉴스 퇴치 드라이브의 진짜 목적이 사실은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정권에의 유불리, 우호 관계 여부에 따른 한편의 억압, 반면 다른 한편의 보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대통령실 등에서 나오는 언론에 대한 말 중에 ‘비판적 언론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낮게 나온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과도 별개로 볼 수 없다. 이들이 몰아내려는 것은 사실은 가짜뉴스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보도이며, 비판적인 언론이라는 것의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가짜뉴스 퇴치 운동이 갖는 더욱 큰 위험성은 몇몇 개별적인 기사들, 특정 언론사들에 대한 압박으로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전반적인 여론과 공론장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 이동순 시인은 지난 10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시 '홍범도 장군의 절규'가 '혐오발언'을 이유로 삭제됐다고 밝혔다. ⓒ 이동순 시인 페이스북
▲ 이동순 시인은 지난 10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시 '홍범도 장군의 절규'가 '혐오발언'을 이유로 삭제됐다고 밝혔다. ⓒ 이동순 시인 페이스북

페이스북의 무단 검열과 삭제, 노출 제한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3일 개천절에 벌어진 ‘페이스북에 대한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이의 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 수십 년 간 연구해 온 이동순 시인의 시의 한 대목 ‘X놈’이라는 표현을 페이스북이 ‘혐오 표현’이라는 이유로 삭제하고 경고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접속 거부 운동을 펼친 것이다. 여론 형성의 중요한 경로이며 마당인 페이스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방적인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일들은 신종 여론 검열이며 억압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정부의 가짜뉴스 공세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중 축구 경기와 관련해 국내 포털 ‘다음’에 수천만 건의 중국 ‘응원 클릭’이 몰린 것에 대응해 ‘여론 왜곡·조작 방지 대책’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라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지시와도 이어진다. 일부 언론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포털 규제를 강조해 온 정부·여당이 이번 일을 계기로 ‘포털 때리기’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라고 비판하듯 비로그인 기반의 환경에서 벌어진 해프닝에 여권이 ‘여론조작 음모론’을 키우고 있는 양상이다.

‘진짜’ 언론주권자다운 눈 필요

이 같은 가짜뉴스 퇴치 공세의 불순한 면, 숨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를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갖는 타당성을 일단 긍정해보자. 그렇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가짜뉴스의 가장 큰 진원지는 어디인가. 사실은 가짜뉴스 퇴치를 외치는 이들 자신이야말로 가짜뉴스의 이름으로 괴담을 유포하고 있다는 점에 가짜뉴스 퇴치 공세의 역설이 있다.

예컨대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에 대해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도 바다와 거기에서 나는 해산물이 안전하다고 한국 정부는 말하면서 그에 대해 반론이나 의문을 제기하면 괴담이라며 유언비어 대하듯 단속령을 내렸는데, 그러나 과학적 결론이니 오로지 믿으라는 바로 그 주장이야말로 사실은 진짜 '괴담'인 것이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괴담의 진짜 진원지는 정부다”라고 반핵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지적했듯이 괴담과 가짜뉴스를 말하는 이들 자신이야말로 괴담과 가짜뉴스(로 의심할 만한)의 발원이며 생산자인 것이다.

‘가짜뉴스 퇴치’라는 이름의 태풍, 태풍 아닌 광풍 속에서 언론 수용자들, 시민들의 가짜와 진짜의 분별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가짜’라는 단순명료한 말에 담긴 함정과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읽는 ‘진짜’ 언론주권자다운 눈이 필요한 때다.

※ 민언련 특별칼럼은?

윤석열 정권이 노골적 공영방송 탄압에 이어 이른바 ‘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빌미로 ‘가짜뉴스 근절’이란 명분 아래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큰 조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런 ‘가짜뉴스 근절 대책’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세 번째로 이명재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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